매일 쓰는 말들. 스치듯, 지나가듯, 가끔은 힘주어서 내뱉는 말들. 말하는 이의 표정으로 뭉뚱그려져 버리는 말들의 속사정이 사려 깊은 한 청년을 만나 그림이 됐다. 이제 당신의 눈에도 보이겠지? 영원히 반복될 ‘후회’의 운명과 한 끗 차이인‘가식’과 ‘감정’의 관계가.
원래 ‘글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네, 아버지가 국어 선생님이시거든요. 한글이 표음문자잖아요. 소리 나는대로 만든 글자. 한자는 상형문자고요. 한글 원래 표의문자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모양에도 뜻이 함축돼 있는 글자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몇 번 시도해보다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죠.
작가님의 작업에 대해 타이포그래피다, 레터링이다…
지칭하는 이름이 많아요. 정확히 어떤 분야에 속해 있는 건가요? 타이포그래피가 글자의 배열이나 모양을 느낌 있게 만들어서 보여주는 거라면 전 글자 자체의 형태를 건드리는 거죠. 한글 레터링이 더 맞다고 생각해요.
구성하고 작업하기까지의 의식의 흐름이 궁금해요.
예를 들면 ‘끝’이라는 작품은 글자를 길게 늘여놨잖아요. 연애를 하다 보면 헤어졌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가 딱 끝이 아니더라고요. 헤어지고서도 따로 떨어져서 생각하고 술 마시고 실수도 하다가, 새로운 연애를 하거나 더는 안 보고 싶을 때가 돼서야 끝나는 거잖아요. 배경 이미지가 엔딩 크레디트인 이유도, 요즘엔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뭐가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영화가 끝났음에도 끝나지 않은 느낌인 거죠. 이렇게 제 고민이나 에피소드에 기초해 단어를 선정한 후에 배경 이야기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끝’의 경우처럼 글자의 형태를 변화시키거나, 어울리는 오브제를 매치하는 식으로요.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라면, 만들고 나서 후련한 적도 있었을 것 같아요.
마음에서 뭔가가 뽑혀나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한때 ‘아등바등 살아도 결국 끝이 정해진 게 삶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결국 어딘가에 부딪힌다는 건데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삶이란 단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다 ‘생로병사’가 떠올랐어요. 네 글자를 그림처럼 형상화했더니 ‘삶’이란 글자가 되더라고요. 만들고 나니까 ‘그래, 삶이 별거 있나’ 싶었어요.
‘삶’이란 글자로 3개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생로병사,산을 오르는 듯한 모양의 글자, 다양한 공간을 결합시킨 글자. 요즘 생각하는 ‘삶’의 모습은 뭐예요?
뭘 하든 재미가 있어야 일이 아니라 내 것이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놀이공원이나 놀이터처럼 놀 수 있는 곳, 놀이 요소로 글자를 만들 것 같아요.
전 ‘썸’이 놀라웠어요. 사람 인(人) 2개와 숫자 1, 말풍선을 조합했잖아요.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나요?
뭐든 한글 형태와 연관 짓는 병이 생겼어요. 친구들이 ‘한글 패치’라고….(웃음) 지나가다 뭘 보면서 이게 한글이었음 뭐가 됐을까 생각하는 게 재밌어요.
디자인을 배워서 시작한 게 아니라고요. 경영학도라고 들었는데 어쩌다 디자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나요?
어쩌다 포토샵을 배웠어요. 재미 삼아 만든 작업물을 잡지사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편집장님이 잡지에 소개해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직업란에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스무 살 2월이었거든요. 그래서 예비 대학생이라고 썼어요. 잡지를 받아봤는데 다른 분들은 그래픽 아티스트, 디자이너라고 쓰여있더라고요. ‘아, 나와 비슷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는구나’ 싶었어요. 저도 계속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들이 어떤 작업물을 만드는지 공부하고 혼자 만들면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죠.
우리나라는 예체능에 대해, 어릴 때부터 진로를 정한 사람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느낌이에요. 교육기관이 아닌 곳에서 예술을 제대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원래 전역 후에 디자인과로 전과할 생각이었는데 안했어요. 시간도 부족했고, 전과나 편입을 하려면 미술을 처음부터 배워야 하더라고요. 아이디어를 가지고 표현하는 게 좋으면 무조건 디자이너가 돼야 하는 건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요. 제가 시스템 전체를 비판 할 순 없지만, 정식 교육을 받기 위한 제도를 쉽게 만들거나 제도적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디자인을 할수 있는 길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죠. 곧 졸업하는데, 비전공자를 뽑는 디자인 회사는 거의 없더라고요. 포트폴리오를 본다고 하지만 지원 자격에 ‘디자인 전공자’가 명시돼 있으니까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아니면 다른 분야를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관심 가는 ‘다른 분야’를 꼽아본다면 뭐가 있을까요?
예전에 어떤 분이 “넌 네 아이디어에 대한 자부심이 크냐, 퀄리티에 대한 자부심이 크냐”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전 아이디어에 대한 자부심이 더 크거든요. 내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거라면, 남의 손을 거쳐서 완성되더라도 잘 표현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엔 ‘기획’ 쪽에 관심이 많이 가요. 특히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캠페인 분야에요. 어떤 문제를 디자인을 통해서도 바꿀 수 있고, 아이디어를 통해서도 바꿀 수 있잖아요. 레터링이 개인적인 영역이라면 좀 더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해가고 싶죠.
Editor 김슬 dew@univ.me
Photographer 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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