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서 아보카도가 자란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아보카도 영상을 올렸다. 먹는 아보카도가 아닌 자라나는 아보카도. 먹고 남은 아보카도 씨앗에서 발아된 손바닥만 한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적어 놨다. “먹고 남은 아보카도 씨앗에서 이런 건강함이 자라나다니.” 그리고 그 밑에 댓글들이 달렸다. “우와 그린 핑거!”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가 초록 손이라니.

 

아보카도를 먹을 때는 반으로 자른 후에 씨앗을 빼내야 한다. 보통은 칼로 씨앗을 퉁 쳐서 시원스럽게 빼내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들고 있던 칼을 놓고 숟가락으로 씨앗을 빼냈다. 그 덕에 먹어야 하는 부분이 망가졌지만 별 상관없었다. 조심스럽게 빼낸 뒤에 버리지 않고 곧장 물에 담갔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씨앗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아래로는 뿌리가, 위로는 싹이 돋았다. ‘와. 정말 갈라지는구나.’ 사진으로만 보던 장면이 내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그제야 아보카도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뿌리 부분만 물에 담가야 할 차례다. 씨앗의 사방에 이쑤시개 같은 나무 꼬치를 꽂은 후 컵에 올려두는 게 일반적인 방법. 그런데 정말 그뿐일까? 씨앗을 빼낼 때 조심스럽던 태도를 떠올리며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방 안을 뒤져보았는데도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점점 몸을 옮기다 보니 쓰레기통까지 와버렸다. 그때 눈에 들어온 일회용 아이스 컵. 빨대를 꽂는 부분을 칼로 잘라서 뚫린 부분이 더 커지게 만들었다. 컵에 물을 가득 담고, 뚜껑에 씨앗을 끼워 넣었더니 딱 맞게 고정되었다. 씨앗에는 어떤 상처도 내지 않았고, 일회용 컵을 또 한 번 진득하게 사용하게 되어 내심 기뻤다. 심지어는 뿌리가 생생하게 보였다.

 

아침이 되면 아보카도의 키를 재는 게 일과였고, 자기 전에 가까이 쳐다보며 하루를 마치곤 했다. 아직 물만 먹어서 어쩌니? 넌 언제 심는 거니? 물어보곤 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씨앗이었는데 어느덧 매일 자라나는 걸 보니 말을 걸게 된다.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아보카도가 처음부터 곧장 자란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이제 좀 올라가볼까’ 마음먹은 듯이 쑥쑥 커졌다. 그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새싹을 틔운 아보카도는 매일이 의미 있다고 뽐내듯이 내 방에서 하루 평균 1~1.5센티미터씩 컸다.

 

약 30센티미터가 되고, 큰 잎이 나왔을 때야 안심이 되어서 비로소 화분에 옮겨주었다.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해서는 매 순간이 물음표다. 책이나 인터넷을 보고 따라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내내 ‘정말?’ ‘이렇게 하면 정말 된다고?’ ‘내가 하는 건데도?’ 묻게 된다. 그런 조심스러움이 때론 도움이 된다. 느리게 나아가며, 나아가는 과정들을 더 진득하게 쳐다보는 거다. 어차피 오래 걸려도 되는 일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하기. 식물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내 손에서 자라나게 하면서 발견한 태도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식물을 곁에 두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표현은 그 일을 썩 잘 해내거나,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장면을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다. 식물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물론 예전에도 식물을 보면 좋았다. 좋아서 자주 쳐다보곤 했다. 길을 가다가 멈춰 서고, 사진을 찍고, 내 방에 데려오고, 만족하고, 쉽게 잊고, 빈 화분을 몇 개씩 포개서 신발장 안에 보이지 않게 넣고, 또다시 거리로 나가 식물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꽃집에 들러 마음에 드는 식물을 사고,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갔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작은 식물들을 데려오고, 내 방에 놓고, 또 잊고, 빈 화분이 되는 일. 식물과의 관계는 그게 다였다.

 

화분 안에 담긴 식물을 구매하는 일은 이미 완성된 상품을 사는 일과 비슷했다. 나를 따라온 식물은 나와의 다음을 기대하고 있을 텐데, 나는 샀다는 것에 만족하며 보기 좋은 곳에다 올려둘 뿐이었다. 물이 필요하지 않는데도 괜히 휴일의 기분을 내기 위해 물을 주기도 하고, 직사광선을 피해야 하는 식물인 줄도 모르고 낮이 되면 창틀에 올려놓고 만족해했다. 뿌리가 자랄 대로 자라서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데도 무지하게 바라만 보던 나.

 

너무 먼 미래 대신 가까이 있는 지금을

이제는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한 식물을 사지 않는다. 곁에 두고 싶어서 사더라도 매일 쳐다보며 어제와 달라진 잎의 형태나 새순을 알아챈다. 시간에 맞게 자리를 옮겨주고, 저마다의 식물에 맞게 물을 준다. 그리고 먹고 남은 아보카도 씨앗을 한참 동안 물에 담가 두고 그것이 발아하여 잎을 꺼내는 장면을 바라본다. 어제와는 달라진 모습이 지금의 생활에는 무엇보다도 ‘기념’이다.

 

식물에게 완성은 없다. 내가 그리는 목표의 마지막 장면이 실은 구체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저 매일이 필요할 뿐이다.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원거리를 멀찍이 쳐다보게 된다. 지금의 나에게는 먼 시선보다 촘촘한 자각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은 ‘지금’에 가까이 눈을 두고 조목조목 들여다보며 그 과정을 만끽하는 일. 조금씩 달라지는 매일의 표정을 알아채고 싶다. 이루고 싶은 장면이 너무 멀어서 쉽게 지치던 시간을 달리 바라보고 싶다. 오늘의 바람에 조금 더 묵직하게 일렁이는 건강한 아보카도 잎처럼.


[893호 – think]

Writer 임진아(『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 저자)
ILLUSTRATOR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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