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생일에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에 초를 붙이며 파티를 했을까? 생일빵과 생일주 문화는 언제 생긴 걸까. 달갑지 않은 생일 문화 때문에 생일이 싫어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 생일에 혼자 집에 있으면 안 돼?
“생일인데 뭐 해?” 생일을 축하하는 말 뒤에 으레 붙는 인사말이 싫다. 이때 “아무것도 안 한다”고 대답하면 동정의 눈빛이 돌아온다. 어떤 사람은 “생일에 그렇게 외롭게 있는 거 아니”라며 훈수를 두기도 하고, 다른 친구는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도 한다. 대체 왜 그럴까? 생일은 매년 돌아오는데, 다들 내 생일 말고도 각자의 인생, 중요한 일이 있을 텐데. 바쁘면 내 생일쯤은 대충 지나가도 될 텐데.
왜들 그렇게 호들갑을 떨까? 특별한 약속은 없지만 나는 나름대로 내 생일을 ‘잘’ 보냈다. 지방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도 했고, 개강 후 처음으로 긴 낮잠도 잤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생일을 혼자 보낸 불쌍한 사람’이 됐다.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생일을 요란한 게 챙기는 게 내 적성에 안 맞았다.
반 친구들이 다 같이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엄마가 밤새워 내 생일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는 게 부담스럽기만 했다. 이젠 성인이니까 내 생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챙기고 싶다. 생일을 함께 기념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게 내 기준의 행복한 생일이다. 김종혁(24세)
# 생일 선물, 주지도 받지도 않고 싶어요
친한 친구가 작년 내 생일에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선물했다. 티켓팅에 성공하기 어려운 인기 공연이었고, 티켓 가격도 만만치 않은 역대급 선물이었다. 굉장히 고마웠지만 동시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바닥난 지 오래인 통장 잔고가 머리를 스쳤다. 몇 달째 알바를 구하지 못해 궁핍한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바로 다음 달에 있을 친구의 생일에 이 정도로 비싸고 값진 선물을 돌려줄 자신이 없었다. 생일의 기쁨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에 커다란 숙제가 생긴 기분이었다. 걔 생일엔 뭘 줘야 하지? 돈이 없는데? 이거 티켓팅 하기도 어려운 거였는데, 가격만 같으면 될까? 더 비싼 걸 줘야 하는 게 아닐까? 결국 그 친구의 생일이 되었을 때, 가격이 거의 비슷한 선물을 줬다.
그 선물을 위해 2주 동안 모든 술자리를 포기하고 학식만 먹으며 살아야 했다. 내가 준 선물을 들고 좋아하는 친구를 보는데 기쁘지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생활비가 넉넉하지 못한 사람에겐 생일 선물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곧 내 생일이 또 다가온다. 마음 같아서는 주지도 받지도 않고 싶다. 생일이 대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까? 홍윤서(24세)
# 이때다 싶어 온갖 선을 넘는 게 생일?
고등학생 시절, 주번만 되면 내가 원치 않던 주목이 쏟아졌다. 주번이 발표해보자. 주번이 가지고 와. 뭐만 하면 주번이 하란다. 졸업과 동시에 이놈의 주번과도 영원히 안녕일 줄 알았는데. 누가 알았겠냐고요. 대학생의 생일은 주번과 별다를 바가 없다는걸! 학생회나 동아리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일 주번’의 고통을 겪어봤을 것이다.
평소엔 나한테 관심도 없더니 갑자기 건배사를 하란다. 내 생일과 당신네들의 소주잔 사이의 연관 관계를 찾을 수 없지만, 일단 해야만 하니 한다. 그러고 나면 누군가 신나서 가마솥 같은 그릇을 들고 온다. 생일주를 먹이기 위함이다. 그 뒤론 난 죽은 목숨인 셈이다. 이 요상한 축하는 내가 괴로워하며 쓰러져야 끝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단톡방에는 내 엽사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축하해주려고 그런 건데~”라며 나를 속 좁은 놈으로 만든다. 내 생일인데. 왜 자기들이 더 신나 하는지. 사실 축하는 다 핑계 아닐까? 주인공인 내가 원치 않는데도 이때다 싶어 선을 넘는 온갖 행동들을 하는 게 과연 맞나? 이런 것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생일이라면, 그냥 차라리 혼자 보내고 말지, 싶다 이젠. 김해진(24세)
# 생일이 우정을 과시하는 수단인가요?
생일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친구가 꼭 한 명씩 있다. 그들은 주위 사람 모두가 본인만큼 자신의 생일을 중요하게 챙겨주길 강요한다. 12시 땡 하자마자 축하해주지 않으면 사랑이 식은 거라고 토라지고. 축하 메시지는 걔가 사용하는 모든 SNS에 장문으로 남겨주길 은근히 바란다.
사실 난 내 생일에도 별 관심이 없는 편이라, 이런 요란한 축하가 낯설다. 언젠가 친한 친구 생일날 일찍 잠드는 바람에 당일 오전 11시쯤 부랴부랴 축하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었다. 근데 이 친구가 은근 서운한 티를 내는 거다. 다른 친구들은 새벽 12시 되자마자 전화도 주고 하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냐며 말이다. 기분이 요상했다. 생일 하루로 지금까지 나와 그 친구가 나눈 우정과 추억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마치 남들에게 “우리 이만큼이나 친하잖아?”를 보여주기 위해 생일을 기념하는 것 같아서. 사실 자신을 정말로 신경 써주는 친구라면, 굳이 생일이 아니라도 이미 충분한 애정을 쏟고 있을 텐데 말이다. 너의 생일이, 그리고 내가 너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이, 일종의 과시용 콘텐츠로 쓰이는 것 같아 어쩐지 마음이 헛헛하다. 정지우(23세)
[894호 – special]
CAMPUS EDITOR 김종혁 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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