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였나. 어느 유명인의 인터뷰를 읽다 한 구절에 꽂혔다. “취미 생활을 가져보세요. 삶에 큰 활력소가 될 거예요.” 이 기사를 다 읽고 나는 취미 생활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 고등학교 때까진 머릿속에 오로지 공부와 진로에 대한 고민뿐이었다. 대한민국 대다수 수험생들이 그러하듯, 앞날을 걱정하느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취미에 대해선 1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취미 생활을 하나쯤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취미로 갖는 게 좋을까. 일단 몸 쓰는 것에 젬병이라 운동은 제외! 손재주가 없으니 요리나 바느질 같은 것도 패스! 이렇게 취미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그 무렵, 우연히 세계 디자인 박람회에 가게 됐다. 수많은 디자인 작업물들 속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컬러링북!

 

검은 윤곽선으로 그려진 세계 여러 대도시의 풍경이 하얀 종이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이것은 나의 취미 생활로 적격일 거라는 직감이 왔다. 16가지 컬러 펜까지 합쳐 무려 6만원대의 매우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이것을 사면 이제부터 나도 취미를 갖게 된다는 뿌듯함으로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다행히 컬러링북은 나와 꽤 잘 맞았다. 가만히 앉아서 색칠만 하면 되니 집순이인 나도 쉽게 즐길 수 있었다. 마치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든 피카소처럼 전지 앞에서 펜을 들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사실적으로 색칠할까, 아니면 색다르게 칠해볼까. 색칠을 하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생각들이 없어지며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이래서 취미 생활을 갖는구나! 나에게도 자랑할 취미가 생겼다는 생각에 내심 기뻤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정확히 일주일쯤 되어가자 나의 흥미도 점점 수그러들었다. 8일째 되는 날 아침, 종이와 펜을 집어 드는데 갑자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할 때처럼 마음 한구석에서 중압감마저 느껴졌다. 마치 학교 가기 싫은데 등교해야 하는 학생의 심정이 되었달까. 늘 해야 하는 공부처럼, 컬러링북을 색칠하는 것도 취미가 아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날이 갈수록 컬러링 펜을 드는 횟수도, 시간도 줄어만 갔다.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도시 그림을 봐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에 반으로 접어 책장에 꽂아 놓은 종이는 점차 펼쳐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급기야 더는 컬러링북 색칠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취미 생활은 막을 내렸다.

 

얼마 전, 책장 정리를 하다가 한참 전에 샀던 컬러링북을 다시 꺼내 보았다. 오랜만에 봤지만 여전히 컬러링북을 ‘색칠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때는 6만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샀음에도 뿌듯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잠시 미쳤었다는 생각이 들 뿐 돈이 아까웠다.

 

취미를 꼭 가져야만 할까? ‘컬러링북 사건’을 겪은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말 좋아서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러나 나같이 다수의 사람들은 어쩌면 SNS나 매체에 비춰지는 ‘멋진 욜로족’이라는 환상에 근접하기 위해, 억지로 취미를 만들려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일도 잘하면서 취미 생활까지 갖춘 완벽한 사람들을 롤 모델 삼아 무리해서 자신을 들볶으며 말이다. 하지만 경험상 의무감에 가졌던 취미는 일처럼 느껴질 뿐이다. 즐겁자고 시작한 취미가 의무처럼 느껴지니 당연히 단기간에 손을 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지금까지도 나는 취미가 없다. 때문에 이력서에 있는 ‘취미’ 란을 볼 때면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대략 난감해지곤 한다. 하지만 있어 보이기 위해, 이력서 칸을 쉽게 메우기 위해 필요한 취미라면 이제 더는 갖지 않을 것이다. 취미는 한자 뜻풀이 그대로, 좋아하고 흥미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이 딱히 없어도 너무 잘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며, 당분간은 취미 생활 따위 내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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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호 – 20’s voice]

Writer 이수현 sooh0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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