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길을 잃을 때

스무 살 때 처음 해본 것이 유독 많지만, 그중 하나는 해외여행이었다. 그전까지 바다 건너라곤 제주도밖에 못 가 봤던 내가 무려 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베프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스무 살이 되면 유럽 배낭여행을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어느덧 스무 살이 된 우리는 감격스럽게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비록 ‘배낭’이 아닌, 캐리어에 짐을 가득 챙기긴 했지만.

첫 목적지였던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12시간을 공백 없이 재잘거렸다. 런던 아이를 타고 야경을 감상하고, 말로만 듣던 빅벤 앞에서 사진도 찍어야지. 나와 친구의 대화는 온통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기내식을 두어 번 먹고 잠깐 졸았던가. 눈을 떠보니 창문 밖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드디어 런던에 도착한 것이다. 첫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밖으로 나와 계획대로 런던 아이를 타고 야경을 본 후 빅벤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미리 검색해 둔 식당에서 맛있는 밥도 먹었다. 계획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렇게 나의 첫 여행담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좋았으련만. 머지않아, 아니 바로 다음 날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가까웠던 런던 아이와 빅벤은 무리 없이 찾아갔으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자 두 명의 길치는 숨 쉬듯 길었다. 게다가 때는 바야흐로 2009년. 인류가 아직 스마트폰을 발명하기 전이기에, 구글 맵 어플 따위가 존재할 리 없었다(당시 나는 ‘쿠키폰’ 유저였다).

현 위치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지도 앱 대신, 실물 지도를 들고 다니며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 결과, 우리는 매번 가려던 곳과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한 골목 전에 좌회전을 해버리거나,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빙글빙글 돌았다.

 

여행지에서 맛본 뜻밖의 즐거움

내가 상상했던 여행은 이런 게 아닌데. 7월의 따가운 햇볕 때문에 안 그래도 더운데 길까지 잃어버려 헤매고 있으니 짜증이 배로 났다. 여행지를 둘러보고 있어야 할 시간에 애먼 곳에서 시간 낭비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내셔널 갤러리를 둘러보고 뮤지컬 티켓을 예매하고 있어야 하는데….’ 흐트러진 계획 앞에서 나와 친구는 지쳐갔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우연히 한 광장에 들어섰다. 광장 가운데엔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었다. 그 너머로 광대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 공연 중인 모양이었다. 오랜 시간 헤맨 탓에 다리가 아팠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저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라는 눈빛을 서로에게 보냈다.

내친김에 바로 옆 마켓에서 체리 한 봉지까지 사 들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철퍼덕 앉았다. 공연을 볼 생각보단 그저 한숨 돌리고 갈 요량이었는데… 땀을 식혀주는 한 줄기 바람,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의외로 꽤 재미있었던 광대의 공연, 달달한 체리까지. 우연이 빚어준 세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 순간, 여행 최악의 순간이 최고의 순간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길을 잃어 어쩌다 가게 된 장소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마주한 거다.

이후 일정에서도 그런 일은 종종 벌어졌다. 야간열차를 놓쳐 어쩔 수 없이 타게 된 기차에서 봤던 잊지 못할 스위스 시골 마을의 풍경,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피하려고 들어간 시계탑 아래서 본 체코의 야경…. 모든 게 꼬이고 틀어지고 엉켰다고 생각한 순간, 뜻밖의 반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잃거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실패한 순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재밌고, 기억에 남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인생도 긴 여행이나 마찬가지니까

길을 잃는다는 건, 여행을 망쳤다는 뜻이 아니라 일정에 없었던 곳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첫 여행을 마치고 ‘길 잃기의 즐거움’을 깨달은 나는 더는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구글 맵이 존재하는 요즘도 여전히 가끔 길을 잃지만 전과 달리 ‘좀 헤매지, 뭐’ 하는 쿨한(?) 태도를 갖는다. 그리고 이리저리 열심히 헤매며 주변 경치를 좀 더 자주 보고, 좀 더 만끽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잃어버린 길 위에서 뜻밖의 광경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서.

인생도 긴 여행이라고들 하니, 길 잃기의 즐거움은 아마 인생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는 것처럼, 인생도 늘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계획에 맞게 착착 흘러가긴 어려울 거다. 내가 원하는 사람과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비록 내가 걷고 싶었던 길은 아니었더라도 이 길을 걷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라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보는 것.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의외의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기대해보는 것. 이런 태도로 살다 보면 내 인생에서도 뜻밖의 장관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구글 맵 덕에 예전만큼 길을 잃을 일이 적어진 요즘도 나는 가끔 첫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길 잃기의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896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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