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 습관은 꼬맹이 시절 휘갈기던 의미 없는 낙서에서 열댓 살 무렵 다이어리에 끄적이는 일로, 스물서너 살쯤부턴 매일 쓰는 일기로 점점 진화해 왔다. 종합장에 일기를 쓰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취미이니 ‘기록’은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 일에 더욱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늦은 밤이나 주말 낮에 카페에 앉아 다이어리를 쓰고 있을 때면 ‘힐링’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맘이 편안해진다.

 

내가 왜 이토록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색색으로 페이지를 꾸미기보다는 까만 글씨로 빽빽하게 적어 내려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기록이라 하니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다. 오늘 무얼 했고, 저번 주에 먹은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같이 소소한 것들. 다만, 나는 뭔가를 남기고 있다는 그 감각을 편안해하는 것이다.

 

십 년이 넘은 나의 1TB 외장하드에는 2004년부터 저장된 수많은 백업 파일이 켜켜이 쌓여있고, 내 모든 전자기기의 사진, 글, 메시지는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어 온라인에 저장된다. 내 방 서랍장엔 지난 다이어리들, 수기로 작성된 일기들, 편지, 낙서로 가득한 공책, 스케치북, 티켓 등이 잡동사니처럼 수북하게 쌓여있다. 다시 열어볼 일 없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그 사실이 내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진짜 잡동사니일 뿐이더라도.

 

올 초, 부모님 집에서 우연히 나의 옛 일기장을 찾아내 가방에 넣을 때였다. 엄마가 그랬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하거나, 이불을 바꾸는 일을 그렇게 우울해했다고. 무언가를 옮기거나 바꾸는 일에 유독 예민하게 굴었단다. 사실 어릴 때만의 일이 아니다. 요즘도 여전히 환경이 바뀌거나 누군가가 떠나거나 헌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일에 여전히 예민하다. 한마디로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유달리 마음이 많이 쓰이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라지는 것들은 아쉽고 안타까울 텐데… 그것에 미련스럽게 집착하는 나의 태도는 조금 유난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괴로움은 물론, 즐거움도 언젠가는 잊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왜 나는 자꾸 잡을 수도 없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할까?

 

내 생각엔 아마도, 그런 종류의 우울감은 천천히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친구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엄청나게 좋아했던 노래 제목이 기억나지 않을 때,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기 전에 이곳이 무슨 가게였는지 가물가물할 때. 누구나 한 번쯤 추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 갑작스런 상실감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문득 그것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충격적으로 감정이 쏟아진다. 예고 없이 상실감에 치인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초조한 기분이 들 때, 나는 내 기록들을 생각한다. 일기장에, 사진첩에, 혹은 싸이월드에 무언가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진정되니까.

 

나의 기록들은 내가 상실감에 심하게 부딪히지 않게 ‘에어백’이 되어주는 셈이다.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무언가 남아있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시키고, 울적함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기록은 나의 감정이 조금 덜 다치도록 안전망의 역할을 해준다. 방은 좁고, 하드디스크 용량은 모자라고, 밤마다 잘 시간은 5분이 아깝다. 문구류 사들이는 데 쓰이는 돈도 만만치 않다. 다시 보지 않을 것을 기록하는 행위가 조금 소모적이라는 것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세상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새로운 기억을 덧씌우는 많은 정보들은 매일같이 쏟아진다. 열심히 다이어리를 써도, 결국엔 일기조차 비껴간 흐린 기억에 울적해질 때가 많다. 그러니 조금 소모적이면 어떠랴. 나는 오늘 밤에도 볼펜을 끄적이며 사라지는 것들과의 안전한 이별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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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서현 201100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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