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그릇은 작을수록 좋다
남초 커뮤니티 대표 떡밥은 여자다. 썸 타는 여자, 날 버린 여자, 얼굴 예쁜 여자, 몸매 좋은 여자. 모든 기준이 외모로 수렴되는 분위기지만, 예외가 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남자들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성격이 좋아야 한다느니, 취미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따위의 댓글을 단다. 그럴 때 꼭 언급되는 이름이 레인보우 멤버 지숙이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고 요리를 잘하는 데다 게임, 컴퓨터, 프라모델, 자동차 관리까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취미를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지숙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그녀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혼자서도 잘해요
평소 밝은 모습을 주로 봐와서 촬영 콘셉트를 진지하게 잡아봤는데, 좀 뻘쭘하신가봐요. 반면에 포토그래퍼가 애교를 요구하니까 날아다니시던데.
아유, 그러니까요. 성격대로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도 색다른 모습 끄집어내려고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레인보우 멤버들끼리 합숙하다가, 최근에 각자 독립한 걸로 알고 있어요. 외롭지 않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숙소 생활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게 일 끝나고 들어왔을 때 반겨줄 누군가가 한 명쯤 있었다는 거거든요.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았던 걸 털어놓을 상대가 있으니까 마음의 위안이 됐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으니까 마음 한 켠이 조금 허전해요.
혼자 살면 대신 좋은 점도 많잖아요.
제일 좋은 건 화장실을 안 기다려도 된다는 거? 예전엔 화장실 2개를 나눠 썼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타이밍이 겹치니까, 가장 나중에 씻는 사람은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해요. 이젠 준비할 때나 일 끝난 후에 바로 씻을 수 있으니까 그게 편한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내리고, 내 마음대로 인테리어 꾸미고, 이런 건 예전부터 꿈꿔왔던 거고요. 여자들의 로망이잖아요.
저희 잡지에 실릴 땐 이름 앞에 직업이 붙어요. 지숙이라는 이름 앞에 무슨 말이 붙으면 좋겠어요?
오, 어렵다. 블로거? 걸그룹? 걸그룹 블로거라고 해주시면 안 돼요?(웃음)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젠 신기하게도 제 본업이 블로거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오히려 블로거로 저를 먼저 알고 “아, 얘 걸그룹이었어?” 이러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가수 외에, 제2의 직업을 고르라면 가장 먼저 꼽겠어요?
그래도 전문성이 있는 건 리포터죠. 이제 <연예가중계>에서도 어느 정도 경험이 쌓였고, 제가 나름대로 연구해서 정보 전달을 하는 거니까 가장 객관적인 것 같아요. 요리나 서예처럼 블로그에 올리는 건 제가 평소에 하고 싶은 걸 그냥 제 스타일에 맞게 하는 거라 딱히 전문성이 있진 않거든요. 낯을 안 가리는 제 성격이랑 잘 맞기도 하고, 일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얘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워요. 배울 점도 많고, 에너지도 솟고. 인터뷰를 하고 나면 이미 좀 친해져 있어요.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누구예요?
여진구 씨가 어린데도 생각이 깊으시더라고요. 성격도 진짜 좋고. 제일 처음에 인터뷰했던 조재현, 박철민, 정은표 선배님이 아직도 많이 생각나요. “야, 너 처음이냐” 하면서 계속 놀리시면서도 인터뷰 끝나고 칭찬해주시고. 전 정말 많이 떨렸거든요. 시작을 좋게 해서 그 뒤로도 별 탈 없이 리포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 자신을 알라
얼마 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부르시는 걸 봤어요. 걸그룹, 블로거, 리포터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는데.
다들 의외였나 봐요. 자막도 ‘의외의 안정적 시작’ 이렇게 뜨더라고요. 근데 제가 원래 전공이 보컬이에요. 노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대표로 꾸준히 했어요.
어려서부터 노래를 하고 싶었다면, 걸그룹 말고 다른 방식으로 데뷔할 수도 있었겠네요?
자라면서 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아무나 가수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좀 더 현실적으로 가능한 걸 찾아야겠더라고요. 허황된 상상에 빠져 사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거든요. 제가 그렇게 빼어난 외모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 보컬 트레이너를 하고 싶었어요. 근데 우연찮게 좋은 오디션 제의가 들어오고, 합격하면서 레인보우라는 좋은 팀을 만나 데뷔하게 됐죠.
말씀을 참 잘 하시네요. <대변인들>에서 걸그룹의 섹시 콘셉트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것도 평소 모습인가요?
저희의 정체성이 아이돌이니까 평소 걸그룹의 이미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요. 특히 저는 레인보우라는 섹시한 그룹에 속해 있지만 깜찍한 콘셉트로도 많이 활동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원래 제가 거기 올라가서 얘기하는 게 대본에도 없었어요. 즉흥적으로 결정돼서 그냥 전 제 생각을 얘기했던 거죠. 그냥 솔직하게 얘기했기 때문에 오히려 시청자분들이 잘 봐주셨던 것 같아요.
가수 말고도 하고 싶었던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엄청 많았죠. 처음에는 판사가 되고 싶었어요. TV에 나오는 땅땅땅 치는 모습이 그냥 멋있어서.(웃음) 발레를 배울 땐 발레리나를 꿈꾸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한자나 서예를 배울 때는 또 한의사도 되고 싶었고요. 집에서 부모님 부항도 떠 드렸어요. 그땐 또 내가 소질이 있나 했죠.(웃음) 그러다 한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진짜 잘해야 한다는 걸 알고 또 접었어요. 그 뒤로는 쭉 남들처럼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가는 게 목표였어요. 근데 공부는 진짜 잘해야 칭찬을 받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칭찬받고 잘할 수 있는 일로 택한 게 음악이에요. 엄마는 반대하셨지만, 제가 말을 또 잘 하거든요. 편지 두 장에 내가 음악 해야 하는 이유, 공부와 병행하겠다는 약속 등을 구구절절 썼어요.
보통 그 나이 때는 막 떼쓰기 마련인데….
저희 집은 떼쓰면 안돼요. 심금을 울리려면 엄마 아빠의 감정 선을 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주무실 때 화장대에다가 편지봉투를 올려놨더니 다음날 아침에 읽어보시고는 허락하시더라고요. 학원 보내 주겠다고. 그 때 시작한 음악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예요.
워낙 손재주가 많아서 신기해하는 팬들이 많아요. 컴퓨터도 고치고, 자동차 워셔액도 직접 갈고, 프라모델 조립도 즐기고.
학교에서 수업할 때도 TV랑 빔 프로젝트 연결은 다 제가 했어요. 미니카랑 게임을 좋아해서 남자애들이랑 대화가 잘 통했어요. 그때처럼 지금도 제 이런 부분을 좋아해 주시는 남자 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집에서는 하수예요. 다들 고수거든요. 언니랑 엄마는 요리를 엄청 잘하고, 아빠는 손만 대면 다 고쳐요. 그런 걸 보면서 크다보니 컴퓨터는 제 몫이 됐어요. 그때부터 부품 사서 연결하고, 프린터기 고치고. 전 설명서도 잘 안 봐요. 그냥 색깔 맞춰 끼우고, 새 하드웨어 검색해서 설치하고, 간단하잖아요.
블로그를 키우는 블로거를 키우는 재미
현재 ‘쑥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파워블로거잖아요? 블로그 이름에서부터 자기 이름에 대한 애착이 느껴져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제 이름에 별로 신경 안 썼어요. 데뷔하려고 보니까 이름이 걸그룹이랑 좀 안 맞는 거예요. ‘숙’ 자 들어가는 아이돌은 저 말고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사장님한테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근데 바꾸지 말고 친근하게 지금 이름으로 쭉 가자는 거예요. 연습생 나부랭이가 사장님 말씀을 안 들을 수 없어서 그냥 데뷔했는데, 활동하면서 제 이름을 다들 안 까먹으시더라고요. 신인 때는 그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름 덕인지 저를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이름에 더 애착이 가서, ‘쑥로그’, ‘페이쑥북’, 이렇게 이름을 지었죠.
쑥로그 이웃만 4만 명이 넘어요. 방문자가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블로그를 보면서 저를 키우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댓글을 보면 ‘얘가 이런 걸 했네? 이번엔 요걸 했어?’ 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이웃집 동생이나 친구처럼 여기니까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맞춤법이 틀렸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비밀글로 알려주시거든요. 나한테 애정을 갖고 도와주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행복해요.
팬들의 댓글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뭐예요?
블로그에 올릴 일상 사진을 막 찍었었는데, 사진에 대한 지적이 좀 있었어요. 혼내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여기 핀 나갔다’, ‘구도가 좀 아쉽다’는 얘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그걸 계기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제 전시까지 하게 됐잖아요?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전 댓글 하나하나 다 봐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게 아니더라고요. 사소한 말이라도 잘 귀담아들으면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얘기를 할수록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요. 일 때문에 바쁘고 블로그까지 운영하다보면 지치는 순간도 분명 있을 텐데, 어떻게 자기를 추슬러요?
일단 맛있는 걸 먹어요.(웃음) 또 조그마한 거라도 제가 좋아하는 걸 사요. 전 쉽게 행복이 채워지는 애거든요. 스티커 하나를 사도 기분이 금방 좋아져요. 아님 가족끼리 모여 밥을 먹거나, 멤버들이랑 수다를 떨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스트레스 해소가 그다지 어렵진 않아요. 그리고 전 저를 되게 잘 다뤄요. 멘탈은 다른 게 없어요. 고마움을 금방 금방 느끼면 돼요. 현재 상황 안에서 고마움을 어떻게든 찾아내는 게 중요해요. 일하다가 힘들면 일이 없을 때를 생각해요. 그것보단 지금이 훨씬 행복하거든요. 제가 필요하다는 거잖아요. 제가 뭐 긍정의 아이콘이거나 항상 생글생글 웃는 것만은 아닌데, 자기 합리화를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요즘 결혼하고 싶은 여자로 지숙씨를 꼽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결혼은 언제 하고 싶어요?
전 데뷔 초부터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현모양처라고 대답했어요. 워낙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다 보니까 저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이왕 결혼할 거면 예쁠 때 하는 게 좋잖아요. 학부모끼리 모이면 그중에서도 젊고 예쁜 엄마이고 싶고.(웃음) 그래서 솔직히 결혼을 늦게 하고 싶진 않아요. 파스텔톤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이 좀 있어요.
다양한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할 것 같은 분이라 인생의 최종 목표가 궁금해요.
제 이름을 타이틀로 건 라디오 DJ를 하고 싶어요. 그건 결혼한 후에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사연이나 고민을 들었을 때, 미혼자와 기혼자가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다를 테니 좀 더 폭넓은 얘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가정의 엄마가 되고 싶지만 동시에 제 에너지를 잃고 싶지도 않아요. 결혼과 DJ, 하고 싶다아!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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