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이 차가우니 밥은 뜨거워야 한다

 

음식은 시간 속에 존재한다. 대부분은 그 황홀한 맛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그때 조용히 종이와 펜을 드는 한 사람, 요리사 박찬일이다. 누군가 기록해 두지 않으면 영영 스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쓰고 또 쓴다. 그의 8번째 책 『뜨거운 한입』에도 짭짤하고 풍미 돋는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더운 김이 오르는 이야기를 우물거리며, 요리사 박찬일이 있는 서교동 몽로를 찾았다.

 

우린 좋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지 먹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요리사의 속사정
돼지고기 볶음

 

“요리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제가 외아들인데 요리사라니. 당치도 않죠. 의사도 아니고.” 대부분의 20대가 그러하듯, 박찬일의 20대도 미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한 잔에 300원 하는 막걸리와 돼지 껍데기 볶음을 먹더라도 까다롭게 굴긴 했다. 맛이 있는 집에는 충성하고, 그렇지 않은 집에는 절대로 다시 가지 않았다. 그 까다로움이 재료가 되어 지금의 요리사 박찬일이 됐다. 영화감독 트뤼포가 영화광이 되는 길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하지 않나. 1단계 반복해서 보기, 2단계 그에 대해 비평하기, 3단계 직접 만들기. 꼭 그렇게 요리광이 되었다. 입맛 까다로웠던 대학생이 잡지 기자가 되어 요리에 대한 글을 쓰다 직접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으니.

 

요리사님 만나러 간다니까, 주변에서 다들 요리하는 사람은 평소에 뭘 먹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정말 대충 먹는데. 예를 들어 쟤네(주방 후배들) 점심 먹는 거 보면 진짜 끔찍하거든요. 나도 맨날 먹지만.(웃음) 거지 같은 싸구려 햄 있잖아요, 거기다 대충 김치 넣고 끓여 먹거나. 팔다 남은 재료 먹어요. 예를 들어 가지를 속만 쓰고 껍질은 잘라 냈다, 그럼 그걸 볶아서 먹는 거예요. 손질하고 남은 돼지고기에 간장 넣고 볶아 먹기도 하고.

 

손님에게 줄 음식은 온갖 정성을 담아 만들고 정작 자신이 먹을 음식은 대충 만든다니 아이러니하네요. 요리사에게 먹는다는 의미는 뭘까요?

칼로리죠! 노가다를 하니까 보충을 해줘야 하거든요. 그건 어디나 비슷하더라고요. 서양의 별 달린 유명한 식당을 가 봐도 별거 없어요. 닭 튀긴 것 주워 먹고. 불규칙하게 먹으니까 섬세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원래 노동을 하면 그런 음식들이 당기는 법이니까.

 

끼니만 때우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아요.

뭐 어쩌겠어. 우린 좋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지 먹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방송에 나오는 스타 셰프들도 똑같아요. 멀리서 보기엔 화려해도 사실 무지하게 힘들지. 요리사들은 사회에서 하위 직군에 속하기 때문에 벌이도 많지 않고요. 역사상 항상 그래 왔죠. 고급 요리를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은 항상 달랐거든요. 요리가 정치적이라는 게, 요리로 위용을 과시하고, 상대방을 섭외하고 또 차별을 하기도 하니까 그게 일종의 정치 같다는 거거든.

 

제 요리엔 제 생애가 반영되어 있어요.

 

책에 없는 요리
홍합 된장국

 

몽로에‘빵에 발라 먹는 절인 대구와 으깬 감자 스프레드’라는 메뉴가 있다. 호기심에 주문했는데, 먹어 보곤 대구와 감자의 조화로운 식감에 깜짝 놀랐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구를 보면 자연스럽게 무와 함께 끓인 대구탕을 떠올릴 텐데, 이런 독특한 재료 조합은 어떻게 생각해 내는 걸까. 좋은 요리사에게는 예술가적 상상력이 필요한 걸까? 요리사의 상상력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담백하다. 한국에서야 대구와 감자의 조합이 독특하다고 생각되지만, 서양 사람이 보면 대구와 무로 끓인 탕이 더 신기하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다 창작의 요소가 되죠. 제 요리엔 제 생애가 반영되어 있어요.”

 

지금 계시는 가게 몽로를 무국적 술집이라고도 부르던데….

특정 국가의 요리라고 하긴 어렵죠. 제가 이태리에서 공부했으니 아무래도 베이스는 이태리식인데, 재료는 한국 것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책에서 배운 레시피를 그대로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프로의 세계로 갈수록 그런 경우는 점점 줄어들어요. 책에 없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 진짜 뛰어난 요리사지. 익숙한 요리도 거기다 어떤 영감을 입히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 예를 들어, 바지락 된장찌개는 누구나 하는 요리겠죠. 그렇지만 재료에 어떻게 힘을 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요리가 되거든요. 어떤 바지락을 쓰느냐, 파를 미리 넣고 푹 끓이느냐, 아니면 나중에 생파를 살짝 얹어 내느냐. 이런 사소한 차이로 다른 맛을 내요. 그런 걸 판단할 수 있어야겠죠.

 

어딘가에서 먹었던 맛을 기억해서, 자신 요리에 잘 반영할 수 있어야겠네요.

당연하죠. 요리에 자기 경험이 어떻게 투영되느냐를 고려하는 게 좋은 요리사예요. 이번에 쓴 『뜨거운 한입』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전 홍합 요리를 할 때마다 매물도에서 먹은 홍합된장국을 떠올려요. 거기서 먹었던 홍합이 정말 굉장했거든. 요란한 양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숙성 기술이 들어간 것도 아니지만, 그저 홍합이 좋기 때문에 좋은 맛을 내는. 그런 원형에 가까운 맛을 내는 것이 제 홍합 요리의 최종 목표예요.

 

항상 강조하시는 ‘로컬 푸드론’?(웃음)

재료는 생산되는 곳을 떠나면 맛이 빠지기 시작해요. 생산지에서 밥상까지의 거리가 짧을수록 좋은 거죠. 이전에 냉이 향을 오랫동안 쓰고 싶어서 에센스 뽑아 냉동해 놓은 적이 있는데, 일주일 뒤에 꺼내 봤더니 향이 다 달아났더라고요. 냉이의 향을 즐기기 위해서는 결국 제철에 아쉬울 때 먹을 수밖에 없는 거지. 사람들이 옛날 냉이는 맛있었는데 요즘 냉이는 맛이 없다는 소릴 하잖아요. 제 생각엔 옛날에 먹었던 냉이는 자기 어머니가 직접 캔 걸 바로 먹으니까 맛있었던 거예요. 마트에서 파는 캔 지 한참 지난 냉이랑 비교가 될 리 있나.

 

왜 꼭 일이 좋고 즐거워야 해요? 즐겁지 않더라도 그 일을 평생 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는 거죠.

 

박찬일식 위로
구운 소시지

 

“사람들이 맛없다고 한 메뉴는 안 팔아요.” 박찬일은 요리가 주관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이라면 내 요리가 맛없다는 말에 노발대발할 법도 하지만 그는 관대하다. “이태리식 생소시지를 만들었는데 그게 이태리에서 먹던 딱 그 맛인 거예요! 근데 사람들은 맛이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여러 번 먹었으니까 그게 맛있는데, 남들은 익숙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안 팔아요. 여기 온 손님들한테 다섯 번 먹어보면 맛있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요즘엔 다들 식당에 가기 전에 먼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걸 악용해서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소위 맛집이라고 불리는) 저급 식당들도 늘어났고.

옛날에는 맛집이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있었거든요. 기껏해야 맛집을 아는 사람을 골라서 신문에 글 몇 줄 쓰게 하는 정도였으니까. 보는 사람이 극히 제한적이지. 이젠 ‘맛집’이라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된 것 같아.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재밌잖아. 거기에 불순한 의도가 개입하는 건 분명히 문제지만, 어쩌겠어. 다만 그걸 보고 갔다가 맛이 없으면 화가 나니까 나름대로 감별하려고는 해요. 이제 대충 알겠어요. “했어요~♪” 이런 이모티콘 쓰는 데는 맛집 아니에요.(웃음)

 

경쟁자의 편법을 그렇게 관대하게 볼 수 있다는 건, 이미 성공한 사람의 자신감 같아요. 명성도 있고, 책도 여러 권 내셨으니까. 요리사님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아 성공하고 싶은데,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몰라서 좌절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자기가 택한 전공을 가지고 먹고살 수 있고, 그걸 오래 하면서 재미를 발견하고 그러면 좋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꿈을 찾는 것과 생계를 유지하는 것. 둘 다 중요해요. 왜 꼭 일이 좋고 즐거워야 해요? 즐겁지 않더라도 그 일을 평생 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는 거죠. 그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그 일이 좋아서 시작한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버티는 거예요. 그 일로 자기 생을 책임지고 있다면 충분히 훌륭한 사람인 거죠.

 

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초라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요리사님 주변의 20대들에게도 이런 상담을 종종 해주시나요?

후배들한테는 칼질이나 열심히 하라고 해요. 인생은 어떻게든 돌아가게 돼 있다고. “돼, 그니까 열심히 해. 맨날 무슨 인터넷 요리사 갤러리 가서 에드워드 권이 어쩌네, 미슐랭 별이 어쩌네 이런 소리 하지 말고 요리나 열심히 해, 이 새끼야.” 이렇게요.(웃음)

 

Editor 김혜원 hyewon@univ.me
Photographer 이승한 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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