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완벽한 기량
PARK GI RYANG
나는 자타 공인 ‘야빠’다. 8살 때부터 한 해도 쉬지 않고 야구장을 들락거렸다. 그동안 단상 위에서 내 동공을 유혹했던 예쁜 누나, 동생은 숱하게 많았다. 하지만 이토록 완벽한 기량을 가진 치어리더는 내가 아는 한 처음이다. 천사 같은 미소는 기본이요, 춤은 또 어찌나 시원시원하게 잘 추는지. 퍼펙트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사심을 가득 품고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벌거벗고 춤추는 사람 아니에요
반갑습니다, 어여쁜 기량씨. 요즘 푹 잘 쉬고 계신가 봐요. 피부 물광이 아주 끝장나십니다!
제발 좀 쉬었으면 좋겠네요.(울음) 저에게 매년 3월은 ‘마의 달’이에요. 농구 플레이오프와 다가오는 야구 개막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거든요. 일 년 중 제일 바쁜 한 달이죠. 올해는 롯데 치어리더가 많이 바뀌어서 손발을 새로 맞추느라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살고 있답니다.
처음 치어리더를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요?
고등학교 시절 취미 삼아 일을 시작했는데 대학에 갈 때가 되자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겨우 설득해서 항공운항과를 다니며 일을 병행할 수 있었죠. 그러다 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자 아버지가 이제는 정말 그만두라며 엄포를 놓으셨어요. 근데 그때는 오랜 꿈이었던 승무원이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야구가 정말 미치도록 좋았으니까요. “지금 아니면 언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라며 울고불고 어렵게 아버지를 설득했죠.
2013년엔 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진솔한 모습을 보여줬고, 최근엔 다양한 방송 출연을 통해 많은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어요. 방송 출연 이후 달라진 것이 있나요?
<사람이 좋다>를 찍은 이후 치어리더에 대한 안 좋은 시선들이 많이 사라진 거 같아요. 예전엔 벌거벗고 춤춘다느니, 경기에 방해된다느니 하는 말들을 곧잘 들었거든요. 근데 저희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땀 흘리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시곤 응원하는 분들이 엄청 늘어났어요. 저와 동료들에겐 정말 고마운 프로그램이죠.
방금 말씀하신 몰상식한 말들을 팬들로부터 들으면 정말 힘 빠질 거 같아요.
엄청 속상하죠. 치어리더들이 1분 30초짜리 공연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안다면 그런 말씀 쉽게 못 하실 거예요.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안무 연습하고, 짬 내서 몸매 관리까지 하며, 팬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정말 선수들 못지않게 땀 흘리고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좀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몇 년 전부터 치어리더 ‘팀장’을 맡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팀원들 스케줄 관리, 음악 편집, 안무 총괄이 주 업무이고요. 수시로 연습생들 교육도 하고 있죠. 사무실에 번듯한 제 자리와 컴퓨터도 있어요. 기본적인 치어리더 일 외에 행정적인 업무까지 도맡고 있다 보시면 돼요.
스물다섯, 9년 차, 팀장, 성공적
훌륭한 리더십은 말보단 몸으로 보여주는 거잖아요. 기량씨의 ‘기량’은 팀원들에게 존경 받을 만한가요?
치어리딩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팀이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을 뽐내기보단 손끝 하나까지 맞춰가며 군무를 잘해야 하잖아요. 저보다 춤 잘 추는 동생들은 많지만, 노하우나 노련미는 확실히 제가 가장 뛰어나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어린 나이에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였나요?
팀원들이 잘못 했을 땐 따끔하게 지적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잖아요. 근데 제가 나이도 어린 데다 싫은 소리를 잘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지도가 필요할 때 정색하며 화내지 못하고, 짜증 아닌 짜증만 냈던 거 같아 동생들에게 정말 미안해요. 지금은 화낼 일 없게 다들 잘 따라와 줘서 이런 고민들이 싹 사라졌죠!
치어리더도 사람인 이상 경기가 지고 있으면 기분이 처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멘탈 관리’를 하시나요?
저도 처음엔 표정 관리를 정말 못 했어요. 근데 맨 앞에서 응원을 유도하는 치어리더가 기 빠진 표정을 짓고 있으면 팬 분들은 얼마나 힘이 빠지겠어요. 그래서 경기장 분위기가 다운될 기미가 보이면 저희가 훨씬 더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려고 노력하죠. 항상 팀원들에게도 이야기해요. “어떤 근심 걱정이 있어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을 지어라!”(웃음)
야구, 농구, 배구 등 여러 종목을 맡고 있지만, 롯데에 대한 애정이 유독 남다를 거 같아요.
2009년부터 롯데 응원을 시작했어요. 야구의 ‘야’ 자도 모를 때인데 그 당시 워낙 팀이 잘하다 보니 야구와 자이언츠의 매력에 신나게 빠져들었죠. 팬들이 ‘롯데 여신’이란 애칭도 붙여주셔서 정말 영광이예요. 워낙 사랑 받는 팀이다 보니 덩달아 저까지 예쁨을 받은 거 같네요.
최근 롯데 성적이 부진하면서 ‘구도 부산’이란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사직 구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이 급격히 줄었어요.
몇 년 전만 해도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늘 매진이었어요. 원정 좌석까지 롯데 팬들이 모조리 점령했었죠. 근데 요즘엔 단상 위에 올라가면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텅 빈 주황색 의자 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저희도 힘이 빠지는데 선수들은 오죽하겠어요. 다시 예전처럼 많은 팬들이 사직 구장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좋은 성적으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확신해요. 아, 그리고 올해 새로 들어온 치어리더들 미모가 정말 헉! 소리 난답니다.(속닥)
원정 응원을 가면 치어리더 대기실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밥 먹고 옷 갈아입는단 얘기를 들었어요. 정말 충격적인데요.
막상 저희는 크게 불편함을 못 느껴요. 원래 내 집에선 편하게 있어도, 남의 집에 가면 살짝 불편한 걸 감수해야 하잖아요. 팬들은 화장실에서 저희를 보면 깜짝 놀라시죠. 여기서 뭐하느냐며 눈을 휘둥그레 뜨는 분들도 있고, 같이 사진 찍어 달라는 분들도 있고요.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것들도 다 원정 응원 갈 때의 깨알 재미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1등 치어리더의 책임감
상당히 털털한 성격이신 거 같네요. 차가운 첫인상과는 달리 내숭이 전혀 없으세요.
아까 저보고 엄청 못되게 생겼다고 하셨죠?(빠직)
저만의 애정 표현 방식입니다.
저를 처음 보는 분들은 무섭게 생겼다, 도도해 보인다, 까칠해 보인다, 심지어 ‘4가지’ 없어 보인다고도 말씀하세요. 근데 대화 몇 마디 나눠보면 다들 놀라세요. 목소리도 굵고 말투도 선머슴 같아서요.
지금은 예쁘고 건강한 20대이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직업 특성상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가끔은 하죠. 근데 지금은 앞만 보고 나아가야겠단 생각이 강해서 그런 고민은 별로 안 해요. 만약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면 치어리더 매니지먼트나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어린 친구들을 멋지게 키워보고 싶어요. 또 다른 목표는 모든 치어리더들이 정규직 대접을 받으며 월급을 받는 여건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월급이 아닌 하루 일당으로 받는 급여 체계거든요.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다른 치어리더들보다 제가 한 발짝 더 뛰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방송 활동을 왕성히 하는 걸 보고 ‘박기량이 연예인 하고 싶어 하는구나’란 말들이 많아요. 이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어린 나이에 치어리더란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것만 쭉 하고 있는 거잖아요. 다른 일들은 일절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은 욕심은 분명 있어요. 그래서 방송 출연 섭외가 들어오면 흔쾌히 나가는 거고요. 근데 지금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연예인 하고픈 마음은 절대 없어요. 몸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치어리더만 할 거예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기량에게 ‘응원 단상 앞 대포 카메라’란?
두려운 존재이면서 감사한 존재죠. 항상 역동적으로 춤을 추고 있기 때문에 ‘살 떨리는’ 굴욕샷도 많이 나오지만, 저를 더 알릴 수 있고 제 젊은 날의 기록을 남겨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잖아요. 이제 곧 야구가 개막하는데 10개 구단 모든 팬 분들이 야구장 많이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포 카메라 들고 오셔서 제 사진도 많이 찍어 가세요~♡
Editor 이민석 min@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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