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는 이야기
작사가 김이나

 

매드 클라운의 ‘화’, 가인의 ‘애플’, 박효신의 ‘Shine Your Light’. 세 곡의 공통점은 올해 발표된 음원 차트 1위곡이라는 사실. 공통분모가 하나 더 있다. 작사가 김이나의 손을 거쳤다는 것. 조용필, 이선희, 가인, 아이유 등 다양한 연령대의 가수들과 함께 작업한 김이나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잘나가는’ 작사가다. MBC <나는 가수다>의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고, 지난 3월엔 책 『김이나의 작사법』을 출간하는 등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Abracadabra 다 이뤄져라

 

지금 ‘Shine Your Light’가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어요. 박효신씨랑 가사를 같이 쓰셨던데.
기분 좋아요! 사실 이전에 박효신씨랑 둘이 녹음실에 몇 시간씩 앉아서 썼던 게 있는데 아직 발표가 안 됐어요. 그때 많은 얘길 나눴죠. 가사 얘기보다 박효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Shine Your Light’의 경우 본인이 지향하는 바가 있었어요. 밝고 긍정적이면서도 단순히 연애 얘기를 넘어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싶다고. 제가 쓴 걸 보내드리면 박효신씨가 본인의 생각을 더하고, 그런 식으로 오가면서 썼어요. 박효신씨는 녹음할 때도 엄청 신중해요. 이미 완벽한데, 계속 다시 불러요. 진짜 잘하는 사람이 더해요.(웃음)

 

이번 경우처럼, 요즘은 음원 차트에 성적이 바로 드러나잖아요. 반대로 기대했던 곡들이 잘 안 되면 속상하실 것 같아요.

초반에 순위를 확 끌어올리는 화력은 분명 가수와 곡이에요. 가사는 반응이 천천히 오거든요. 제가 뿌듯할 때는 롱런을 할 때예요. 여러 번 듣다 보니 ‘아, 이게 이런 내용이었구나’, ‘가사가 되게 좋네’ 생각하게 되는 거거든요. 반대로 상위권에 올랐다가도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면 속상해요. ‘부가적인 매력을 못 줬구나’ 싶어서. 가사가 뒷심을 담당한다고 보시면 돼요.

 

이선희씨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가 롱런한 데는 가사 덕도 컸을 것 같아요! 김이나씨의 가사는 아이유, 가인의 곡부터 이선희, 조용필까지 스펙트럼이 넓어요.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은 좋아요. 근데 전업 작사가라면 당연한 것 같아요. 만약 내 얘기를 폭넓게 쓴다면 정말 대단한 거겠죠. 근데 전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그에 맞는 가사를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아이돌에겐 아이돌 화법으로, 베테랑에겐 베테랑 화법으로 써야죠. 음반 마스터링 하시는 전훈 기사님이라고 계세요. 그분은 강렬한 사운드의 댄스 곡부터 악기 한두 개만으로 이뤄진 포크 발라드까지 다루시거든요. 저도 비슷한 거죠.

 

요즘은 싱어송라이터도 워낙 많잖아요. 또 원래 꿈이 작곡가였다고 들었는데, 본인이 쓴 곡에 가사를 쓰고 싶진 않으세요?

초기엔 그랬어요. 초보들은 안 되는 이유를 자기 밖에서 찾거든요. 내 가사가 까이는 건 못 써서가 아니라 내가 덜 유명해서, 이 사람이 내 감성을 이해 못 해서라고 생각했죠. 그럴 때 내 곡이 있으면 내 가사를 붙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사실 아마추어적인 생각이죠. 이제 작곡은 엄두를 못 내요. 싱어송라이터처럼 되고 싶다는 건 자기 세계의 표현 욕구가 강하다는 얘긴데, 그럼 저처럼 일 못 할 걸요? 내 얘기만 하고 싶다면 빅스와 조용필을 아우르는 가사를 어떻게 쓰겠어요. 전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쓰니까 굉장히 자유로워요.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윤종신씨를 보면서 천재의 번뜩이는 순간만큼 꾸준함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김이나씨도 최근 몇 년 꾸준히 가사를 쓰고 계세요.

저희 업계에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어요. 봄, 가을이 성수기고 겨울이 비수기예요. 요즘은 봄 캐럴들 때문에 봄도 많이 피하지만.(웃음) 많이 쓸 땐 한 달에 20~30곡도 쓰고, 적을 땐 7~8곡? 꾸준히 쓰긴 했죠.

 

<엔터테이너스>에서 가사 노예를 연기하시기도 했는데, 많이 쓰다보면 지치지 않으세요?

일에 치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일이 없으면 불안하죠. 프리랜서니까. 특히 이쪽은 트렌드를 많이 타잖아요. 유명하던 사람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돌아오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가끔 인간관계가 힘들 땐 있지만 일적으로는 힘들지 않아요. 워낙 제가 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제가 재능을 가졌다면, 10년 넘도록 여전히 이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꾸준한 활동 덕에 올해의 작사가상도 많이 받으셨어요. 단순히 수익이 많이 난다고 해서 상을 몇 년째 주진 않을 것 같은데, 수상 기준이 무엇일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심사위원들한테 가서 그것 좀 취재해주시면 안 돼요?(웃음) 저도 그 기준이 정말 궁금해요. 아, 가장 최근에 저작권협회에서 주신 상은 수익을 누가 제일 많이 냈느냐가 기준이었대요. 사람들은 ‘상업적’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껴요. 근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좋은 글은 훌륭한 작가들이 잘 팔리는 글을 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확실한 메시지가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한테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글. 무조건 쉽고 자극적인 것만이 ‘잘 팔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너무 대중을 얕잡아보는 거죠.

 

몇 년째 잘되고 있으니, 불안한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음원 판매로 직결되는 건 아니거든요. 의뢰가 많이 올 수는 있겠지만, 가사가 안 좋으면 절대 못 써요. 가요 시장에서는 작곡가든 작사가든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네임 밸류가 있어도 금방 외면당하거든요. 제가 조금만 감을 잃으면 다들 눈치챌걸요? 그래서 항상 누군가가 새롭게 떠오르면 불안해요. 이름이 알려졌다는 건, 거꾸로 쉽게 지겨워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아이돌 가사도 많이 쓰고.

 

그러니 꿈꾸는 사람이라면, 오래 꿈을 꾸려면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 말라고 말하니까 하고 싶다

 

작사가로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100% 동의해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잖아요. 새로운 픽션이 나올 순 있지만 그것조차 몇 개의 틀 중 하나를 기본으로 해서 나오는 거니까. 그래서 전 가사를 많이 쓰면서도 소진된다는 느낌을 안 받아요. 작사는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미 있는 걸 어떻게 찾아내고 배치하는가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사가라면, 새로운 걸 쓰겠다는 생각이야말로 오히려 좀 오만한 생각 아닐까요.

 

대중가요는 전체적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본인의 경험은 한정돼 있을 텐데, 어디서 주로 영감을 얻으시나요?
가수랑 곡이요. 전 어릴 때부터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혼자 상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게 나도 모르게 몸에 익어서 지금은 그 습관이 작사가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가수가 갖고 있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가사를 쓸 수도 있고, 그 이미지를 깨는 게 효과적일 때도 있죠. 일단 곡 속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있어요. 영화 속 투명인간한테 먼지를 뿌리면 형태가 나오잖아요. 그것처럼 이미 곡 속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가시화하는 작업이 작사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섹시한 남자든 순종적인 여자든 캐릭터의 뼈대가 나오는 거죠.

 

10년 넘게 가사를 쓰다보면 트렌드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셨을 것 같아요.

‘썸’ 보면서 제일 많이 느꼈어요. 우리 때는 ‘썸씽’이라고 했었는데….(웃음) 말이 내 생활에 밀접하게 붙어 있어야 정확한 의미를 알고 쓰거든요. 당시 저도 ‘썸남썸녀’라는 곡의 가사를 썼는데 전 가볍게 즐기는 ‘밀당’ 정도로 ‘썸’을 해석했어요. 근데 소유&정기고의 ‘썸’ 속 남녀는 안타까워 죽더라고요.(웃음)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랐던 거죠. 또 예전엔 어디서 누가 듣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사들이 사랑받았다면, 요즘은 곡마다 타깃이 달라요. 10대를 겨냥한 노래라면 그 정서에 딱 들어맞는 가사가 필요한 거죠.

 

들으면서 질투 나는 노래 가사도 많았겠어요.
그것도 ‘썸’이요!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란 말 자체가 유명해졌잖아요. 가사가 유행어가 되는 것이야말로 정말 잘 썼다는 거거든요. 멜로디 없이도 모두에게 공감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니까. 블락비의 지코도 대단해요. 힙합이 미국 음악이다보니 아무래도 서양적인 접근을 하게 되는데, 그 친구 음악엔 한국적인 흥이 있어요. 블락비의 ‘Her’나 ‘닐리리맘보’가 서태지의 ‘하여가’, 타이거JK의 ‘Liquor Shots’의 뒤를 잇는 흥이라고 생각해요. 어르신들도 듣고 어깨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은 곡이랄까?

 

When You Shine Your Light

 

가사 쓰는 것과 글 쓰는 건 다르잖아요. 책 쓰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뭐예요?

자서전은 아니지만, 내가 가사를 쓸 때의 이야기니까 어쨌든 내 얘기잖아요. 그게 겁이 나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건 굉장히 신이 나는데…. 제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걸 들킬까봐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작사가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미술사를 전공하셨더라고요?

저는 음반 산업계에 들어가겠다는, 어찌 보면 추상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직장 다니면서도 이력서를 꾸준히 넣었죠.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건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꿈이 있으면 그걸 일단 마음속에 단단히 꽂아놓고, 일단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야 기회도 오거든요. 전공은 그냥 재밌어서 택한 거예요. 대학 땐 재밌는 거 하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아무리 열심히 했더라도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공부는 나중에 써먹을 수 없잖아요.

 

책 서두의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되는 걸 경계하라”는 말이 그런 맥락이네요.

그렇죠. 사실 저도 못 했어요. 다음 날 회사 가야 하는데 가사 들여다보느라 밤샌 적도 많거든요. 대중가요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모두가 서태지는 아니에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악에 올인해 성공한다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크잖아요. 물론 제 말 듣고 묻히는 몇몇 천재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웃음) 저도 천재가 아니었거든요. 현실을 버텨내지 못하면 꿈이고 뭐고 없어요. 그러니 꿈꾸는 사람이라면, 오래 꿈을 꾸려면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 작사가가 학창 시절 제 꿈 중 하나였어요. 작사가가 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제일 답답한 것 중 하나가 ‘양비론 쩐다’는 인터넷 댓글이에요. 사람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걸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면 양비론이라고 욕해요.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이해하지 못하면 작사가로서 오래 버티기 힘들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야죠. 그건 후천적으로도 키울 수 있어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돼요.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어요.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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