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풀 옵션’을 장착하고 태어났더라면

호감형의 예쁜 얼굴, 야식을 흡입해도 좀처럼 살이 찌지 않는 체질, 딱 3일 공부하고도 전교 5등 안에 드는 좋은 머리, 누구와도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성격까지. 좋은 건 죄다 갖고 태어난 친구 A가 있었다. 어쩜 그렇게 세상 살기에 편한 옵션만 쏙쏙 골라 갖췄는지. 볼 때마다 그저 부럽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A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그녀와 나의 옵션 차이가 가장 명확하게 느껴지는 때는 시험 기간이었다. 양심상 보름 전부턴 책 붙잡고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했던 나와는 달리, A는 늘 시험 기간 3일 전에야 벼락치기를 했다.

 

시험날 아침이면 A가 “어제 밤새웠어.”라며 살짝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그럼에도 결과는 앞서 예고한 대로 항상 전교 5등 안에 들었다. A보다 열흘이나 먼저 공부를 시작해 놓고도, 전교 5등은커녕 50등 언저리를 간신히 유지했던 나는 A의 타고난 머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풀 옵션을 장착하고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열흘씩 노력할 필요 없이, 딱 3일간 책만 들춰보고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언제부턴가 A를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이런 바람을 지니게 된 순간부터 내 눈엔 남들이 갖고 태어난 옵션들이 지나치게 빛나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도 타고난 것을 더 알아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연 미인’이나 ‘천재’, ‘금수저’처럼 노력 없이,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옵션을 장착한 사람들은 미디어에서도 늘 동경의 대상인 것처럼 묘사되곤 했으니까. 그러니 왠지 노력하는 것이 시시하게 보였다.

 

지난 수백년간 ‘천재’ 모차르트는 동경의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모차르트만큼 잘난, 그러나 ‘노력파’였던 살리에리는 아무도 동경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 존재인 것만 봐도 그랬다.

 

그래서 타고난 ‘척’해봤더니

타고난 것이 더 인정받고, 만인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니 배가 아팠다. 남들은 타고난 옵션 덕에 척척 해내는 것을 끙끙거리고 애를 써야 겨우 할 수 있는 나의 ‘깡통 옵션’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따금씩 나도 있어 보이기(?) 위해 타고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해놓고도 큰 노력 없이 이 정도쯤은 잘 해내는 척, 뒤에선 많이 참고 있으면서도 원래 성격이 좋아 허허실실 넘어가는 척 등등. 내가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애 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척’했다. 이까짓 거에 노력을 쏟는다는 게 시시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타고난 ‘척’을 하고 난 뒤에는 언제나 공허감이 밀려왔다. 난 왜 뭐 하나 제대로 타고나지 못해 이 고생을 하나 싶어 우울해하거나, 내게 그럴싸한 옵션을 물려주지 않은 유전자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남들이 가진 옵션을 부러워하는 데만 시간을 쏟다 보니, 내 상상 속에서 남들은 점점 잘나지고, 나는 점점 못나져 갔다. 자존심을 구하려다 도리어 자존감만 뚝뚝 떨어진 꼴이 되어버린 거다.

 

가장 큰 문제는 애쓰는 걸 시시하게 여기기 시작하며 ‘잘 하지도 못하는데 노력도 하지 않는 애’의 전형이 되어갔다는 거다. 대충 타고난 ‘척’하며 눈속임할 수 있는, 비교적 손쉬운 과제들은 잘 넘어갔지만 그렇지 않은 과제들을 만나면 금세 능력치가 들통났다.

 

분명 세상엔 애쓰고 노력해야만 하는 순간도 존재했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한계를 돌아보게 됐다.

 

 

흠 없는 완제품은 아니지만, 핸드 메이드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공장에서 출고될 때부터 풀 옵션을 장착한 완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즉, 무언가를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건대, 타고나긴커녕 노력이라도 해야 중간이나마 가 닿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인정만 하고 말면 너무 슬플 것이므로, 타고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초라해질 때면 정신 승리할 방법을 찾았다. 바로 ‘핸드 메이드 인생론’이다!

 

방법은 간단한다. 내 인생을 완벽하게 찍어낸 완제품이 아닌, ‘핸드 메이드’라고 정의하는 거다. 세상엔 멋진 모습으로 ‘짠!’ 하고 태어나는 완제품도 있지만, 투박한 손길로 깎고 깎아 만들어지는 핸드 메이드 제품도 있다. 타고나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이 초라해질 땐, 내가 아직은 미완이지만 정성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지고 있는 핸드 메이드 제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핸드 메이드는 완제품의 타고난 완성도를 따라갈 순 없겠지. 만드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렇지만 노력을 쏟고 정성을 들여 만들어진 결과물이기에, 풀 옵션을 장착한 완제품 만큼 값어치 있는 물건이 될 테다. 그러니 오늘도 타고난 게 없어 슬픈, 나 같은 이들은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애쓰고 노력한 만큼 점점 그럴싸해지는 핸드 메이드처럼, 우리 인생도 깎고 깎다 보면 적어도 어제보단 더 나은 오늘의 결과물을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간 꽤 값 나가는 핸드 메이드 인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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