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배운다,
그래서 배우다
“xie xie, 양꼬치엔 치잉따아오~” 정체불명의 중국어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고, 세상에서 가장 시건방진 표정으로 성룡을 흉내 내는 남자. 대중이 원하는 웃음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낸 정상훈의 내공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다. 어깨가 잔뜩 올라갈 만도 한 요즘이지만, 그는 오늘도 낮은 자세로 배운다. 지금보다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나는 무대에서 초라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연기에 대해 늘 깊게 고민하고 연구한다.
진득하게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양꼬치 같은 남자
<SNL> ‘양꼬치엔 칭따오’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코너를 준비하면서 이걸 어떻게 풀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엉터리 중국어 코미디는 예전부터 있어 왔던 식상한 소재니까. 생각을 거듭하던 중 예전에 공연했던 뮤지컬 <스팸어랏>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 당시 프랑스인 역할이었는데, 개그 포인트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프랑스어와 결합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기억이 났다. 그때의 경험을 되살려 이번엔 경상도 사투리와 중국어를 합친 거지.
이 빵 터지는 특파원 이름은 본인이 직접 지은 건가?
아쉽게도 그 정도의 창의성은 나에게 없다. 작가님이 던져준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거다. 삼겹살과 소주, 치킨과 맥주처럼 궁합이 잘 맞는 친숙한 소재를 이름으로 가져온 게 웃음 포인트이다. 사실 양꼬치와 칭따오도 같이 먹으면 맛있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우리 오늘 양꼬치랑 칭따오 먹으러 가자!”라는 말은 친구끼리 잘 안 하지 않나. ‘삼소’, ‘치맥’과 달리 평소 잘 쓰지 않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름을 찾아낸 게 신의 한 수였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놀이’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나?
사실 급하게 투입된 땜빵 작품이다. 원래 하기로 했던 코너가 갑자기 엎어지게 됐거든. 그래서 작가들이 부랴부랴 새 대본을 써서 촬영 당일 새벽 1시에 나에게 대본을 보냈고, 10시간 후 녹화에 들어갔다. 다행히 어렸을 적부터 그림자 만드는 걸 좋아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현장에서 그림자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으니 새, 동물, 사람이 금방 내 손에서 만들어지더라. 이제 와 고백하건대 그림자는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라, 선생님과 내가 합작해서 만든 공동 작품이다.
원래 미대생이었다고 들었다.
그림자 만드는 걸 봐서 알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그림을 잘 그려서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하게 됐지. 그러다 1학년 때 학교 축제가 열렸는데, 오기로 했던 연예인 MC가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 못 오게 됐다. 선배들에게 등 떠밀려 얼떨결에 마이크를 잡게 됐는데 재밌더라고! 그때 내게 끼가 있구나, 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그래서 학교를 휴학하고 연극영화과 입시에 도전했다.
타고난 재능이 있었나 보다. 딱 1년 준비하고 서울예전에 합격한 걸 보니.
고등학교 때도 연기에 관심이 있긴 있었다. 근데 현실을 무시할 수 없으니 좋아하는 것보단, 잘하는 걸 하자는 생각으로 미대에 진학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대학에 오고 나니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엄청 많아지더라. 그러다 한 교수님이 던진 ‘뻔해 빠진’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주변 시선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라, 라는 하나 마나 한 얘기 있지 않나.(웃음) 그 말이 머리를 꿍! 때리더라고. 좋아하는 걸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연기에 도전하니 금방 되더라.
데뷔 10년이 넘은 베테랑 배우인 당신을 개그맨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서운하지 않나?
그런 건 전~혀 없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연기는 남을 웃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코미디는 존경 받아 마땅한 장르다. 톰 행크스나, 故 로빈 윌리엄스같이 내가 존경하는 배우들은 남들을 즐겁게 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다. 진짜 좋은 배우는 코미디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말들이 고맙게 들린다. 개그맨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가 재밌다는 말이지 않나.
배우로서 이미지가 하나로 굳어지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예전엔 좀 걱정이 됐다. 그래서 뮤지컬에서만큼은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었지. 근데 들어오는 배역이 다 주인공 옆에서 깐족대는 감초 역할이더라고. 내가 보는 내 모습과,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차이가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웃음) 근데 사실 무언가 하나를 특출나게 잘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만 잘해도 세상에 필요한 인재가 된다. 밥 벌어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혹자는 별로 어렵지 않다는 뉘앙스로 “하나만 잘하면 돼”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주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배우’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것만큼은 어떤 배우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SNL> 정상훈 말고, ‘배우’ 정상훈은 어떤 사람인가?
무대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배우의 능력이 고스란히 ‘뽀록’ 나거든. 그렇기 때문에 무섭기도 하지만 짜릿한 공간이기도 하지. 나는 무대에서 초라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연기에 대해 늘 깊게 고민하고 연구한다. 진실이 결여된 거짓 연기를 하면 관객들이 본능적으로 다 아니깐.
꼰대가 되지 말자고 하루에도 수백 번 되새김질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 가득한
칭따오 같은 배우
제일 자신 있는 것 한 가지를 꼽자면?
<미생>의 장그래처럼 노력의 양과 질이 다르다. 평소 스승처럼 모시는 분이 있는데, 그 형이 예전에 “연기자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냐?”고 물어서, 별생각 없이 “열심히 노력해야죠”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열심히는 누구나 해, 어떻게 현명하게 노력하느냐가 중요하지, 임마”였다. 그때부터 노력의 방법론을 연구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었다. 나보다 경력이 짧고 어린 후배한테도 연기에 대해 물었다. 혼자 10시간을 공부해야 할 것이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면 1시간 만에 습득할 수 있다. 상대가 누구든 배울 점이 있으면 굽히고 들어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코미디 연기를 하며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꼰대가 되지 말자고 하루에도 수백 번 되새김질한다. 남들의 말에 귀를 닫고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재기발랄한 감은 사라진다.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재밌는 소재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럼 귀가 얇은 게 유리하겠군.
말이 많은 사람보다는 잘 듣는 사람이 돼야지. 술자리에 가도 말 많은 선배 옆에는 앉고 싶지 않은 법이다. 그런 사람이랑 같이 앉으면 화장실 갔다 오는 척하면서 슬쩍 자리 옮기고 싶지 않나. 역지사지 입장에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을지 항상 경계하면서 귀와 지갑은 크게 열고, 입은 닫고 지내려 한다.
30대 초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38살이더라고. 근데 왜 ‘아저씨’ 느낌이 전혀 안 나는 거지?
배우는 순수함을 잃는 순간 생명을 다하는 거다.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 받고 쉽게 슬퍼할 줄 알아야 배우다. 세상만사에 별 감흥 없는 ‘아저씨’는 절대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다. 얼마 전에 영화 <위플래쉬>를 보면서 배우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저 배우들과 내가 동시대에 배우란 칭호를 달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영광인지 모른다. 정상훈이란 사람이 10년 넘게 배우로 살고 있다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풍기는 에너지가 참 건강해 보인다. 연예인답지 않은 순수함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제법 잘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정신연령이 딱 5살에 멈춰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순수해야 진짜로 즐거워서 웃을 수도 있고, 정말로 슬퍼서 울 수도 있다. 머릿속은 시커먼데 겉으로 하얀 척을 하려고 하면 결국 대중에게 비치는 색은 두 가지가 섞인 회색일 뿐이다. 영원히 하얀 도화지처럼 순수하게 살고 싶다.
실제로 보니 ‘배우는 배우구나’란 생각이 든다. 정말 잘생겼다. 근데 이 잘생긴 얼굴을 너무 막 쓰고 있다…. 배우로서 망가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배우는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멋과 아우라는 상황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하듯이 말이다. 만약 이순신 장군님이 조선 시대가 아니라, 요즘 같은 때에 태어났으면 지금처럼 후세에 영원히 회자되는 영웅이 될 수 있었겠나. 난세가 충무공을 탄생시킨 거다. ‘양꼬치엔 칭따오’도 솔직하고 엉뚱한 매력을 바라는 대중의 니즈를 충족시켰기에 사랑 받는 것이다. 표정을 감추고 멋있는 척한다고 사랑 받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앞으로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한국 배우사에 한 획을 긋고 싶은 거창한 욕심 같은 건 전혀 없다. 그저 지금보다 더 많은 분들을 즐겁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내 아내와 자식들을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인기와 그에 비례하는 수입. 이 두 가지만 충족된다면 배우로서, 직업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제법 성공한 인생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웃음)
마지막 질문, 정상훈에게 ‘양꼬치’와 ‘칭따오 맥주’란?
한때는 양꼬치를 정말 싫어했었다.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나 감사한 존재이지.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한, 그리고 선물할. 양꼬치엔 칭따오, 무생물 주제에 나에게 이런 진한 감동과 사랑을 주다니. 영혼의 동반자로 앞으로도 영원할지어다~!
Editor 이민석 min@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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