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 그러다 헤어지면 어쩌려고?
식비, 모텔비, 데이트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돈이 모자랐다. 아직 대학생인 우리 수중엔 부모님께 받은 용돈 조금과 얼마 안 되는 알바비가 전부였다. 매번 떡볶이만 먹고, 값싼 모텔을 찾아 전전하는 연애에 지쳐갈 때쯤,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기로 결심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한 달 데이트 비용을 쓰는 것보다 월세비를 내는 편이 경제적일 것 같았다.
운 좋게도 월세 40만원짜리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알바를 해서 각자 20만원씩 부담하기로 했다. 본가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밥을 해 먹으니 지출이 훨씬 줄었다. 무엇보다 모텔 가는 것보다 집이 더 편하고, 밖에서 데이트할 때보다 애정 표현도 자유로워져서 좋았다. 가끔 집안일 문제로 다툴 때도 있었지만, 당번을 정해 역할 분담을 하기 시작하자 평화를 되찾았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에겐 너무 만족스러운 동거였기에, 친한 친구들에게 우리의 동거 소식을 알렸다. 언제 한번 놀러 오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친구들에게서 돌아온 말은 “너 그러다 헤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였다. 축하한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날 내내 친구들의 걱정 어린 눈빛을 받다 남자친구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2. 같이 살지만 집에는 따로 가자
나와 친하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줄 줄 알았던 친구들이 동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자 자신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은근히 신경 쓰였다. 남자친구와는 같은 과 동기인데, 결국 학교 사람들에겐 우리의 동거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친한 친구들의 반응을 보자, 학교에 소문나서 득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선 거다. 동기들에겐 그냥 친한 친구네 집에서 자취한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나 동거 사실을 숨기자 불편한 일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동기들을 속여야 하는 상황들이 생겨버린 거다. “너 친구네 집에 산댔지? 친구 누구?”라고 묻는 동기의 물음에 거짓말을 해야 했고, 누가 핸드폰 사진 앨범을 구경할 때마다 남자친구와 집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야 했다. 심지어 같이 살지만 집에는 따로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불륜 커플이라도 된 것처럼 학교에서 10분쯤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만나 귀가할 때마다 못내 씁쓸했다.
부모님께도 당연히 동거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했다. 엄마가 집 구경 한 번 하자고 할 때마다 룸메이트가 불편해한다며 뜯어말렸다. 한번은 남자친구 부모님이 갑자기 집 근처에 오신 적이 있었는데, 옷가지와 신발, 화장품을 옷장 깊숙한 곳에 숨기고 근처 카페로 피신(?)을 했다. 다행히 집까지 찾아오진 않으셨지만 회의감이 밀려왔다. 보호자도 필요 없는 다 큰 성인인 데다 월세도 직접 벌어서 내는 우리가 언제까지 모두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걸까. 너무 피곤했다.

 

#3. 동거하면 책임감이 없는 거라고?
남자친구와 과 행사 뒤풀이에 함께 간 적이 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다들 취했는지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 흉을 보기 시작했다. 별로 관심 없는 이야기라 아무 생각 없이 남은 안주를 뒤적이고 있었는데,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A는 남친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더라? 거의 동거 수준이던데?” “걔네 맨날 하겠네?” 그 자리에 없는 동기 A에 대한 얘기였다.
그 뒤론 성희롱 수준의 발언들이 이어졌다.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는 와중에 나와 남자친구만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우리가 동거한다는 얘길 꺼냈더라면 이 술자리의 안줏거리는 우리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나에게 동거는 남자친구에 대해 알아가며, 연인 사이가 성숙해질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는데. 다른 사람들 눈엔 그저 편하게 섹스를 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보이는 것 같아 슬펐다.
그런 시선을 증명하듯, 한 매체에서 ‘동거’에 대한 인식을 설문조사한 결과 ‘무책임하다’ ‘부도덕하다’라는 반응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더라.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루아침에 거두게 하진 못하더라도, 이거 하나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함께 살며 서로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전보다 훨씬 더 책임감 있는 연애를 하고 있다고. 진짜 부도덕한 건 동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성희롱 수준으로 모욕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동거 중인 20대와의 인터뷰를 재구성했습니다.


[902호 – 20’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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