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LIGHT of HI-LITE
래퍼 팔로알토

 

“다 튀려고 발악하다보면 참 보기 민망하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 억지로 드러내지 않아도 알아볼 사람은 알아보고”
6월 4일 새벽, 팔로알토가 트위터에 남긴 말은 그가 힙합 씬에 몸담아온 11년을 함축한다. 튀려고 발악하다 관객을 민망하게 만드는 일 없이 묵묵히 자신의 가사를 썼고, 그를 알아본 래퍼들은 하이라이트(HI-LITE) 레코즈에 모여 매 순간 하이라이트(Highlight)를 만들고 있다. 퍼거슨 영감님, 1승 추가 실패.

 

살면서 많이 느끼는 건 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항상 잘 알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시작부터 끝까지 하이라이트

 

래퍼이자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사장님이신데 소속 뮤지션들이 다들 부지런해요. 비프리, 허클베리피, 또 요즘 글로벌 이슈를 터뜨리고 있는 키쓰에이프까지. 회사 분위기가 그런가요?
회사 입장에서 아티스트한테 성실을 강요할 순 없어요. 기본적으로 애들이 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크니까 자연스럽게 작업량이 많은 거지. 아무래도 힙합 뮤지션들이 다들 그렇긴 해요. 가사를 쓰거나 비트를 만드는 작업이 일이기보다는 일상이니까요. 근데 저는 사실 작업량이 작품의 퀄리티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마다 성향이 다른 거니까. 작업량이 많지 않더라도 가끔 아주 멋진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도 분명 있거든요.

 

올해로 하이라이트 설립 5주년인데,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잖아요. 회사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뭐였어요?

회사를 세웠지만 전 기본적으로 음악 하는 사람이잖아요. 회사 자체가 소속 아티스트들과의 음악적인 유대감으로 시작한 거란 말이에요. 근데 회사를 운영하려면 냉정해져야 해요. 작업할 때나 공연장에서 같이 놀 때는 편하게 지내다가도 일할 때는 정색을 해야 하는데, 애들이 혼란스러워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제 입장을 100% 이해하긴 힘들겠죠. 그런 부분에서 내적 갈등이 좀 있었어요. ‘힙합계의 유비현덕’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었는데, 회사를 꾸려나가려면 조조가 되어야 할 때도 많거든요.

 

다 가질 수가 없다는 걸 알아차릴 때 어지럽혀 있던 모든 게 다시 제자리에(팔로알토 ‘좋은 밤’ 中). 제가 참 좋아하는 가사예요. 근데 사실 손에 많이 쥘수록 놓기는 더 힘들잖아요.
제 안에서도 업 앤 다운이 심해요. 욕심을 크게 부릴 때도 있고, 운명에 맡기자 싶을 때도 있고. 그 가사를 쓸 때 생각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 내 거를 정확히 알자는 거였어요. 꼭 음악 얘기만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많이 느끼는 건 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항상 잘 알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못하면 주변 사람에게도, 저에게도 안 좋은 일이에요.

 

아메바컬처부터 일리네어 레코즈, 브랜뉴뮤직 등 힙합 레이블이 많잖아요. 그 속에서 하이라이트가 지켜야 할 색깔은 무엇일까요?
하이라이트가 기존 시스템에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본인들의 음악을 한다는 면에서 많이들 지지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그것도 저희가 의도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거든요. 어쩌다 보니 기존 시스템에 불만이 많던 뮤지션들이 하이라이트에 모였고, 그 사람들이 같이 작업하니까 결과물도 그렇게 나오고…. 기본적으로 다들 고집이 세요. 팔이 안으로 굽겠지만, 제가 봤을 때도 저희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신념을 음악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멋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힙합이라는 문화가 멋없게 전파된다면, 차라리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요.

 

시간이라는 화살은
얼마나 더 멀리 날아갈까

 

싸이퍼 영상을 하나 봤어요. 다른 래퍼들은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이 제스처를 세게 하는데 팔로알토는 점잖게 리듬 타면서 자기 파트만 소화하시더라고요. 가끔은 더 튀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은데.
전 인상이 세지도 않고, 덩치도 작고, 래퍼 하면 연상하는 강한 이미지가 아니에요. 제 음악만 들으신 분들은 실제로 보고 많이들 놀라세요. “엄청 순하게 생기셨네요?” 하면서. 그래서 처음엔 센 척 좀 더 하라는 주문도 많이 받았어요. 근데 제 원래 성향과 가사, 랩, 모션, 표정, 이런 것들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잖아요. 평소엔 조용하다가 랩 할 때만 까불이 코스프레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니까. 보는 사람들도 어색함을 느낄 테고요.

 

예전 인터뷰에서 ‘힙합의 대중화’를 언급한 적이 있어요. 하이라이트 역시 힙합 대중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고, 동시에 수혜자이기도 한데….
그 말 자체가 좀 애매해요. ‘힙합의 대중화’가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거든요.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멋있는 사람이 등장해서 힙합의 멋진 부분들을 보여줄 수 있으면야 물론 환영이죠. 그 예가 빈지노예요. 모든 행보가 멋있었고 음악도 정말 잘하고, 유명하기까지 하잖아요. 이 시대의 리더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근데 제가 좋아하는 힙합이라는 문화가 멋없게 전파된다면, 차라리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요.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노는 게 낫지.

 

어릴 때 다짐한 그 모습대로 늙고파(‘Forest Gump’ 中)라는 가사를 보고 묻고 싶었어요. 진짜냐고, 진심이면 그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땐 좋은 마음을 갖고 사는데,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풍파를 많이 겪어요.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게 되니까 자기도 모르게 이기적으로 변해가요. 그러지 말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의 순수하고 선한 의도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제 셋째 큰아버지가 그러세요. 나이에 안 어울리게 피부가 반짝거리시고, 얼굴은 항상 웃는 얼굴이고. 저도 나이 들어서 그런 얼굴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일상과 평소 생각을 그대로 가사에 담는 편이세요. 근데 결혼도 하고, 회사도 자리 잡아 안정된 생활을 하다보면 그게 가사나 음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제가 군대 갈 때도 ‘군대 갔다 오면 감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많았는데 사실 전 동의할 수 없었어요. 감이 아니라 열정이 떨어진 거죠. 그래서 저는 군대에 있을 때도 열심히 가사 쓰고, 휴가 나올 때마다 피처링 참여했어요. 제대 후에 랩 늘었다는 말도 많이 듣고. 마찬가지로 결혼 후에 음악이 구려졌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음악에 담다보면 자연스럽게 제 변화를 받아들여주시지 않을까요?

 

본인한테 결혼은 어떤 의미였어요?
인생의 완성이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거든요. 부모님 두 분 사이가 정말 좋으셨어요. 그래서 긍정적인 에너지도 많이 물려받았고요. 당연히 저도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게 인생의 완성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작 결혼을 해보니까 앞으로도 해나가야 될 게 많겠더라고요.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 느낌? 바빠도 집에 들어가서 와이프를 보면 좀… 되게 행복해요. 와이프도 밝은 사람이라 제가 에너지를 많이 받고, 그 친구도 저한테 힘을 얻고.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계속 행복할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찾아보면 좀 더 다양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많거든요. 그게 다 힙합이라고 생각해요.

 

Hiphop is more than music

 

<쇼미더머니4> 심사위원으로 촬영을 시작하셨는데, 왜 수락했는지 많이들 궁금해해요. 지난 시즌 때는 거절하셨던 걸로 아는데.
하이라이트 뮤지션들이 가사에 대놓고 썼었죠. 레디는 “쇼미더머니 치트키 안 써도 한국 대표”라고 쓰고, 허클베리피도 나가는 것도 존중하지만 자기는 안 나갈 거라고 했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무엇보다 좀 더 새로운 영역을 경험해보고 싶었요. 그럼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니까. 또 방송에 나가면 좀 더 이름을 알릴 수 있고, 하이라이트의 아티스트들도 더 알려질 수 있잖아요. 제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무조건 나가라던데요? 와이프나, 절친들이나, 하이라이트 식구들이나.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뮤지션-관객이 아니라 심사위원-참가자로서 만났는데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하이라이트 뮤지션끼리 피드백을 구체적으로 안 해요. 좋으면 ‘좋다’, 별로면 ‘잘 모르겠다’가 끝이죠. 또 제가 좀 단순해서 이런 걸 보완하고, 이런 걸 살리라고 디테일하게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근데 참가자들은 디테일한 피드백에 목말라 있잖아요. 자연히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한테 마음이 움직이겠죠. 저도 맘에 드는 참가자를 봤을 때 그걸 표현하고 싶은데 “아, 진짜 너무 좋았어요” 이 정도니까 좀…. 아쉽더라고요.(웃음)

 

지코와 한 팀이 됐어요. 라인업이 공개되고 나서 심사위원 지코가 참가자 피타입을 평가한다는 거에 대해 말이 많았잖아요.
지코와는 같은 회사도 아니고, 같이 작업한 적도 없고 이번에 <쇼미더머니4> 하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사이좋게 잘 하고 있어요. 서로 배려하고, 의견 맞추면서. 그리고 참가자와 심사위원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해요. 스윙스부터 스내키챈 형, 바스코 형 다 나왔잖아요. 지코는 나름대로 자기 음악 만들고, 프로듀싱도 하면서 커리어를 쌓아왔기 때문에 제작진이 심사위원으로 선택했겠죠. 중요한 건 누가 얼마나 멋있는 걸 보여주느냐예요.

 

예전 인터뷰들을 보면, 음악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것의 즐거움을 강조하시더라고요. 그 즐거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어디서든 항상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근데 전 말수도 적고, 가끔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아요. 그냥 바보죠.(웃음) 대신 저에게 편한 소통 방식은 음악인 거예요. 주제를 던져놓고 가사를 쓰면, 디테일하게 얘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랩을 듣고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어요. 서툴게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와 닿을 때가 많죠. 하지만 ‘컨트롤 대란’ 때는 좀 아쉬웠어요. 다들 싸움 구경을 좋아하니까 화제가 됐고, 저도 흥미롭게 봤지만 그땐 사소하게 쌓였던 감정들까지 자질구레하게 다 쏟아내는 자리가 되어버렸잖아요. 그게 ‘디스전’을 대표할 수도 없고, 힙합을 대표할 수도 없는 건데.

 

그래도 ‘컨트롤 대란’이나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등의 영향으로 힙합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Hiphop is more than music’이란 말이 아직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TV 밖에서도 멋진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딥코인이라고, 제가 요즘 멋지다고 생각하는 파티브랜드 그룹이 있어요. 여기엔 DJ부터 래퍼, 디자이너, 포토그래퍼까지 다 모여 있거든요. 인지도가 낮아서 대규모 힙합 공연에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자기들만의 힙합을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이런 건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찾아볼 수 있는 거니까 TV에서 방영되는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와는 다르지만. 힙합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더 이상 흑인들만의 것도 아니고, 랩 아니라 노랠 해도 힙합이 될 수 있죠. 찌질해도 자기 라이프스타일이 담겨 있으면 힙합이 될 수 있는데 방송에서는 공격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것만 비춰져요. 조금만 더 찾아보면 좀 더 다양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많거든요. 그게 다 힙합이라고 생각해요.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Photographer 이영우 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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