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 들어온다, 흘러 들어간다
장재인

 

그녀가 돌아왔다. 3년 만이다. 새 앨범을 처음 듣는 순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변했구나, 장재인. 이제와 고백하자면 발랄하고 단단했던 그녀를 좋아했다. 마치 음악이라는 비밀무기로 중무장한, 꼬마 여전사 같았달까. 하지만 지금의 장재인은 부드럽고 유연하다. 묘하고 궁금하다.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했을까? 모두가 입 모아 말하는 ‘투병’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무언가 흘러 들어가 그녀 안의 성분들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것들을 우리에게 흘려보내고 있다. 귀를 기울일 때다.

 

쉬는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감정의 흐름에 맡기자’는 거였어요.

 

정말 오랜만의 새 앨범이네요. 감회가 어때요?
막상 앨범이 나오니까 편하더라고요. 불안하고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는데… 막상 나오니까 편안해요.

 

앨범 제목이 ‘LIQUID’예요. 수록곡들이 전반적으로 흘러간다는 내용이더라고요.
쉬는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감정의 흐름에 맡기자’는 거였어요. 그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첫 곡 ‘나의 위성’이 정말 좋아요. 노래 가사에 흔히 쓰이지 않는 단어인데,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어요?
원래 제가 글을 자주 써요. 어느 날, 글을 쓰다가 문득 위성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어요. “정말 위성 같은 관계다.” 이런 문장이었는데요. 그걸 토대로 작사를 한 거예요.

 

가사를 보면 사랑인지 미움인지 모를 혼란이 느껴져서, 듣고 있자니 마음이 뭔가 따끔따끔했어요.
저도 이런 경험이 있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더라고요. 이런 관계 너무 많아요. 정확하지 않은 관계, 소위 말하면 썸인데요. 썸이 약간 밝고 화사한 표현이라면 위성은 조금 더 딥한 표현이죠. 그런 관계가 설레는 만큼 불안하거든요. 본인도 모르는 거죠. 이게 사랑인지 버릇인지, 끈인지. 그런 혼란, 불안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거기서 분노도 생기고, 왜 정확하게 되지 않는 건지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해결하고 싶어도 해결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답을 낼 수 없는 거죠. 그런 일 많지 않나요? 우리가 사랑인 거야, 사귀는 거야? 뭐하는거지? 가까워지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는 거요. 근데 계속 붙어 있게 되고…. 그게 미치게 하죠, 사람을.

 

결국 가사를 쓰려고 했다기보다는 글 쓰다가 나온 단어군요. 평소에도 글을 많이 쓰는 편인가요?
요즘은 안 쓰는데 많이 썼었어요. 그냥 감정에 대한 에세이 같은 거요. 그것들을 토대로 가사를 쓰면 잘 나오는 거 같아요, 이미 좋은 감정의 흐름들이 나와 있으니까요.

 

그런 걸로 책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오, 그런 걸로 책 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진짜요? 궁금해요.
궁금해요?(웃음) 멋있는 게 나오면 좋을 거 같아요.

 

사랑일까 붙잡는 끈일까
계속하면 난 느낄까
나의 위성 너를 잊을까
둥글게 맴도는 나
하루의 끝은 또 네게
_ 나의 위성

 

어떤 한 가지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닌거 같아요.

 

타이틀 곡은 ‘밥을 먹어요’로 선정했죠?
프렌치 포크라는 장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편곡도 프렌치 포크 스타일을 잘 살려서 진행됐고요. 앨범의 주제나 전체적인 느낌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정한 건가요?
가사도 그렇고요. 프렌치 포크의 가사들을 살펴보면 사랑의 방식이 너무 자유로워요. 거기서 ‘포크라는 것도, 가사라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쓰일 수 있구나’ 하고, 사고가 많이 열렸어요. 그래서 곡을 쓸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가사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프렌치 포크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인 거죠.

 

뒤에 곡들은 아픈 가사가 많더라고요.

모든 게 다 흘러갈 거라고 말하는 곡 ‘클라이막스’나 고여 있는 마음은 없다는 곡 ‘그대는 알기 쉬운 남자야’ 같은 것들이요. 몇 년 전에 쓴 글들을 토대로 한 거예요. 그 당시에는 힘들기도 했고, 아픈 사랑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 감정을 끄집어내서 쓴 것이긴 해도 다들 보편적으로 겪는 일이라 생각해요. 사랑을 하면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 있지만 슬픔의 순간도 있어요. 사랑할 때 더 외롭기도 하고, 분노가 생기기도 하고요. 나중에는 그런 마음들을 수용하고 이별이 찾아오기도 하죠.

 

마치 하나의 사이클 같네요.
네. 이별하고도 또 단계가 있잖아요. 이별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지나면, 수용하게 되고. 그리고 난 후 체념…. 이런 식으로 다들 겪는 감정을 가사에 넣은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모든 것은 흘러간다’는 사실이 허무를 불러일으켜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아요. 흘러가버리면 모든 게 의미 없어질까봐.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에 너무 얽매이면 안 되죠. 어떤 한 가지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닌거 같아요.

 

아직은 어색한 우리
어쩌겠어요 어젯밤은 이미 지난 걸
이대로 안녕 아니면 일주일 후
이렇게 가볍게 또 밥을 먹어요
_ 밥을 먹어요

 

점점 여성스러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평소 스타일도 변화했나요?
네, 원래 제가 여성스러운 스타일인 거 같아요. 이전에는 강한 척하고 괜찮은 척하려고 했던 것 같고요. 그게 저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비춰지는 모습도 자기 자신과 같게 만드는 게 건강한 것 같아요.

 

꾸미지 않고요?
아뇨, 사실 꾸미지 않을 수는 없죠. 누구나 사회적인 얼굴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내면의 저와 보여지는 제가 최대한 비슷해지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연약하니까 밖으로 보여지는 저도 제 연약함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 그게 건강해지는 방법이라는 거죠.

 

‘자기자신으로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하던데, 비슷한 맥락이네요.
그냥… 급급해 하지 않는 거예요. 조급하지도 않고 안달복달하지도 않고, 그렇게 있으면 편안하니까요. ‘내가 반드시…’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거죠.

 

편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건가요?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결국에는 급급한 것 같아요. 그냥 나로 존재하는 거죠. 편안하게. 여유있게.

 

눈뜨면 사라질 마법
날이 새면 없어질 감정
쉽게 부숴질 그 유리성
이 사랑에 우리를 잃지 말아요
_ 그댄 너무 알기 쉬운 남자야

 

제 감정을 연구하고 다스리려고 계속 노력해요. 그게 저를 담담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어느 쪽의 비중이 더 커요?
완전 절반이에요. 외향적인 것도 너무 중요하고 내향적인 것도 너무 중요하고, 공존해야 돼요. 같이 있어야 저는 좋더라구요.

 

사람을 좋아하고 같이 어울리다보면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걸 해소하는 방법이 따로 있어요?
큰 의미를 안 두는 거요.

 

마음대로 안되잖아요.
그러게요. 근데 생각하면 또 되기도 하더라고요, 여러번 하니까. 처음부터 잘됐던 건 아니지만요.

 

앨범의 느낌하고도 상통하네요.
네, 계속 해왔던 생각들이니까. 자연스럽게 앨범에 녹아 나온 거죠.

 

기쁨과 아찔함 슬픔과 아픔도
그때뿐 흘러가게 될 거야
_ 클라이막스

 

재인씨는 힘들었던 시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한 번도 징징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런 강인함은 어디서 비롯된 건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저는 강인한 애가 아닌데, 스스로를 많이 연구하는 것 같아요. 제 감정을 연구하고 다스리려고 계속 노력해요. 그게 저를 담담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안에서 돌보는 거군요.
네, 그리고 이제 프로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수록 감정적인 모습을 안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그게 현명한 방법인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을 잘 다스리면 외로움에도 강해지나요?
음… 모르겠어요, 저도. 외로움에 강했다면 수록곡 ‘클라이막스’ 같은 가사를 안 썼겠죠.

 

떨리는 처음 향에 취해
중요했니 너에겐
난 너말고 다른 뭘 원했겠어
그날 밤은 정말
_ 그거

 

새 곡으로 공연하는 걸 보니, 역시 무대 체질이구나 싶었어요. 쉬는 동안 갑갑했죠?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라서. 요즘 무대 서는 거 재밌어요, 다시 하니까.

 

그럼 어떤 공연을 제일 하고 싶어요?
저요? 사실… 음악 작업 더 하고 싶어요. 이번 앨범, 정말 훌륭한 앨범이거든요. 만족도가 진짜 커요. 그런데 이삼 년 쉬는 동안 안에 있던 감정들, 여러 가지 표현들이 아직 많아요. 그걸 더 분출하고 싶어요.

 

모든 건 liquid 누군가 refilled
어차피 물결 따라 흘러가
또 네게 닿아 짙어지고
추억 forget it 모든 건 fake it
쓰디쓴 그 모습도 그렇게
또 넘쳐흘러 옅어지네

 

Editor in chief 전아론 aron@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hair & make-up 정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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