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여자

 

칼럼니스트 임경선을 3년 전 만났을 때, 그녀는 처음 ‘연애칼럼니스트’라는 말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사랑과 관계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솔직하다’는 말을 듣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나한테 도발, 도도, 당당, 솔직, 이러는데 그런 평가가 너무 싫어. 그건 이 사회가 기본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거야. 솔직한 게 어떻게 사람을 설명하는 형용사가 될 수 있어? 너무 당연한 게 캐릭터가 된다는 게 웃겨.” 이후 그녀는 직장생활과 육아에 대해서도 책을 내더니 단편 소설집에 이어 첫 장편소설 『기억해줘』를 내놓았다. 이 책은 이효리가 추천사를 썼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그녀의 이전 책들처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새 책을 사이에 두고 임경선 작가와 오랜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인간은 워낙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선입견에 대해 항상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첫 장편소설 출간을 축하드려요. 책은 언제 쓰신 건가요?

작년 4월에 단편집 『나라는 여자』를 내고 나서 “이번에는 장편소설을 쓰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 썼으니 1년 정도 쓴 것 같고요. 처음 쓴 글은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두 번, 세 번 이상 계속 고쳤죠. 처음에는 여자 셋이 주인공인 스토리를 썼다가 남자 주인공을 꼭 넣고 싶어졌고, 그래서 스토리가 계속 바뀌었어요.

 

외교관의 딸로, 어릴 때부터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살았던 경험이 이번 소설에 많이 녹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 안나가 화장실에 숨어 혼자 밥을 먹는 건 실제 제 경험이에요. 전학을 자주 다녀 친구가 없었던 적이 많았거든요. 사실 저 뿐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외톨이였던 경험이 있잖아요. 이 책은 그렇게 성장통을 겪은 20, 30대가 많이 공감할 거라 생각해요.

 

주인공들은 겉으로 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깊은 상처가 있어요. 이 또한 작가님께서 평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결국 다들 자신만의 지옥을 안고 살아간다”고 했던 데에서 나온 캐릭터들 같아 보였는데요.

인간은 워낙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선입견에 대해 항상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민하거나 부러워하는 그만큼의 복합적인 모습이 그 안에는 저마다 다 있죠.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받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중요하게 기억하는 거고요. 서로에게 그만큼의 다른 모습이 있다는 걸 알고 서로를 용서하고 관대해지는 순간은 정말 아름다워요.

 

외교관의 딸로 태어나 일본에 있는 대학과 한국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서 일을 하셨는데요. 작가님 또한 책 속 주인공들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인 거죠.

다들 저를 그렇게 봐요. 네, 좋은 남편과 건강한 아이가 있으니 불평할 수 없다, 불평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죠.

 

어릴 때는 전학을 많이 다녀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잖아요. ‘임경선’을 검색하면 ‘갑상선’이 연관 검색어로 뜨기도 하고요. 실제로 몸이 아파서 오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셨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도 운전은 아직 못 해요. 2005년에 네 번째 갑상선 수술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는데요. 항상 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안 하게 되니까 불안했죠. 회사를 다니면서도 신문에 가끔 글을 쓰긴 했지만 아예 글을 전업으로 하게 되니까 다른 타이틀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할 건지 고민이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가는 것

 

‘연애’라는 주제를 칼럼으로 풀어내기 시작해 인기를 얻었는데요. 더 유명해질 수 있는 방송에는 잘 출연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SBS <매직아이>에도 파일럿에만 출연했는데. 글 쓰는 사람들은 방송 나가는 걸 조심해야 해요. 고정된 이미지로 박혀버리니까. 방송은 제게 드센 이미지를 요구하고, 단언하는 멘트를 원하는데 저는 그게 싫어요. 저한테 맞지 않기도 하고요. 브랜드 인지도보다 호감도가 저한텐 더 중요해요.

 

이효리씨가 책에 추천사를 쓴 건 <매직아이>에 같이 출연한 인연 때문인가요?

해고노동자들의 손해배상기금 마련을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친분이 생겼어요. 이효리씨가 4만 7천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한 건 마케팅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일이었죠. 전략적으로 장벽을 낮춰 사람들에게 참여를 유도한 게 참 대단했어요. 그걸 SNS에서 칭찬하고 저도 함께한 게 서로 아는 계기가 됐고, <매직아이>에도 효리씨가 추천해서 들어가게 된 거예요. 이상순씨도 그전부터 제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이효리씨가 『기억해줘』를 읽고 “그간 나의 사랑들에게 미안했으며 또한 고마웠다”고 썼죠.

이효리씨를 보면 제가 아는 유명한 사람 중 그처럼 자연스럽고 관대한 사람이 있나 싶어요. 사람에 대해 너그럽고, 자기가 더 아프더라도 사랑을 택하는 여자예요. 제가 항상 말해왔던 멋진 여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사랑에 대해서도 진짜로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동안 작가님의 책은 잘 팔렸고, 이번 책도 베스트셀러가 됐죠. 책이 나올 때마다 판매에 많이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누구든 자기가 책을 내면 잘 팔리길 바라죠. 다만 그 생각을 표현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겠죠. 저는 등단을 하지 않고 작가 생활을 하는 사람이니까 독자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야 다음 책을 낼 수 있어요. 그러려면 제 독자, 특히 고정 독자층을 늘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저는 회사를 다녔던 사람이니까 출판사의 마케팅에 다 관여하고 책 판매 순위도 다 체크해요. 자기만족만을 위해 책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제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람들, 제 책을 읽고 감정에 어떤 변화가 왔다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저는 책을 씁니다. 보통 작가들은 원고 수정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저는 편집자의 검열을 계속 받고 그에 따라 계속 수정을 해왔어요. 예술에는 객관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자기세계에만 함몰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연애 상담, 일과 인간관계에 대한 칼럼을 쓰기 시작하다 육아에 대한 글과 소설까지 쓰고 있는 작가님은 한국에서 찾기 어려운 포지셔닝을 갖고 있어요.

제가 항상 책 순위를 확인한다고 했잖아요. 베스트셀러 소설을 보면 한국 소설은 몇 안 돼요. 다 외국 책이에요. 저는 그게 너무 속상해요. 문단의 작가들이 쓰는 엄숙한 책이나 대중적이기만 한 책만 있을 뿐 그 중간 시장이 없어요. 대중 소설이고 대중 에세이면서도 질이 높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읽을 거리가 별로 없잖아요.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퀄리티가 보장된 책이 없으면 외국의 글이 아예 잠식해버리는 건 순식간이에요. 그게 문화 종속이죠. 제가 바로 그 중간 시장이 되고 싶어요. 저처럼 이런 포지션의 작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2005년에 전업작가가 되면서부터 글 쓰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나요?

우선 처음에 쓰기 시작한 연애라는 주제는, 쓰는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질이 너무 낮아서 꼰대 같은 어른과 어린 사람의 중간에서 한번 써보겠다 하고 시작한 거고요. 직장 생활은 오래 했고 나름 일을 잘했으니 잘 아는 일이라 쓰게 된 거죠.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큰 틀에서 어떤 일에 대처하는 시각이나 태도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꾸준히 책을 쓰면서 강연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삶은 태도의 문제

 

등단을 하지 않고 단편소설, 장편소설을 꾸준히 써왔는데, 『기억해줘』의 주인공처럼 재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나요?

이젠 별로 하지 않아요. 재능에 대한 고민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 하거든요. 막상 일을 하기 시작하면 생각 안 나요. 어떤 때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어떤 때는 이런 쓰레기를 쓰고 있다니 싶어 좌절하게 되죠. 하지만 그럴 때는 그냥 또 쓰면 돼요. 사실 진짜로 일상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재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요. 재능이 없어 못 한단 말은 그 일을 지금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제 삶은 굉장히 심플해요. 남들의 생각과는 달리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요. 40대는 체력이 확 떨어지는 시기여서 많은 것들이 정리돼요. 체력의 제한이 있으니 우선순위를 세울 수 밖에 없거든요. 30대 중반까지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많이 맺지만 제 나이 대에는 정말로 의미 있는 것만 남아요. 보통 일곱 시 반에 일어나서 가족들 밥 먹이고 아이 초등학교 데려다주고 카페에 가서 일을 하다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장을 보고 저녁을 해 먹고 자요.

 

지금과 비교해 10대와 20대, 30대의 삶은 어땠어요?

10대 때는 아버지가 외교관이라 워낙 전학을 많이 다니면서 새로운 언어나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죠. 21살에 대학을 졸업했고(그는 동경대 정치학과와 서강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29살에 결혼했으니 20대는 직장 생활만 몰입해서 열심히 했던 시기예요. 35살에는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게 됐지만 그 전까지는 거의 일만 했고, 제가 계속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최근에 세월호 유가족의 편지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하셨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강연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하셨죠. 그렇게 언어를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는 건 작가로서도 굉장히 도움 되는 일이겠어요.

다양한 언어권의 사상을 체화했다는 거니까 세상을 보는 각도가 다양할 수 있겠죠. 서양권 문화와 동양권 문화 모두를 어릴 때 경험하고 언어까지 익숙한 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때는 그걸 잘 몰랐는데 딸을 키워보니 알겠더라고요.

 

평소의 에세이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소설에서도 ‘멋진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멋진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요?

성실하고, 공정하고, 고유의 스타일이 있으면서도 산뜻한 사람이죠. 또 나이 들수록 껍질을 벗겨내면서 원래 내가 가진 것으로 승부하는 투명함과 맑음을 가진 사람. 껍질을 벗겨내도 단단하고 강한 실력이 있는 사람들, 너무 멋있죠.

 

거의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고 계신데,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내년 봄에는 그동안 상담했던 것의 엑기스만 모아서 지침서 성격의 에세이를 낼 거예요. 비소설과 소설을 번갈아 가면서 매년 내고 있는데요. 저는 계속 다작하고 싶어요. 과작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게 이상하게 느껴져요. 다작하면 질이 떨어지나요? 오히려 오래 안 쓰면 감각이 떨어져요. 저는 꾸준히 책을 쓰면서 강연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삶의 방식으로 보자면 우디 앨런처럼 제가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해 꾸준히, 그리고 소소하게 표현해가는 거겠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과 라이프스타일도 제게 롤 모델이 되고 있어요.

 

Editor 정문정 moon@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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