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진 어린 시절, 나는 낯을 정말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유치원 공개수업 날 사람들 앞에서 엄마를 소개하는 나를 본 엄마가 그만 감동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셨을 만큼.

 

다행히 커 가면서 나는 조금씩 밝아졌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반장 같은 것도 하고 대학생 때는 학과 간부까지 하게 됐다. 지금의 내 모습만 아는 사람에게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면 절대 믿지 못한다. 나도 이제는 스스로를 낯도 안 가리고 꽤 친화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뭐 적어도 내가 불편해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경지까진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 생활 끝 무렵부터 자아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감정 기복이 없는 편이다. 아니, 사실은 기복이 생기는 것을 싫어한다.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는 오히려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러다가 좀 정리가 되면 그제야 친구들한테 요즘 고민이 있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 그 일들은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내 부정적인 감정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고,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친구들 간에도 지켜야 하는 선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휴학하고 알바를 하면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일을 마치고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취기가 조금 오르기 시작할 무렵, 한 살 차이 나는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언니가 우리랑 친해지기 싫어하는 줄 알았어.”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나는 신입으로 들어와 일을 배우는 입장이었고, 원래 일하던 친구들은 나보다 어리지만 경력이 많았다. 때문에 내가 말을 놓는 것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일부러 말을 안 놓았던 건데. 그 점이 본인들에게 선을 긋는 것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친한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내가 진짜 철벽 쳐?” 친구들은 대답했다. “음… 그런 것도 있고. 그냥 호의를 잘 안 받으려고 하지? 근데 난 이제 적응했어!”

 

얼마 전 친오빠와 술을 마셨을 때도 비슷한 얘길 들었다. 나는 왜 연애를 못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그랬다. “너는 선을 안 넘지. 내가 본 너는 그래. 근데 남녀 사이엔 그 선을 넘어야 뭐가 되지.” 혈육이 이렇게 느낄 정도면 난 심각한 상태인 건가 싶었다.

 

한번은 한창 취준에 허덕이는 친구를 보며 “근데 나도 이렇게 힘들었나? 겨우 5개월 됐는데 기억도 안 나.” 하고 가볍게 말했다. 친구는 대답했다. “나는 네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는지 잘 몰라. 너는 그때 주변을 닫고 살았던 것 같아.” 이 친구는 내가 힘들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렸겠구나, 조금 섭섭했겠구나 생각했고, 미안해졌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해서 ‘배려’했던 건데… 그런 행동들이 쌓여서 철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선은 사실 쉽게 지워지는 것이라, 맘만 먹으면 넘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내 공간에 들어와준 고마운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사실은 그 선을 넘어오다가 꽤 많이 다쳤겠구나 싶었다.

 

앞으론 내 앞의 선을 조금씩 지워나가며 누구든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사람들이 나에게 베푸는 호의를 기분 좋게 받고, 나중에 다시 그만큼 돌려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선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안 받고, 안 주던 내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 조금씩 연습해야지. 누군가 내 벽에 노크해주길, 넘어와주길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내 벽을 허물고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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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호 – 20’s voice]

writer 독자 강다영 rkdek10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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