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애로한다. 봉만대

 

고백한다. 방송에서 섹드립 치는 그 모습을 기대했다. 근데 이게 웬걸? 봉만대는 ‘방망이 깎는 노인’만큼이나 오랜 시간 고민하며 자신의 에로를 갈고닦는 감독이었다. 에로 ‘거장’이란 말, 다 농담인 것 같지? 진짜야. 진짜라니까?

 

무엇보다 카메라 상관 안 하고 내 모습 그대로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면 된다.

 

봉 감독을 아시나요?

 

데뷔 이래 최고로 인지도가 높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긴 하지만 부산에서 레드카펫도 밟았고. 기분이 어떤가?

늘 똑같다. 어릴 때는 내 영화가 개막작에 걸리고 핫이슈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길을 가면서 만나는 이야기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 관심을 받는다고 해서 대단해지거나 우쭐댈 건 없지.

 

방송가에서 봉만대를 부르는 이유는 뭘까?

방송은 늘 이슈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걸맞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픽업할 자세가 돼 있는 곳이니까.

 

스스로 생각할 때 예능감이 출중한 것 같나?

재밌는 건 맞다. 재밌게 살려고 하고. 우울한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전문 방송인도 아닌데 이야기 사이에 잘 치고 나오더라.

내가 기가 세다. 그리고 영화를 하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메커니즘을 알면 그 중심에서 놀 수 있어야 한다. 방송이든 영화든 오늘 찍으려고 했던 씬은 찍어야 하고, 하려고 했던 말은 해야 한다. 끝나고 나면 진이 빠져 있어야 후회가 없다. 무엇보다 카메라 상관 안 하고 내 모습 그대로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면 된다. 방송을 통해 떠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거기서부터 망가진다.

 

본인의 스토리나 이미지가 소모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

없다. 45년간 쌓인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프로그램 중에서 하나쯤은 공부가 되는 걸 한다. 왜냐면 몰랐던 것에 관심을 두게 되니까. 관련된 내용을 찾아서 분석해야 하고, 나만의 것으로 섭취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접속! 무비월드>는 영화 프로그램이고 <시청률의 제왕>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얘기하는 거다. 아는 건 아는 거고,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를 눌러가며 얘기할 필요도 없다. 이게 다다. 그리고 가끔 섭외가 들어왔을 때 하기 싫은 것은 절대 안 한다.

 

누군가는 당신을 야심 있는 예능 꿈나무로 보기도 한다.

기분 좋은 일이다.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등장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내가 소비될 가치가 있을 땐 소비돼야 한다. 그런데 내가 전문 방송인은 아니지 않나. 내년 4월에 들어가는 영화 계약서에 작품 시작하면 방송 안 할 거라고 명시돼 있다. 왜? 주 업무가 감독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내가 영화를 잘 만들고 인정받으면 거기서 또 안 부르겠나? 그렇게 나오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전작을 찾아볼 수도 있고, 다음 작품을 챙겨볼 수도 있다. 그때 내 이야기가 진솔성을 얻는 거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나 좀 알아 달라”고 하는 건 항변이잖아.

 

섹스의 간결함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영화를 추구한다.

 

재밌는 섹스, 그리고 이야기

 

에로 영화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순간, 기억나나?

고2 때부터 에로 감독이 되고 싶었다. 사춘기가 늦게 왔는데, 도색잡지 같은 성인물이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어른들만 향유하는 공간에서 놀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했다. 다른 장르에서 조감독을 하다가 29살에 우연히 일본에서 에로 영화를 작업하게 됐다. 아는 PD님이 한일 합작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해서 적은 예산을 들고 일본에 갔다. 그렇게 촬영한 작품이 한국에서 <도쿄 섹스피아>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서른 전에 감독이 되겠다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킨 거다.

 

감독 이름 달기 전까지 좌절도 많았겠다.

불안했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좌절하진 않았다. 방향이 정확하면 방황하지 않을 수 있다. 감독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 시절에는 한창 어떤 감독의 몇 년도 작품에 배우는 누구고… 이런 책이 유행했었다. 달달 외워서 보지도 않은 영화를 본 척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돼? 차라리 성경 한 구절 읽는 게 낫지. 내가 만드는 영화가 곧 남이 보는 영화다. 그 사람은 희생해서 번 돈으로 문화적 선택을 하는 건데 만드는 이의 철학과 사상이 똑바로 서 있지 않다? 그건 관객에 대한 모독이다. 그다음에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는 거다. 그래서 항상 급했다. 서른에 대한 강박과 절실함이 있었다. 모든 건 절실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요즘 친구들은 타인에게 재단 당하고 평가 받으면서 절실함을 배운다.

어릴 때부터 자아 발견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학교에선 인성을 안 가르친다. 성적 상위 1프로를 위해 납부금 내는 역할만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자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못 하는 거다. 내가 지금 45살인데 90살까지 산다 치면 하프 코스를 돈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코너를 돌아 인생의 방향을 다시 유턴하는 시기다. 추락할 수도 올라갈 수도 있는데,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뭐야. 바로 ‘나’지.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 누가 날 좋아해서가 아니라, 뭘 잘해서가 아니라 날 지탱해주는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모든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이게 자아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무슨 얘길 하다 여기까지 왔지?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 사람이 처음부터 어떤 일에 거창한 철학을 가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에로 영화에 대한 철학이 생겼나?

얼마 안 됐다. 에로 감독이 되고 3년 정도 후? 이야기 위에 에로티시즘을 씌워야 하는데 그걸 잘 모르면 섹스만 남는다. 섹스가 어떻게 에로틱이 될 수 있으며 에로티시즘이 될 수 있나. 이런 고민의 과정은 밀가루에 물을 뿌려 주무르는 것과 같다. 처음엔 그냥 가루였는데 기가 막힌 반죽이 된 거지.

 

섹스가 다르고, 에로틱이 다르고, 에로티시즘이 다른가?

‘좋아한다’와 ‘사랑한다’만큼이나 다르다. 섹스에는 행위 자체의 귀여움이 있다. 그건 이야기를 관통하는 게 아니라 순간에 머무른다. 그런데 섹스가 문학이나 아트와 결합했을 때 에로틱이 된다. 에로티시즘은 철학적 요소가 엄청 들어가 있어서… 나도 어렵다. 그래서 하고 있는 거다. 다 알았으면 안 했겠지. 아는 걸 뭐하러 또 하겠나.

 

그럼 당신이 추구하는 에로는 뭔가?

남녀가 같이 한 공간에서 손을 잡고 볼 수 있는 것. 섹스의 간결함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영화.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데 당신의 작품 속 여자 주인공은 항상 흰 속옷을 입더라.

<아티스트 봉만대>에선 “속옷은 흰색이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달빛에 비친 첫사랑의 속옷이 흰색이었다. 그 모습이 되게 강렬했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란제리를 가져다놔도…. 여성의 몸 자체가 아름다운데 그 위에 덧대고 꾸미기 위한 속옷이 등장하는 게 별로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여자 주인공은 가터벨트를 하고 나오던데….

영화 속 이야기에서 그때 남자 주인공에겐 여자의 몸이 필요한 거지 머리가 필요한 게 아니지 않나. 육체적 사고를 하는 남자 캐릭터의 입장에서 판타지를 갖는다면 쓸 법한 소품인 거지.

 

가봐야 알겠지만 10년 뒤엔 아마 다시 원초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을까?

 

뭐가 필요해
다 가는 길이 다른데

 

이무영 감독의 영화 <한강블루스>에서 주연을 맡았다. 왜 그 역할에 당신을 캐스팅했을까?

날 생각하고 쓴 시나리오는 아니다. 감독님이 허진호 감독님과 고민하다 내 이름이 나오자 무릎을 치셨다고 한다. 처음엔 거절했다. 난 배우가 아니니까. <아티스트 봉만대>는 내 이야기지만, 이건 정극이고 아예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연기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 거절하는 건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캐릭터와 당신의 접점이 뭘까?

노숙자처럼 보였나봐.(웃음) 내가 밝은 얼굴이 아니다. 요즘 카메라 마사지 받았냐고, 좋아 보인다고들 하는데 근육이 바뀐 거다. 웃는 근육으로. 즐거운 곳에 많이 가고 쌀값도 생기니까 근육이 이렇게 올라간 거지

 

에로 영화감독이 연기도 하고, 예능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배 아파하진 않나?

날 잘 아는 사람들은 박수 쳐준다. 더 잘돼서 쌀값도 많이 벌고 어두웠던 나날을 헤쳐가라고 축하해준다. 왜 이렇게 방송을 많이 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근데 뭐 내가 방송에서 길게 가겠나.

 

사람들이 당신의 영화를 B급이라고 표현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뭘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B라고 인정해준다? 오케이. 반면에 내가 기회가 닿아서 상업영화를 했는데 B급스럽지 않다면 감독이 예전과 달라진 걸까? 그게 아니라 시스템의 차이인 거지. B를 통해 A로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안에 B도 있고 A도 있는 거다. 그냥 내가 만든 걸 사람들이 구별하기 쉽게 표현해준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은 대중의 정서가 B급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아티스트 봉만대>를 보면 에로 영화를 만드는 당신과 주변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편견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을 뚫고 나온 힘은?

내 작품에 대한 자신감. 뭐가 필요해. 다 가는 길이 다른데. 잘하는 걸 더 잘하려고 노력해야지.

 

가장 가까운 목표는?

감독이 된 뒤부터 5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왔다. 50살 전에 작품을 준비해 할리우드에 진출할 생각이다. 그러고 나서 5년 뒤엔 한국에 돌아오겠지. 가봐야 알겠지만 그땐 아마 다시 원초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을까?

 

Editor 김슬 dew@univ.me
Photographer 이승한 Studio ZIP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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