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놀이학개론

 

좋아하는 걸 하며 살라고? 그게 무엇인지 찾는 일도 어려운 숙제가 된 요즘. “신나게 살라”는 말엔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이 새 책 『예능처럼 신나게』를 냈다. 예능 PD 6명에게 듣는 ‘즐겁게 놀면서 일하는 법’이라는데. 어떻게 놀아야 “참 잘 논다”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그를 만나 답을 듣고 왔다.

 

노는 것도 진짜 잘 놀아야 한다. 노는 척 꾸며내면 보는 사람이 불편해진다.

 

놀아라! 정신 차리고

 

새 책 『예능처럼 신나게』를 냈다. 예능 PD에게 배우는 ‘잘 놀고 잘 사는 법’이라니. 흥미롭지만 잘 노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도 과제가 된 세상이다.

책에선 “신나게 살라”고 썼지만, 속 편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군들 신 나게 살고 싶지 않겠나. 현실은 따라주질 않고, 생활고에 맞닥뜨리니까 문제지. 대학에서 강연하다 보면 ‘견딘다’, ‘버틴다’는 20대가 많더라. 하지만 버티기만 하는 삶을 긍정하긴 싫다. 예능 PD 6명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느꼈다.

 

왜 방송국의 예능 PD를 모델로 선택했나?

예능 PD라는 존재 자체가 특이하다. 놀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노는 것도 진짜 잘 놀아야 한다. 노는 척 꾸며내면 보는 사람이 불편해진다. 요즘처럼 “진짜냐? 가짜냐?”를 엄정하게 판단하는 시대에, 가짜로 놀면 시청자는 마음을 절대 내주지 않는다.

 

노는 데도 방법이 있다는 건가? 진짜로 논다는 게 무슨 뜻인가?

나영석 PD의 ‘우연성’에 점수를 주고 싶다. 그는 계획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tvN <삼시 세끼>를 찍던 어느 날, 나영석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출연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 있는데 우연히 빗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듣다보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떠올랐다는 것. 소리를 채취하러 다니던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린 뒤, PD도 제작진과 돌아다니며 빗소리를 녹음했다. 그때 장독대, 처마 밑, 절구통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빗소리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여러 빗소리가 어우러지니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들렸고, 시청자는 감각적으로도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됐다. “오늘 아침 비가 왔다.” 한 줄로 끝낼 수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PD는 한 줄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놀면서도 긴장한다는 게 이런 것이다. 노는 마음으로 접근하되, 일상에서 예민한 감성을 잡아내는 것이다.

 

PD들이야 그럴 수 있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을까?

일상적인 소재에서 남들이 못 본 것을 찾아내는 눈, 타고나는 게 아니다. 철저히 훈련의 결과다. KBS <1박 2일>을 시작할 무렵 나영석 PD를 처음 봤다. 지금처럼 편집의 달인이 아니었다. 얼굴은 새카맣고, “뭐든 시켜주세요”라고 말하던 조연출이었다. 지금은 편집의 도사다. 밋밋한 걸 갖다 놓아도 재밌게 해낸다. 엄청난 편집 연습 덕분이다.

 

나영석이라 가능했던 것 아닌가.

나영석만의 방식은 아니다. tvN <응답하라 1994>의 신원호 PD도 마찬가지다. 그의 자신감은 엄청난 편집 연습에서 나온다. 예능 PD였다가 드라마 PD로 갔는데, 드라마를 처음 겪는 사람이라면 제작 방식에 짓눌리기 마련이다. 콘티도 없고 잘 모르니까. 그런데도 그에게는 재미있게 편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무수한 연습이 기본에 깔려 있어야 한다.

 

연습이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KBS 서수민 PD도 <개그콘서트>로 주목받기 전에는 십 년 넘게 무명 PD였다. 능력을 인정받아 <개그콘서트>에 들어간 게 아니다. 유명 PD들이 종합편성채널로 빠져 나가서, 빈자리를 메우려고 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오랫동안 “코미디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결국 기회가 왔을 때 빵 터뜨릴 수 있었다.

 

욕망하는 일만 좇으면 삶이 피곤해진다.

 

틀렸다고? 더 틀려라

 

잘 노는 법?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가.

예능으로 예를 들면, 예능 프로그램에는 공식이 있다. 장치를 추가하거나, 미션을 더하거나…. <1박 2일> 복불복 미션은 ‘덧셈’의 산물이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삼시 세끼>에서 ‘덧셈’이 아닌 ‘뺄셈’으로 갔다. 프로그램에서 복잡한 장치를 줄이거나 덜어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예능 공식과는 반대되는 얘기지. 미션을 덜어내면 이야기가 간단해진다. 인물을 줄이면 인물 간 역학관계가 아닌 정서, 이를테면 빗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나영석 PD는 계획된 완성작을 추구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안에 여백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포착한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도 마찬가지인가?

나영석 PD가 완성 지향을 버렸다면, 김태호 PD는 완성작을 추구한다. 그것도 예술적으로. 예전에 MBC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기구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집을 지어주는 거다. 감동할 수밖에 없는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한마디로 강요된 감동이라는 것. 김태호 PD는 그것을 싫어한다. 자기 생각대로 프로그램을 완성시킨다. 대신 보는 이에겐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무한도전>을 재미있는 오락거리로 생각할 것이고, 다른 이는 시사로 읽을 수 있다. 프로그램 해석을 시청자 몫으로 남겨둔다.

 

PD들은 정말 놀면서 방송 만드나? 시청률 올리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고?

시청률에서 완전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이 곧 자기의 정체성을 규정하니까. 하지만 시청률에 집착했다면 무리했을지도 모른다. 나영석 PD가 말하길, <1박 2일> 후 CJ로 이적했을 때 “대박치는 것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의 전문분야인 여행 말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욕망을 내려놨다는 게 중요하다. 그가 잘 할 수 있는 여행을 포기했다면, ‘꽃보다 OO’ 시리즈는 나올 수 없었을 거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덜 지친 채로 몰입할 수 있지.
단, 좋아서 하는 일인지, 욕망해서 하는 일인지를 따져보면 좋을 것 같다.
욕망하는 일만 좇으면 삶이 피곤해진다.
누군가로부터 떠밀려서 결정하지 말란 뜻이다.

 

준비하는 건 좋은데, 왜 준비해야 하는가를 좀 더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괜찮아 뭐라도 되겠지

 

당신은 PD들에게서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나 역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당시엔 나 같은 사람이 많았겠지만, 대학을 졸업했더니 외환위기가 터졌다. 온 나라가 IMF의 도움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어렵게 회사 홍보팀에 들어갔다. 그런데 회사 사정이 나빠져서 1년 만에 나왔다. 이후엔 다른 회사에 들어가 사이버 가수 ‘아담’을 만들었다.(‘아담’은 1998년 데뷔한 사이버 가수. 1집 앨범은 20만 장 정도 팔렸고, 광고에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내 에너지를 다 써서 만들었건만, 회사는 사람들을 정리해고한 뒤 수익을 독식했다. 자연스레 조직에 관해 안 좋은 인상을 갖게 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일 대신 취미 생활을 하며 살았다는 건가?

5~6년 정도 그랬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비디오 가게에서 살았다. 매일 영화 2~3편씩 2년을 보고 나니 더 볼 비디오가 없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느낀 점도 틈틈이 썼다. 시, 소설, 시나리오도 썼다. 록 음악도 많이 들었고. 영상자료원에서 데이터베이스 정리하는 공공근로를 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것들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적은 없다. 대단한 문필가가 되겠다는 꿈도 꾼 적 없었고. 나중에 대중문화비평 업계로 들어오면서 도움이 됐지만.

 

의학 잡지에서 편집장을 지낸 적도 있다고 들었다.

건강 상식을 다루는 의학 월간지였다. 문과 출신인 내가 의학에 관해 뭘 알았겠는가. 자리가 생겨서 들어갔는데, 처음엔 어려웠다. 내가 편집장이었는데, 직원도 나 혼자였거든.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기사를 기획하고, 디자인도 다 혼자 했다. 그래서 꽤 독특한 결과물이 나왔다. 의약품이나 어려운 용어는 다 뺐다. 대신 ‘사랑의 건강학’, ‘거짓말하면 건강해지는 이유’ 등등 건강 상식에 문화를 덧댔다.

 

어떻게 대중문화 평론의 길로 들어섰나?

비평에 관심은 없었다. 우연한 계기로 아는 사람으로부터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영화 <왕의 남자>에 관해 써보라는데, 나는 ‘조선 시대 판 개그콘서트’로 풀어서 썼다. 분량도 내 마음대로 길게 썼다. 그런데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게 시작이었다. 한 편 쓰는 데 원고료 5만원. 계속 일이 늘어났다. 그전에도 매일매일 원고를 썼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원고 청탁이나 방송 인터뷰 가릴 것 없이, 들어오는 일은 거절하지 않았다. 이전에 놀면서 즐겼던 것들이 알고 보니 준비 과정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다니 부럽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좋아하는 일은 꿈도 못 꾸며, 고시텔에 누워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에겐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소설 쓰겠다며 신림동 고시촌에서 예전에 한 달 간 살았다. 다신 그런 생각 안 한다. 글 쓰려고 절에 들어간다거나, 쪽방촌에서 사는 건 아닌 듯싶다. 일상적으로 사는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한다. 준비하는 건 좋은데, 왜 준비해야 하는가를 좀 더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당신에겐 출세가 중요한가? 출세에 몰입해라. 부모님에게 등 떠밀려 하는 거라면? 당장 그만둬라. 시스템 밖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 설마 굶어 죽겠어? 될 대로 되라지. 조금은 내려 놓아도 먹고 살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듯.

 

Editor 조아라 ahrajo@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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