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는 내가 할게, 리액션은 누가 할래?

비밀인데, 다른 사람들이 얘기할 때 딴생각을 자주 한다. 얼마 전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다 내 집중력이 얼마나 짧은지 새삼 실감했다. 딱 10분이다. 한 사람의 독백이 그 이상을 넘어가면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언제 끝나는지만 기다린다.

 

그날 친구는 요즘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무려 13분째 계속.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지난 주말에 술 마신 얘길 한참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기 얘기 하는 걸 참 좋아하는 동물이구나(물론 나도! 사실 내 얘기가 하고 싶어서 글 쓰는 직업을 선택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점심때 만나서 저녁때 헤어졌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종일 걔 얘기만 듣다 온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묻기에 “똑같지 뭐. 너는?”이라고 예의상 되물었을 뿐이었다.

 

걔가 기다렸다는 듯 “할 말이 많다”라고 선언할 줄은, 우리가 만나지 못한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1절부터 4절까지 간주 점프도 없이 쏟아낼 줄은예상치 못했다. 데이트라기보단 방청객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텅 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쓸쓸해졌다. 그 애는 내가 보고 싶어서 연락한 게 아닌 듯했다. 그저 자기 얘길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

 

반면 하고 싶은 얘길 실컷 한 이들은 대체로 나와의 만남을 만족스러워했다. 자기 얘길 진심으로 재밌게 들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오늘 진짜 재밌었어. 너랑 만나면 너무 즐거워.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자!” 이런 메시지를 받았을 때. 그게 아니라 너랑 계속 잘 지내고 싶어서 그냥 듣는 척한 거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내 얘기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왜 아무도 나한테는 관심이 없지?”

어째서 이야기가 이쪽으로 튀었냐 하면, 나에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기 비하로 결론을 맺는 악취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시 생각해도 친해지고 싶은(혹은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뭐라도 묻는 게 일반적이었다. 요즘 뭘 좋아하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굳이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물어봐야지. 어쩜 다들 그렇게 자기 얘기만 주야장천 할 수가 있어? 혹시 내가 좋은 게 아니라, 자기 얘기 잘 들어주고 맞장구 잘 쳐주니까 만나는 건가? 막연한 서운함과 외로움이 느닷없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서 누구한테 얘기도 못 했다. 그렇게 혼자서만 끙끙 앓다가,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다 말해버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랑 같이 술 마시고 궁상떨던 애가, 어느새 꽤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가 돼서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어쨌든 이런 고민을 털어놓기엔 아주 적당한 인물이었다.

 

일단 민망함을 무릅쓰고 가벼운 칭찬으로 운을 뗐다, “야, 너는 인스타 스타잖아. 팬도 많고….” 후배가 다 식은 마라샹궈를 뒤적이다 말고 질색했다. “갑자기요? 또 저 놀리려고 그러죠? 됐습니다.”

“그게 아니라. 나 진짜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 너랑 만나면 사람들이 네 얘길 듣고 싶어 해? 막 이것저것 물어보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제야 후배는 내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줬다. “무슨 일 있어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내 앞에서 TMI 대잔치만 벌여서 회의감이 들어. 내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이란 뜻인가?”

 

여기까지 듣고 한참을 혼자 피식거리던 후배는 실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선배, 내가 말 안 했나? 몇 달 전부터 계속 연락 오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팬이라고 꼭 한 번 얼굴 보면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대요. 그래서 결국 만났는데, 세 시간 동안 자기 얘기만 하다가 갔어요.”

“… 그럴거면 널 굳이 왜 만난거야?”

“사람들은 다 똑같아요. 남의 얘기에 관심 없어. 지 얘기만 재밌어하지.”

 

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매력적인 상대를 앞에 두고도, 인간은 자기 얘길 하고 싶어 하는구나. 대단하다. 이것도 식욕, 수면욕 뭐 이런 원초적인 욕구의 일종인가? 그래서 우리가 자꾸 외로워지나? 그토록 말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자

모두가 자기 얘기만 하는 대 환장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신경 쓰기 시작하니까, 사람 만나는 일이 전보다 몇 배는 더 피곤해졌다. 누군가 유독 말을 길게 하면 얄미워서 천불이 났고(저 사람은 자기 얘기만 하네. 내 소중한 시간을 왜 남의 하소연 들어주는 데 써야 해?), 사람들과 헤어지고 난 뒤엔 자기혐오에 시달렸다(너무 내 이야기만 했나? 다들 날 싫어할 거야).

 

그러다 다소 유치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별건 아니고, 우리의 대화에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거다. 마치 토크쇼처럼! 한 사람이 토크 지분을 너무 독점하고 있다 싶으면, 아무나 나서서 발언권을 다음 순서로 넘긴다. “오늘 소연이 얘길 못 들었네. 소연인 어떻게 생각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든다. 다시 말하면, 여기는 약속 장소에 모인 모두가 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만들어진 자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특정인이 자기 얘기를 욕심껏 하기 위해 나머지 사람을 들러리로 만드는 건 곤란하다.

 

거듭 말했듯이, 내 얘길 하고 싶은 마음은 다들 마찬가지니까. 어른이라면 한정된 자원(물론 그 자원엔 토크 지분도 포함이다)을 사이좋게 나누어 쓸 줄 알아야 한다. 듣고 있니, 사랑하는 욕심쟁이들아?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는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자!


[905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국민 주거고민 맞춤형 해결사 등장!


펜타곤 진호 & 오마이걸 효정의 콜라보 무대가 열린다

인스타그램 @univ20에서 4/18(목)까지 초대 EVENT 진행!

 

‘내가 만드는 해치’ 콘텐츠 공모

총 상금 1,740만원, 4월 24일까지 접수!

 

졸업작품에 2,300시간을 쏟은 동국대생

“완벽하게 끝낼 게 아니라면 시작도 안 했어요”

 

최대 240만 원, 서울시 청년 월세 지원해드립니다

지금 바로 '서울시 청년월세지원' 지원하자!

 

코딩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고?

코딩부터 면접까지 취업 올케어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창작 취준생을 위한 비대면 무료 교육

총 150명 선발

 

❛지구 반대편에서 할머니의 집밥을 기록합니다❜ 미뇨끼 인터뷰

대한민국에서 우리집 이탈리아의 따뜻한 요리 영상을 만드는 미뇨끼 이야기

 

문화/예술/콘텐츠 분야 취준생을 위한 무료 교육 설명회

문화 예술 기획, 창작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

 

1등 500만 원? 놓치면 후회하는 콘테스트

상금 규모에 취하는 '진로 두꺼비 스타일링 콘테스트'

 

모두가 자기 얘기만 하는 대 환장의 시대에서

 
시리즈 로즈뷰티

어디서도 보지 못한 친절하고 정직한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