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애들이랑 놀지 않기’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계획 중 하나였다. 이 나라의 미래이자 꿈나무였던 여덟 살의 나는 건설적인 여름방학 목표를 세웠어야 했고, 그 중 하나가 얼토당토않은 저것이었다. 아버지는 여름방학 계획서를 보더니 흐뭇하게 웃으시며, 꼭 실천하라고 말씀하셨다.

 

여자 친구들이 더 많았다. 팔에서 로켓펀치가 나가는 로봇보단 바비의 나일론 금발이 더 취향이었다. 이런 외적인 형질과 더불어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수줍음이 많은 내 모습을 사람들은 ‘여성스럽다’고 했다.

 

“너 인마 고추 달린 놈이 왜 그러냐”
어린 시절 아버지의 꾸중은 남사스럽게도 대부분 고추로 시작했다. 내가 혼나야할 이유의 대부분은 고추 값을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아버지가 설파하는 남성성엔 나름의 당위성이 있었다. 장남으로서 대를 이어야할 명분이 있었으므로, 출가외인이 예정된 여자 형제들에 비해 후한 대접을 받은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남자로서 누리려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남자가 되어야 했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남성성은 ‘대범할 것, 울지 않을 것, 목소리가 우렁찰 것, 싸우더라도 맞지 말고 때릴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버지의 충고가 진리처럼 느껴졌던 것은 내가 대범치 않고, 잘 울고, 목소리가 작고, 싸울 때마다 터져오는 것이 실제로 학교생활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줬기 때문이다.

 

 

입을 가리고 웃는 것, 사뿐한 걸음걸이, 빼어난 공기놀이 실력 등 내 모든 것이 놀림거리였다. ‘여성스럽다’라는 형용사는 내게 언제나 폭력적이었다. 여성스럽다는 놀림에 발끈이라도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이랬다.
“여성스럽다는 말이 나빠? 너가 나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들리는 거지!”
애석하게도 여성스럽다는 말은 나쁜 말이 맞았다. 여자가 아닌 계집 女를 쓰던 시절이었고, 여자라는 단어 자체에 빈번하게 비하의 의도가 담겼다. 여자같이 울지 마라, 여자처럼 속이 좁냐, 계집애처럼 일러 바치냐.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할 때 남자는 축구, 여자는 발야구를 했다. 난 축구보다 발야구를 더 좋아했는데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 남학생도 발야구를 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가서 축구나 해”
“왜요?”
“발야구는…여자 애들이 하는 거니까”
“똑같이 공으로 차는 건데 왜 하나는 남자 운동이고 하나는 여자 운동인가요?”
“(…) 그건 그냥 다른 거야.”

 

그토록 갖고 싶었던 남성성은 하고 싶은 발야구를 못하게 만드는 것, 그뿐이었다. 발야구는 여학생 운동이고, 바비는 여자 아이의 것이며, 핑크색은 여자 색인데 그렇게 나눈 의도와 의미를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친구들의 테스토스테론이 급증할 때, 나도 그 템포에 맞추기 위해 마음으로 테스토스테론을 짜냈다. 부러 굵은 목소리를 내보고 좋아하지 않는 축구를 뛰기도 했다. 좋아하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접어두고 스타크래프트를 해보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은 늘 내게 의문만 남길 뿐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사슬이 남자다운 건가?’

 

 

20년이 지난 현재 내 친구의 팔 할은 생물학적 혹은 정신적 여성이며, 그들과의 관계가 남성들과의 관계보다 훨씬 편하다. 이렇게 여덟 살의 방학 계획은 다행스럽게도 수포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방식의 남성성은 끝내 갖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대범함과 거리가 멀고 목소리와 말투는 여전히 우렁차지 못하다. 하지만 섬세하고, 감성적이며, 사려 깊고, 온화하다. 갖지 못한 남성성을 안타까워하기엔 아주 다양하고 값진 장점들이 내겐 있다. 내가 마초였다면 갖지 못했을 것들.

 

이제 이분법적 성별을 대놓고 강요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F와 M에 이어 X가 등장했다. AOA의 성별이 전복된 무대가 화제가 되었다. 그런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호르몬을 투여한 여성과 그의 과거사진, 이에 네티즌들의 놀라운 반응까지 뉴스거리가 되는 그런 시대이기도 하다.

 

XX or XY가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할까. 남자의 힘, 여성의 부드러움은 생득적이며 마땅한 것인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난 여자로 불려도 상관없겠다.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건, 어쩌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만큼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 채점받고, 그리하여 나를 남자로 부르든 여자로 부르든, 바뀌는 것은 하나 없다. 나는 누군가의 부름에 따라 바뀌는 김춘수의 꽃이 아니니까.

 

성역할은 없다. 당신이 똑똑하고 재능 있는 건 당신의 수많은 기질과 특징 그리고 노력이 시너지를 이뤄낸 결과이지 결코 X나 Y 염색체가 하사한 선물이 아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성염색체에 남을 그리고 자신을 가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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