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좋아졌다. 분명히 좋아졌는데…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죠?”

대답을 들은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긴 비행 시간이 덜 심심하겠다는 이유였다.

“혼자 여행하셨어요?”

“아니, 남편이랑. 결혼 30주년 여행 왔어요.”

아주머니는 팔을 쭉 뻗어 뒤쪽 먼 좌석 어딘가를 가리켰다. 부부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함께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모두 동난 후였다고 했다. 여행 이틀 전부터 ‘온라인 체크인’으로 좌석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런 걸 알아야지, 뭐.”

나도 장거리 비행 팁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으니, 앱 사용에 서툰 중년의 부부는 꼼짝없이 13시간을 떨어져 앉아 가야 했다. 좀 뻔한 표현이지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공항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아도 원하는 자리를 지정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디지털 사용에 익숙지 않은 아주머니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은 셈이었다.

얼마 전,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을 보고 또 한 번 그 부부가 떠올랐다. 햄버거 가게에 간 박막례 할머니가 키오스크 주문에 도전하는 영상이었다. 선택과 터치를 반복하는 과정 자체도 낯설지만, 기계의 높이, 화면 속 작은 글자, 당연하다는 듯 쓰여 있는 ‘테이크아웃’ 같은 외국어가 걸림돌이 됐다.

“이 봉다리는 뭐야? 포장? 그럼 포장이라고 써 놔야지.”

햄버거 하나를 주문하기 위해 몇 번의 실패를 겪어야 했던 할머니는 키오스크 앞에서 느낀 어려움을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다음에 여기 올 때는 돋보기 쓰고, 영어 공부 하고, 의자 하나 챙겨서 와야겠다.”

 

지워버린 사람들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모두가 능숙하게 인터넷과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것도,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전제를 당연하다고만 여겼을까? 거기서 비켜서 있는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지워버린 채.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사회적 성원권은 무엇보다 장소에 대한 권리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데, 환대란 곧 다른 이들이 그의 자리를 인정해주는 것. 어떠한 조건이나 자격 필요 없이, 그저 당신이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행위를 뜻한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햄버거 가게의 키 큰 키오스크는 환대의 의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 한, 그는 주문을 포기하고 자리를 떠나야 하니까. 선택지가 거의 없는 비행기 좌석표를 보는 중년 부부의 심정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할 줄 모르니까, 다수에 속하지 않으니까 불이익을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정말 당연한 걸까?

자존심이 상해서 키오스크가 있는 가게는 가기 싫다는 박막례 할머니에게 손녀 김유라 PD가 대답한다.

“이제 기계 없는 곳이 없어!”

그렇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흐름을 멈추거나 거스르긴 어렵다. 다만, 변화의 결과물은 좀 더 세심하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또한 이를 허들로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보완 장치와 대책이 필요하다. 모두가 변화의 파도 위를 서핑하듯 즐기지는 못한다. 그들이 멀거니 서있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완만한 길로 인도할 때, 더 많은 구성원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공감을 넘어선 공감 능력이 필요해

나와 비슷한 사람이나 상황을 보고 감정이입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부른다. ‘시험 기간 공감’ 같은 콘텐츠를 보면서 잇몸이 마를 때까지 웃는 이유는, 그거 다 내가 겪어봐서 뭔지 알기 때문이다. 부당하거나 슬픈 일 역시 내 머릿속에서 비슷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때 더욱 와 닿는다. 공감은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에 스며들어 우리를 무장해제시킨다.

하지만 나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공감을 넘어선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과 비슷한 무게감으로 대하는 마음. 이러한 공감 능력이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휠체어를 타는 학우들이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배리어 프리 존을 설치하고, 학내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자고 외치는 학생들처럼.

‘좋아요’나 ‘하트’를 누르는 것 이상으로 남의 삶을 들여다보기엔 바쁘고 팍팍한 일상이다. 그래도 나는 젊은 우리가 누군가의 불편을 풍경으로 치부하는 데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음의 미덕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갈지 정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일 테니까.


[907호 –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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