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을 만들었는데 왜 먹질 못하니

대학교 2학년 MT를 갔을 때였나? 어쩌다 식사 당번이 돼서 친구들과 점심을 만든 적이 있다. 나는 볶음밥 담당. 요리해본 적 없다 하니 친구들이 나를 배려해서 배당해준 메뉴였다. 애들 말론 프라이팬 들 힘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웬만해선 실패하기 어려운 음식이라고 했는데…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다! 신기하게도 아무 맛이 없었다. 말 그대로 무미(無味). 당근, 양파, 햄을 썰어서 밥이랑 볶는 것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거다. 소금 한 톨 뿌리지 않아 밍밍한 데다 들쭉날쭉 제멋대로 썰린 재료들은 덜 익어 서걱거리는 엄청난 볶음밥은 그렇게 탄생했다.

 

어찌어찌 상을 차렸는데, 그 볶음밥을 도저히 그냥은 먹을 수 없었던지 그때부터 애들은 케첩과 고추장을 뿌리고, 온갖 밑반찬을 털어 넣어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냥 먹는 것보단 그편이 덜 끔찍했을 정도의 맛이었던 거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볶음밥을 입속으로 욱여넣으며 아이들은 말했다. “넌 요리하지 마라”라고. 모든 재료가 입속에서 따로 굴러다니는 기이한 볶음밥을 미처 삼키지 못한 채 나도 답했다. “응 그래야겠다.”

 

그 후로 거의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약속을 굳게 지켰다. 라면과 계란 프라이를 제외하고 태어나 처음 해본 음식이었는데 너무 혹독한(?) 실패를 맛본 탓일까. 요리에 그토록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그래서 일찌감치 내가 요리 똥손이라는 걸 인정하고 주방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 동안 내 요리 실력은 변함없이 똥손 레벨로 유지됐다.

 

어라? 어쩌면 나 요리 금손일지도?

그렇게 요리 똥손으로 10년을 살았건만. 최근에 피치 못한 이유로 내가 직접 요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얼떨결에 내가 우리 집 식사 당번이 된 거다. 동생은 멀리 지방에서 지내고 있고, 아빠는 나보다 더한 똥손이기에 그나마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시켜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 나는 요리 똥손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요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도전한 메뉴는 된장찌개. 비교적 손쉬운 메뉴라고 해서 선택했는데, 끓이기 전부터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나 요리 똥손인데, 이러다 우리 가족 모두 쫄쫄 굶게 되는 거 아냐?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손가락 빨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멸치 육수를 우리고, 애호박과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된장을 두 스푼 풀어서 마침내 된장찌개 비슷한 것을 끓여 냈다. 그리고 첫 수저를 떠서 호로록 한 입 먹어봤는데… 어라? 이거 내가 끓인 거 맞나. 생각보다 맛있잖아!

 

물론 내 기준에 맛있는 정도이긴 했지만, 된장찌개의 맛은 나를 고무시켰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요리 똥손은 아니었구나, 안도하며 유튜브를 따라하고 블로그에서 레시피를 찾고 때때로 요리책을 뒤적이며 좀 더 난이도가 있는 요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생선 조림, (토마토소스까지 직접 만든) 파스타, 잡채, 각종 나물 무침까지. 물론 개중엔 실패한 요리도 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고, 대체로 맛있었다. 진짜다.

 

심지어 최근엔 요리 고수들만 할 수 있다는 꽃게탕을 성공적으로 끓여냈다, 무려 꽃게탕을! 물론 싱싱한 게가 다 하긴 한 건데… 어쨌든 게를 손질하고 양념장을 뚝딱 만들어내는 나를 보고 내 자신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처음엔 간을 맞추기 위해 간장, 소금, 된장 같은 양념들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계량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조금 해보니 감이 생겨 눈대중으로도 척척 양념 계량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0년을 요리 똥손인 줄 알고 살았는데, 6개월 만에 어쩌면 내가 요리 금손일지도 모르겠다는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호호.

 

 

똥손들이여, 딱 6개월만 투자해보자

고백건대 자타 공인 요리 똥손으로 사는 동안 사실 편했다. 비록 볶음밥 사건이 과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서 놀림거리가 되긴 했지만, MT 갔을 때 식사 당번에서 제외되는 건 물론이고, 고깃집에서 고기 굽는 것조차 열외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삼겹살이라도 한번 뒤집을라치면 모두가 손을 흔들며 뜯어말렸다. “야 너 요리 못 하잖아. 고기에 손도 대지 마.” 그럼 나는 머쓱해진 표정을 지으며 집게를 내려놓고 묵묵히 남이 구워주는 고기만 집어 먹으면 됐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볶음밥은 내가 태어나 처음 해본 요리였고, 처음 한 거니까 당연히 못 할 수도 있는 건데. 딱 한 번의 실패로 나는 10년 동안 스스로를 요리 똥손 프레임에 가둬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요리 똥손으로 사는 게 편하고 쉬워서 잘하려고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던 거다. 어쩌면 그간 나는 ‘나 요리 못 해’라는 말로 남도 속이고, 나도 속여 온 게 아닐까. 실은 못 하는 게 아니라, 해보지 않아서 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뿐인데도.

 

세상엔 요리 같은 일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어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되는 일들. 조금만 노력해보면 금세 잘할 수 있는 일들 말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한두 번 실패했다고 겁먹고 포기해버린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조금만 더 해봤더라면 잘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니 만약 지금 스스로를 ‘OO 똥손’이라고 생각한다면 딱 6개월만 투자해보길. 계속 하다 보면 ‘OO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그런대로 잘하게 된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거다. 요리 똥손에서 딱 6개월 만에 (자칭) 요리 금손이 된 나의 말을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보시라.


[909호 –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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