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엄마들은 다 왜 그럴까
요즘 나의 취미는 엄마랑 같이 드라마 보기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 사람 잘 하네”라며 배우들의 연기력을 평하고, “왜 이렇게 질질 끌어?”라며 드라마 전개에 대해 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그러나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우리의 논평(?)을 피해갈 정도로 가히 최고였다. 여자 주인공의 미친 연기력이며 차진 대사를 써내는 작가의 필력이며 남자 주인공의 미모까지…. 엄마와 나는 오랜만에 팬심만으로 잇몸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며 시청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마지막 회를 향해 갈수록 조금씩 불편해졌다. 다름 아닌, 드라마 속 엄마들의 ‘애끓는’ 모성애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엄마들은 죄다 ‘희생의 아이콘’이다. 비혼모인 주인공은 자식을 위해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기로 결심하는데, 이 정도 희생은 약과다. 주인공의 엄마는 죽기 전에 자식에게 뭐 하나는 꼭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보험금을 꼬박꼬박 붓는다. 자신이 죽고 나면 딸이 그 목숨 값을 받을 수 있도록. 아빠 없이 태어난 아들을 내내 안타까워하며 그 아들이 서른을 넘기도록 뒷바라지하는 남자 주인공의 엄마도 있다. 다들 자식에게 한 개라도 더 주지 못해 안달하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엄마들이다.
사실 현실에서도 엄마들의 희생은 빈번하게 목격된다. 우리 엄마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시청자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이유는 드라마가 그런 엄마들의 모습을 ‘미화’했기 때문이었다. 아낌없이 퍼주는 엄마가 ‘이상적인’ 엄마로 그려지고, ‘찐’ 엄마인 것처럼 묘사되는 드라마를 보며 TV 밖의 엄마들은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엄마의 희생을 미화하는 건, 안 그래도 고단한 엄마들에게 되레 무거운 짐을 하나 얹어주는 것만 같다. 그런 장면들을 보며 모성애를 찬양하거나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이유다.
아주 나중에 내가 엄마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적어도 엄마의 손맛이나, 엄마가 나를 챙겨주던 모습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집밥이요? 스팸이 제일 맛있는데요
‘엄마의 희생’과 비슷한 맥락에서 미화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엄마의 손맛’이나 ‘집밥’에 대한 환상 같은 것들이다. 광고나 드라마, 영화 등에선 이런 환상을 줄기차게 이용한다.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음식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밖에서 모진 풍파를 겪고 왔어도 집밥 한번 먹으면 모든 게 치유되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집밥이 만병통치약도 아닌데…. 이런 가운데 엄마는 또 한 번 납작하게 일반화된다. 자식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존재, 그걸 보기만 해도 배부른 존재로.
예전에 내 동생이 남긴 띵언(?)이 하나 있다. 어느 날 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집밥 중에 어떤 반찬이 제일 맛있느냐고 물었는데, 동생이 주저 없이 ‘스팸’이라고 답한 거다. 엄마가 정성 들여 만든 반찬 대신 구운 통조림 햄을 최고의 반찬으로 꼽은 건 물론 농담이었을 테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꽤 통쾌했다. 엄마 손맛이나 집밥에 대한 환상 같은 걸 깨는 말이라고 생각돼서. 엄마 입장에선 그 말이 조금 섭섭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무겁게 지고 있던 엄마라는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한참을 웃다가 반대로 엄마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봤다. 엄마는 진담을 70퍼센트쯤 섞어서 “남이 해준 밥이면 뭐든 맛있지”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엄마들이 자주 쓰는 말이지만 이 말을 듣고, 엄마를 우리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돌아봤다. 엄마도 우리처럼 맛있는 거 먹는 걸 좋아하고, 누가 해준 밥을 먹는 게 편한 보통 사람일 뿐인데. 그걸 자꾸 잊게 된다. 그날 스팸과 남이 해준 밥을 최고의 음식으로 꼽은 가족들을 둔 덕에 씹고 있던 반찬을 입 밖으로 뿜을 뻔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대화였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니까
물론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 역시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듯(?) ‘엄마’ 소리를 들으면 조건반사 수준으로 눈물부터 차오를 때가 있다. 엄마는 분명 나를 위해 희생하고, 고생하셨다는 걸 아니까. 그 점을 부인하고 싶은 것도, 그 마음이 감사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엔 하나의 면만 갖고 있는 사람은 없듯, 엄마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그 다양한 모습들이 엄마에 대한 미화나 환상에 가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렇기에, 아주 나중에 내가 엄마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적어도 엄마의 손맛이나, 엄마가 나를 챙겨주던 모습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평평하고 납작한 ‘엄마’에 대한 이미지보단, 다양한 모습을 지닌 한 명의 사람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좋은 엄마이기 이전에 귀엽고, 재미있고, 배려심 넘치고, 멋진 취향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래서 오늘부터 엄마의 그런 모습들을 열심히 저장해두려고 한다. 선글라스를 낀 줄도 모르고 벌써 깜깜해졌다며 얼른 집에 가자던 귀여운 엄마를, 옷 한 벌을 사면 몇 번씩 패션쇼를 하며 뿌듯해하는 재미있는 엄마를, 가족 중에 책을 가장 많이 읽고 친구들과 독서 모임도 하는 지적인 엄마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빼놓지 않고 챙겨 보는 멋진 취향을 가진 엄마를, 식당에 가면 주위 사람들에게 반찬 그릇을 쓱 밀어주는 배려심 넘치는 엄마를, 뒷사람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문을 꼭 잡아주는 친절한 엄마를 말이다.
[912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진짜 호주를 만날 시간
연세우유크림빵과 드라마 덕후라면서요...?
티젠 콤부차 부스에 가다
재미있게 살고 싶다면 매일이 축제라고 생각하며 살아보자.
대학 축제라는 것이 행복한 대학 생활의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메인 스폰서로 등장한 본디(Bond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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