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허튼 데 시간을 쓴 게 아닐까

아나운서 준비를 오래 한 후배가 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방송국에 들어갔고, 아카데미를 다니고, 시사상식 스터디를 하고,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러 다녔다. 매일 리딩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는 스터디도 했다. 여러 번 고배를 마신 뒤 지금은 일반 회사 취업 준비로 전향한 후배는 오랜 준비를 끝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한동안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왜 안 그랬을까. ‘그동안 허튼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덮쳐올 때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는 미래가 막막하게 여겨지곤 했다고. 나도 안다, 그 기분. 공들여 애써온 일을 그만둘 때, 가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기분. 이 길로 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에게만 막혀 있는 길인 걸 알았더라면 애초에 들어서지 않았을 텐데, 예전의 그 갈림길에서 다른 쪽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쯤 뭐가 돼도 되어 있을 텐데… 하는 생각들. 그럼 우린 괜한 시간을 산 걸까? 정말 그 시간을 허튼 데 쓰고 만 걸까?

 

후배는 지금, 누구보다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등을 곧게 펴고 청중들과 차분하게 아이 컨택을 하면서 정확한 발음과 전달력 좋은 목소리로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한번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발표장을 나오며 ‘타고난 것처럼 발표를 잘하더라’ 입을 모아 칭찬했다고 한다. 타고난 걸로 보이는 노력의 결과라니.

 

그 에피소드를 듣고 나 역시 조금 감명(!)을 받아버려서 답했다.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하는 분야의 일을 하게 된다면 너는 누구보다 잘 해낼 거라고. 꼭 그게 아니어도 너의 이 역량이 빛을 발할 기회가 분명히 올 거라고.

 

불합격을 다 실패라 부르는 세상에서 

그렇게 치면 지난 몇 년은 후배가 걱정한 대로 ‘허튼’ 시간은 아니었던 셈이다. 비록 원하던 일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동안 쌓인 경험과 실력이 내 안에 남아서 삶의 어느 때든 적절하게 도움이 되어줄 테니까. 지인 중에는 방송사 PD를 준비하다가 시험에 계속 떨어지며 결국 다른 회사에 취직한 사례도 있는데, 지금은 신입 사원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전에 없던 센스 넘치는 교육 영상을 만들어 훌륭한 평가를 얻고 있다.

 

수많은 PD 지망생 중 돋보이는 1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회사에서 그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하나뿐인 인재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인생을 단순히 실패 뒤에 찾은 ‘플랜 B’라고 함부로 요약해버릴 수 있는 걸까? 요약은 언제나 중요한 디테일을 지우고, 하나의 경험을 가장 호명하기 쉬운 낱말로 대체한다. ‘실패’라는.

 

 

물론 불합격은 쓰라리다. 나 역시 나를 뽑지 않다니 어디 잘되나 보자(잘 되더라), 언젠가 복수할 거야(복수할 기회도 없다), 혼자만 벼르는 회사들이 몇 군데 있는데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탈락했다고 그 경험이 바로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었다. 지원서를 쓰면서 현재 내 상황을 새로 고침 하듯 들여다보았고, 숱한 질문들 앞에 나는 어떤 대답을 가진 사람인가 고민해볼 수 있었다.

 

지원한 회사에 대해 알아보는 동안 업계의 분위기나 동향도 알게 되었다.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 어설프게 알던 것을 수정할 기회도 있었다. 덕분에 다른 데 가서 그것들을 써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알았다. 경험은 대답이 된다는 걸. 인터넷에서 찾아 외우는 모범답안이 아니라, 단단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나만의 대답이.

 

살아가는 모두에게 인생은 열린 결말이니까

그러니까 실패가 결코 다 실패는 아니다. 우리가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끝나는 모든 이야기가 새드 엔딩은 아닌 것처럼. 그런 소설은 항상 주인공의 마음이 이야기의 시작과 달리 성장한 것을 보여주며 끝난다. 책 『소설가의 일』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비극이란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끝나는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지,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반드시 불행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의 일』, p.122

 

사실 긴 인생에서 우리가 진짜 실패라 부를 만한 것은 별로 없는 게 아닐까? 무언가를 원했지만 이런저런 제약으로 이루지 못한 것뿐. 해봤는데 생각대로 안 된 것뿐. 그런 경험에 대해 어쩌면 이 사회가 너무 자주 ‘실패’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망한다, 적당히 보장된 길로 가라, 그런 목소리들 때문에 두려워하다 보면 안전한 선택만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안전한 선택은, 대체로 마음을 속이는 선택이 되기 쉽다. 망할까봐 두려워 아무 선택도 하지 않거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을 스스로 ‘실패’라 부르는 대신, 계속 해보고 싶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좋은 실패, 실은 좋은 경험들을.

 

그럼에도 좌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땐 ‘열린 결말’이라 생각해보기로.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쓰여지는 중이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인생은 열린 결말인 셈이니까. 이 경험이 나를 어떤 길로 이끌어갈지, 어디까지 데려갈지 지켜보는 마음으로 걷고 싶다. 덜 낙담하면서 더 씩씩하게.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한 편의 이야기 속을.


[913호 –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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