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하면 뭐가 떠올라? 전에 Z세대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따뜻함’이라는 대답이 많았어요. 오조오억 명이 자소서에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뚱바 마신 추억을 논한다는 기업, 엄빠가 좋아하는 비비빅과 붕어싸만코를 만드는 브랜드라고요.
그런데 이젠 좀 뜨거워졌습니다. 지난 2월부터 새로 공식 인스타그램 운영을 맡은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때문이에요. 빙그레 나라의 왕자인데 팔로워로 성과를 내야지 왕이 될 수 있대요.
트렌드에 민감한 분들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네,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한 거죠. (관련 기사: MZ세대는 왜 이렇게 컨셉에 과몰입하는 걸까?)
빙그레우스는 노설명 노빠꾸로 본인의 셀카 6장을 올리면서 등장했어요. 곧이어 왕위 승계 미션(팔로워 늘리기!)과 전신 프로필이 공개됐죠. 진도가 넘 빠른 거 아닌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딱 8장의 피드만 보고도 빙그레 나라에 완전히 몰입했어요. 콘셉트 미쳤다면서요. 그리고 빙그레가 준 떡밥을 이렇게 가지고 놀더라고요.
“내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운영해서! 나와 빙그레 나라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 빙그레우스
하오체요? 갑자기요?
아닙니다. Z세대는 이런 감성에 익숙해요. 요즘 10대 문학(틴-에이저 입니다. 탑텐 아님) 트렌드가 일진짱 대신 백작/공작/왕가의 아들딸로 환생하는 거여서요. 웹소설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왕관 씌운 비주얼만 가지고 “안녕하세요, 왕자입니다^^” 했다면 지금처럼 반응이 빨리 오진 않았을 것 같네요. 바로 이런 바닥글부터 태그 전반에 나 빙그레우스는 이런 사람이오! 라는 걸 디테일하게 표현하며 판을 깔아줬기 때문에 요즘 애들이 ‘찐인데?’ 하면서 콘셉트에 동참하기 시작한 거죠.
브랜드가 지독한 ‘컨셉충(忠)’이라는 걸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아래처럼 한술 더 뜬 주접 댓글이 나오면서 콘텐츠를 더 핫하게 만들어 줍니다. 댓글 달면서 놀려고 인스타 피드 한 번 더 보게 되고, 드립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정보도 알게 된대요. 캡처돼서 커뮤니티나 SNS에 퍼지면 효과적인 채널 바이럴이 되고요.
빙그레하면 바나나우유가 먼저 떠올라서 오래된 친구 같은 이미지가 있었는데요, 빙그레우스 인스타 게시물을 보고 드립 댓글 작성하려고 찾아보다 빙그레인지 몰랐던 다른 많은 제품들도 알게 됐어요. @privatehansol(20대, 인스타그램 이용자)
빙그레우스 게시물은 다른 것보다 댓글 읽는 게 재밌어요. 다른 사람들이 세계관에 맞춰서 노는 게 너무 웃겨서요! 허서경(26세, 취준생)
비슷한 기획을 준비 중이시다면
콘셉트 충만한 콘텐츠에 Z세대가 참여하도록 이끌기 위해선 캐릭터의 특징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야 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보는 사람이 따라 하기 쉬운 요소를 미는 건데요. 바로 말투예요! 펭수의 ‘~뜹니다’나 빙그레우스의 하오체처럼요.
빙그레우스의 전신 프로필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빙그레 나라 특산품을 두르고 있는 모습인데요. 빙그레인이 아니면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친절하게 설명까지 써 놨어요. SNS에 빙그레우스의 팬아트를 올린 친구들에게 캐릭터의 매력을 물어보니 이런 디테일이 너무 신선하고 재밌었대요.
제가 생각하는 빙그레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친숙함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상생활에서 자주 먹는 상품을 두르고 있으니까 어제 만난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rok0813(20대, 대학생)
빙그레우스 머리 위에 있는 뚱바 왕관과 빵또아 바지가 제일 재밌고 아이디어가 좋은 부분인 것 같아요ㅎㅎ 빙그레우스를 보고 빙그레가 다양한 소비자층을 챙기고 있다고 느꼈어요! @guraeng_e(18세, 인스타그램 이용자)
빙그레우스 게시물 댓글을 살펴보면 이것도(끌레도르/스모키베이컨칩/쥬시쿨/빵또아 etc) 빙그레였어?! 라는 반응이 많아요. 촘촘한 설정으로 숨 쉬듯 자연스러운 PPL을 성공시킨 겁니다.
좀 주의하셔야 할 점은요, 사람들이 빵또아가 빙그레 제품이었던 걸 몰랐던 거지 빵또아 자체는 이미 인기 of 인기템이었다는 거예요. 빙그레우스의 깨알 같은 장신구 설정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제품 하나하나는 이미 인지도가 넘쳐흐르는 상태에서 ‘이게 다 빙그레야~’ 하는 심플한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랍니다.
비슷한 기획을 준비 중이시다면
어떻게 하면 투머치와 디테일 사이의 선을 잘 탄 콘텐츠를 만들어서 패러디 당할(?) 수 있을지 궁금하실 텐데요.
사실 이런 기획은 아무나 못 합니다. 브랜드 제품 중 이건 통한다 싶은 아이템을 잘 골라내야 하고 + 사람들이 반응할 만한 설정을 붙여야 하거든요. 즉, 덕후 짬밥이 있는 담당자가 필요해요. 내부에 적절한 인재가 있는지 찾아보고, 없다면 그런 대행사를 찾아봅시다.
파란색 공식 딱지 붙은 타 브랜드… 아니 옆 나라 사람들이 속속 빙그레우스 계정에 놀러 오고 있는 게 Z세대 사이에서 재밌다고 화제가 됐어요.
자존심도 없이 숟가락을 얹어? 라고 생각하셨다면 옛날 감성입니다. 요즘엔 척화비 안 통해요. 오히려 다른 브랜드에 리액션 잘해 주는 게 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계관에 잘 스며드는 게 필수입니다. 무슨 ☜§스팸 댓글@★ 같은 걸 달면 갑분싸가 되겠죠. 우리 브랜드 홍보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걸 볼 상대 브랜드 팬들의 공감 포인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호감을 쌓을 수 있어요. 상대 세계관의 말투로 우리 사이의 접점을 어필하는 걸 추천드려요!
여러분, 펭수와 빙그레우스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둘 다 조금만 아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를 덧붙일게요.
펭수: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대한민국으로 헤엄쳐 온 펭귄이자 EBS 연습생
빙그레우스: 빙그레 나라의 왕이 되기 위한 미션(빙그레 공식 인스타그램 운영)을 수행 중인 왕자
네, 보이시죠? 바로 성장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몰입하기 좋은 취준생 서사라니….
일반 광고 게시물이 타임라인을 도배 → 응 언팔.
빙그레우스가 피드를 도배 → 일 열심히 하네, 보기 좋다. 화이팅!
이런 로직이 바로 스토리 라인이 있어서 생기는 겁니다. 빙그레우스 게시물에 응원 댓글이 가득한 이유예요. 브랜드 홍보 게시물이지만 거부감보다 게임 퀘스트 완료 같은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건데요, 약간 허술한 모습을 보여도 진짜 친구처럼 격려해 주고 싶고 호감이 생긴대요!
왕족이라는 콘셉트가 있으니까 언제 왕위를 승계받을지 응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말투는 왕인데 하는 행동은 왕족 같지가 않고 허술해서 더 다가가기 쉽게 느껴지기도 하고, 소통하고 싶어요! 엄이주(24세, 광고학과 졸업생)
얘가 미션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보면 취준생이잖아요. 감정이입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너도 참 애쓴다 싶기도 하고…. 보자마자 공감되고 웃겨서 단톡방에 공유했어요! 허서경(26세, 취준생)
마스코트 캐릭터 하나에도 세계관과 기승전결을 붙이는 건 이젠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이야기가 Z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때 더욱 사랑받을 수 있어요.
유산균에 눈코입이 달려 있던 거에서 눈치챘어야 했는데…
빙그레 나라에 사는 다른 빙과류 인물이 베일을 벗으며 세계관 확장이 예고됐습니다. 첫 타자는 단호한 말투가 특징인 단호박 비비빅인데요, 빙그레우스 관련 게시물 최다 댓글 수를 갱신하며 MZ세대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어요. 뒤이어 왠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비서 투게더리고리도 등장했습니다.
세상에나 콘셉트만 잡은 게 아니라 세계관까지 만든 걸까, 싶어서 놀랍고 신선했습니다. 비비빅 비주얼이 거친데 표면이 거친 단호박을 표현한 건가…, 천재 아닌가요? 사투리를 써서 더 친근한 느낌도 나고, 다음엔 어떤 새로운 캐릭터가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편의점에서 빙그레 제품을 보면 빙그레우스와 비비빅 캐릭터가 생각날 것 같아요! 엄이주(24세, 광고학과 졸업생)
이런 전개를 세계관에 관계성이 추가됐다고 말합니다.
‘관계성’은 미디어 작품 속 등장인물 간 조화를 일컫는 요즘 말이에요. 많이 들어 보셨을 ‘케미’와 비교하자면 이렇습니다.
케미: 비주얼 중심, 인물들의 분위기가 척 보기에 서로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
관계성: 설정/성격 중심, 인물들의 서사가 서로 흥미진진하게 엮여있다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
(빙그레우스 측 주장으론)한 때 존경하며 따랐다는 비비빅과의 군신 관계, 빙그레 나라의 숨은 실세로 추정되는 투게더리고리와의 라이벌 관계가 관계성에 해당해요.
MBTI 유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Z세대는 캐릭터 해석을 좋아합니다. A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겠지, A가 B를 만나면 이런 대화를 하겠지, 등등 사람을 유형별로 정리하면서 재미를 느껴요. 따라서 세계관에 관계성을 적절히 추가하면 이번 사례처럼 캐릭터와 추후 전개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핫플레이스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셨다면 본격적으로 기획을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 더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 만큼 한 번 만든 세계관과 캐릭터가 오래 인기를 끄는 게 좋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캐릭터에 웃긴 콘셉트를 이것저것 추가해서 다중인격 만든다거나, 찐 담당자(=내장)의 자아가 슬쩍슬쩍 보이는 일이 없도록 초심을 지켜야 해요. 사정 따라 휙휙 바뀌면 보는 사람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감 잡기도 힘들뿐더러 애써 쌓아올린 설정을 셀프로 파괴할 위험이 크니까요.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입니다!
사실 공식계정에 올라오는 게시물만 봤을 땐 마케팅을 재미있게 하네?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직접 빙그레우스에게 댓글을 받은 뒤로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캐릭터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계속 정이 가요. 진짜로 어디 산속에 공장이랑 궁전 지어 놓고 침대에 누워서 인스타그램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rok0813(20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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