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고 계신 분 중에 2018~2019년도에 마케팅을 하며 ‘인싸’란 단어를 한 번도 안 써본 분은 없을 겁니다. 인싸템, 인싸 놀이, 인싸 개그, 인싸 용어…. 그야말로 ‘인싸 대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인싸 용어에는 유통기한이 있고, ‘인싸’란 단어 자체가 살짝 올드해진 요즘. 때아닌 ‘아싸’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아싸 브이로그’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들에 “이게 무슨 아싸냐”는 댓글이 우후죽순 달린 건데요. 혼자 밥 먹고 수업을 듣는 내용이었지만, 진짜 ‘아싸’는 자신의 일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릴 생각조차 못 한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어요. 저토록 많은 구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아싸’일 수 있냐고요. ‘인싸’들이 이제는 ‘아싸’의 타이틀까지 뺏어가 콘텐츠로 소비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수많은 비추를 받은 브이로거들은 결국 제목을 수정하거나 영상을 내렸습니다.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대나무숲에서는 뜨거운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한쪽에선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을 패러디해 ‘인싸’들이 ‘아싸’의 정체성을 가져다 쓰는 게 진짜 ‘아싸’들에게 박탈감을 준다고 주장했고요. 한쪽에선 본인이 ‘아싸’라면 ‘아싸’인 거지, 꼭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만 ‘아싸’라고 칭할 수 있는 거냐고 반박했습니다.
‘아니, 아싸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싶으신가요?
‘아싸’의 현재 의미를 묻기 전에, 시대에 따라 ‘아싸’라는 단어의 쓰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부터 훑어보는 건 어떨까요? 맥락을 알고 MZ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MBTI 검사를 하면 I랑 E로 나뉘잖아요. 아싸랑 인싸도 딱 그 정도 차이라고 생각해요.
내향적인 사람인지 외향적인 사람인지. 최정화(24세, 시각디자이너)
‘자발적 아싸’라는 말이 생기면서 ‘아싸’는 사람들과 ‘못’ 어울리는 게 아니라 ‘안’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자발적 아싸’라고 생각하는 대학생은 2017년 45.8%에 비해 3년 새 13%나 증가했어요. 비하의 표현이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아싸’라는 단어가 가볍게 쓰이기 시작했고요.
하지만 자의와 상관없이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 역시 여전히 ‘아싸’로 불리고 있었고, 같은 ‘아싸’라도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논란이 일어난 겁니다. 누군가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 정도는 아닌데?’라고 반문하는 거죠.
주목할 점은 10대는 20대보다 ‘아싸’를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한다는 건데요.
단순히 친구의 수보다는 요즘 유행에 잘 따라가는지, 촌스럽지 않게 잘 꾸미고 다니는지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고 인싸/아싸를 구분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아싸’가 친구 없이 혼자 다니는 애를 뜻하는 말로 쓰여요. 유행을 잘 몰라서 대화에 못 끼는 친구가 대부분 따로 노니까요. 정주은(16세, 중학생)
10대에게 교우 관계는 학교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똑같은 친구들과 온종일 함께 있어야 하는데, 혼자 밥을 먹거나 시간을 보낸다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인터뷰를 해준 한 고등학생은 “장난으로라도 ‘아싸’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10대에게 ‘아싸’는 선택이 아니라는 거예요. 10대 타깃 마케터라면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웃자고 ‘아싸 공감’ 류의 콘텐츠를 만들었다가는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니까요.
‘인싸’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 돌이켜봅시다. “이거 알면 인싸”, “인싸들은 요즘 이 필터 쓴대” 등등 ‘인싸’가 되려면 늘 조건이 붙었어요. (희한한 것이라도) 트렌드를 재빠르게 따라잡고 인증하는 사람만이 ‘인싸’가 될 수 있었죠. 그러니까 자신을 ‘인싸’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인싸’ = 남이 인정해주는 거니까요.
‘아싸’라는 말을 많이 쓰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인싸’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인싸’에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약간 나대고 가벼워 보이는 느낌도 있으니까요. 최윤정(22세, 대학생)
반면 ‘아싸’는? 자기가 판단하는 거라고 대답한 MZ세대가 많았어요. “나 인싸야”보다 “나 아싸야”라고 말하는 게 훨씬 쉽다는 거예요. ‘아싸’ = 내가 정하는 거니까요. ‘인싸’가 조롱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하고부터 자신을 ‘아싸’라고 칭하는 사람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난 인싸가 아니니까 그럼 아싸”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늘어난 건데요. 그 과정에서 정체성마저 뺏겼다고 느낀 이들이 등장한 거예요.
예전에는 ‘아싸’는 곧 찐따 취급 해놓고, 이제 와서 쓸 만하니까 찐따랑 ‘아싸’ 랑 다르다고 구분하는 게 웃긴 거죠. 서로 안 하겠다고 미루더니 이제는 ‘아싸’ 를 훈장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익명(24세)
아싸 논란에 불을 지핀 또 다른 콘텐츠입니다. 고백을 20번 받아보고 연애를 7번 했다는 남녀가 나와 자신을 ‘아싸’라고 소개하는데요. 이만큼 인기가 많은 사람을 아싸라고 부를 수 있는지 논쟁이 일었어요.
연애 상대는 한 명이니까 그 외 친구가 별로 없다면 ‘아싸’일 수 있죠. 저렇게 인기가 많으면 높은 확률로 ‘아싸’이긴 어려울 것 같지만요.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저런 댓글 달리는 것도 이해는 가요ㅎㅎ
유현우(26세, 대학생)
대다수의 자문단이 연애를 많이 하는 것과 ‘아싸’인 것은 별개라고 대답했습니다. 매력이 있든 없든 스스로 ‘아싸’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요. 하지만 공개된 플랫폼에 소개된 만큼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무엇 때문이든 타인의 관심으로부터 얻은 영향력이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니까요.
세대의 특성이 변하면 자주 쓰이던 단어의 의미도 변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언어에 대한 쟁탈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번 논란은 ‘아싸’의 뜻이 시대 흐름에 따라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게 해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MZ세대 소비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마케터나 브랜드 담당자라면, 이런 의미망의 변화를 더욱 민감하게 캐치하고 있어야겠죠.
이젠 ‘인싸’와 ‘아싸’ 이후에 또 어떤 키워드가 나올지 주목해야 할 때 같습니다. ‘아싸’의 뜻이 또 변할 수도 있고, 더욱 세분화된 개념을 지칭하는 언어가 생길 수도 있겠죠. 이미 나는 ‘인싸’도 ‘아싸’도 아닌 ‘그럴싸’라고 자칭하는 MZ세대가 많으니까요. (MZ세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한다면, 캐릿이 발 빠르게 알려드리겠습니다.)
덧붙여, 이번 ‘아싸’ 논란을 정리하며 이런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이 표현을 보고 상처받을 누군가를 생각하라.
머리로는 알면서도 자주 잊는 덕목입니다. 더 짓궂은 말이 더 재밌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MZ세대는 올바름의 기준을 점점 더 높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확찐자’나 ‘확대범’ 같은 표현을 가벼운 드립으로 소비하는 걸 누구보다 지양하는 세대니까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웃기다고 할 때, 이 단어를 써도 될지 안 될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친구들이 “사람을 단순히 ‘아싸’와 ‘인싸’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MZ세대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는 걸 실감했어요. 작년엔 재밌었던 단어가 올해는 비판 거리가 될 만큼이요.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우리 브랜드의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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