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0대 유튜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가 뭔지 아시나요? ‘댓글이 100개 달리면 A를 하겠다, 200개 달리면 B를 하겠다.’ 공약을 거는 ‘댓글 챌린지’ 놀이입니다. 트렌드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로서 10대들이 유튜브에서 어떻게 노는지 엿보고 싶단 마음으로 영상을 클릭했는데요. 순식간에 다른 나라에 온 줄 알았습니다.
나름 ‘반모(반말 모드)’ ‘윰차(유명 무명 차별의 줄임말. 유명 유튜버의 반모만 받아주는 것)’ ‘반박(반모 박탈)’ 등등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취재해보니 우리 생각보다 늘 한 발 빠르게 변하는 10대들은 또 새로운 언어와 소통 방식을 만들어 놀고 있더라고요. 특히 주목할 점은, 10대들이 유튜브를 커뮤니티처럼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튜브가 관심사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하고, 친구를 사귀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죠. 콘텐츠와 정보 플랫폼을 넘어서서요.
10대 유튜버들에게 물음표 살인마처럼 질문해 알아낸 ‘2020 유튜브 신조어로 보는 10대가 유튜브에서 노는 법’을 지금부터 알려드릴게요. 유튜브에서 Z세대와 소통하고 싶은 관리자님들은 특히 집중하세요!
→ 영상 댓글 창을 채팅방처럼 사용한다
‘반모’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셨죠? 너랑 나랑 이제 반말하는 사이가 되자는 뜻으로, 싸이월드 1촌쯤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초딩 유튜버 띠예의 영상에 띠예와 친해지고 싶었던 이모 삼촌들이 주접 댓글을 단 게 화제가 됐기도 했잖아요. 물론 그렇게 ‘반모’할 수도 있겠지만, 10대들은 ‘반모방’이라는 것을 만들어 소통한답니다. 설명란에 “당신의 이러이러한 정보를 써달라. 댓글에 하트 누르면 반모 시작!”이라고 올려두면, 해당 영상 업로더와 반모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 양식에 맞춰 쭈르륵 댓글을 달아요. 네이버 카페 등업 신청 양식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에 콘텐츠가 한 방울 들어간 것이 ‘텔레파시 반모방’인데요. 라떼에겐 ‘천생연분 게임’으로 익숙하죠. 영상에 ‘당근 VS 오이’처럼 둘 중 하나 고르는 질문이 여러 개 등장하고, 반모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호를 댓글로 답니다. 그 답변을 보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골라 반모를 시작하는 거예요.
Check point
‘텔레파시 반모방’은 기업 유튜브에서 참고할 만한 무난하고 귀여운 포맷입니다. ‘빙그레 제품 중 최애는?’ 같은 타이틀로 텔레파시 이벤트를 기획할 수도 있겠죠!
→ 영상은 짤처럼 사용! 할 말은 설명란과 댓글에 쓴다
‘반모방’이나 ‘댓글 챌린지’ 영상을 눌러보면, 짧고 딱히 별 내용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설명란 혹은 고정 댓글로 달아두죠. 영상은 ‘짤방’같은 역할만 하는 거예요. 왜 공지 영상을 안 찍고 글로 쓰나 싶으신가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요.
시청자들도 편하게 볼 수 있고, 편집할 시간도 줄어드니까요!
뽀햬(14세, 유튜버)
10대들은 우리처럼 ‘유튜브=영상 플랫폼’이라는 생각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최대한 편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뿐이죠. 그 공식이 지금은 ‘설참(설명 참고)’과 ‘고정댓’인 거고요. 커뮤니티 탭은 구독자 1,000명 이상이어야 생성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있거든요. 10대 유튜버들이 왜 그토록 ‘설참’이란 단어를 많이 썼는지 이제 아시겠죠?
→ 섹션 추가로 우리 이렇게 친하다고 티 낸다
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들과 ‘~팸’ 등의 이름을 붙여 놀아 본 적 다들 있으실 겁니다. 요즘 10대들은 그런 그룹을 유튜브와 틱톡에서 만듭니다. 틱톡은 ‘크루’, 유튜브에선 ‘~즈’, ‘~팸’이란 표현을 많이 쓴대요(친근하죠?). 틱톡 크루가 함께 영상을 찍으며 친목을 과시한다면, 유튜브 팸은 ‘섹추(섹션 추가)’를 통해 “우리가 이렇게 친하다!” 티를 낸다고 합니다. 홈 화면에 같은 팸 친구들의 채널을 걸어두는 거예요. (←이렇게요!)
SNS 친구는 ‘느슨한 관계’라고만 여기는 줄 알았는데, 좀 의외죠? 10대들은 ‘반모자(서로 반모하기로 한 사람)’의 ‘소통률’에도 민감합니다. 소통률은 얼마나 열심히 댓글을 달고 소통할 수 있느냐를 뜻하는 용어인데요. ‘반모’를 받을 때 ‘소통률’을 기재하도록 하는 10대들이 많아요. ‘임반(이미 반모를 한 상태)’인 사람이 채널에 잘 놀러 오지도 않고 소통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면 ‘반박(반모 박탈)’을 해버린답니다. 우리도 가끔 팔로우만 해놓고 교류가 없는 인친, 페친들을 정리할 때가 있잖아요. 비슷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Check point
기업에선 주로 홈 화면 오른쪽에 브랜드 채널을 달아두죠. Z세대 대상 브랜드라면, 10대들처럼 프로필 사진을 귀엽게 맞춰서 OO 크루라고 걸어놓으면 어떨까요? 좀 더 친밀하게 느껴질 수 있게요.
→ 개인정보엔 민감하지만 마음은 열려있다
유튜브에서 사귄 ‘반모자’들과는 유튜브에서만 소통하고 끝인 걸까요? 10대들은 유튜브 정보 탭에 카카오톡 카드 챗을 걸어둡니다. 링크를 누르면 카드형 프로필이 등장하고, 1:1 오픈 채팅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카드챗 링크를 걸어두면, 더 친해지거나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은 1:1 톡방으로 들어와요. 그중에 완전 친해진 사람들이랑만 SNS 아이디를 공유해요. 이비누(13세, 유튜버)
브이로그를 올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10대들은 생각보다 얼굴이나 신원이 노출되는 걸 조심스러워하더라고요. 한 번 공개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세대이니까요. 그래서 바로 SNS 아이디를 알리기보다는 오픈 톡으로 서로를 먼저 알아가길 택한다고 해요. 완전히 친해진 후에 SNS나 전화번호를 공유한다고 합니다.
→ 유튜브에서도 상황극하며 논다
그럼 10대들은 영상으로 어떻게 놀까요? 라떼에게 신기한 놀이거리로 소개됐던 ‘액괴(액체 괴물=슬라임)’ 기억하시나요? 10대들에겐 여전히 ‘액괴’가 핫하답니다! 특히 ‘액괴’로 상황극 하는 영상이 인기인데요. 요즘 가장 잘 되는 포맷은 ‘버실(버전 실시간)’이래요.
‘버실’은 1) 라이브 방송이 아닌데 2) 실시간 댓글이 올라오는 것처럼 연출하고 3) 그 댓글의 내용을 특정 콘셉트로 정해 상황극을 하는 영상이에요. 예를 들면 ‘악플러 참교육하는 버전’이라고 제목을 달고, 방금 악플이 달린 것처럼 받아치는 상황극을 하는 거죠. 이렇게 만든 여러 개의 짧은 상황극을 하나의 영상에 모아 둔 것을 ‘모버실(모든 버전 실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실시간 댓글st 상황극 모음’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10대들은 이런 ‘버실’ 영상을 통해 ‘반모자’와 콜라보를 하며 놉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서로의 영상에 출연하는 건 아니고요. 언제 어떤 주제로 상황극을 올릴지 정하고, 상대방의 닉네임을 등장시키는 거예요. 내가 쓴 소설에 친구의 이름을 출연시키는 격이죠.
영상 콜라보할 때 주로 ‘버실’을 해요. 소설 쓰는 것처럼 주제를 정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밌어요. 이야기에 어울리게 편집하는 것도 재밌고요! 혼자서 놀 때는 액괴 소설을 쓰기도 해요. 액괴 영상에 제가 지은 이야기를 편집해 올리는 거예요. 뽀햬(14세, 유튜버)
Check point
틱톡에서도 상황극 영상이 흥하는 걸 보면, ‘상황극’이 10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포맷인 건 확실해 보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스토리텔링을 담아내는 것이 10대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인 것 같아요!
→ 다른 사람들 쓰라고 영상을 공유한다
‘유튜브를 해야 하나…’하는 마음에 장비를 사 본 라떼라면 놀랄 만한 이야기입니다. 10대들은 직접 촬영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액괴’ 무편집 영상을 공유하는 문화가 있대요! 양식을 정해두고, 그 양식을 지키는 사람은 영상을 다운받아 쓸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ex. 설명란에 출처 쓰기) 금손들이 PPT 템플릿을 블로그에 공유해주는 것처럼요!
10대들은 경제력이 없으므로 유튜브 촬영에 필요한 장비나 준비물을 구비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홍익인간 정신이 정말 투철하지 않나요? 물론 양식을 지키지 않고 사용했다가는 원작자와 그의 구독자들에게 혼쭐이 날 수 있답니다.(반어법 아님)
지금까지 10대가 유튜브에서 어떻게 놀고, 친구를 사귀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어떠셨나요? 이 친구들이 10대 후반, 20대가 되면 유튜브의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마지막으로, 오늘 기사에서 이것만은 꼭 숙지하시란 의미에서 2020년 유튜브 용어 사전 짤을 준비했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분들에게 제비처럼 물어다 주세요!
캐릿의 6줄 요약
1. 10대는 유튜브에 꼭 ‘콘텐츠’만 올려야 한다는 편견이 없다. ‘반모방’ ‘텔레파시 반모방’ 만들어서 댓글 창을 채팅방처럼 사용한다.
2. 영상은 짤처럼 쓰고, 설명란이나 고정댓에 하고 싶은 말을 쓴다.
3. 채널 홈 화면에 크루 멤버들의 채널을 섹션 추가해 우리 이렇게 친하다고 광고한다.
4. ‘반모’하며 친해진 사람들과 1:1 오픈채팅을 통해 실친으로 발전한다.
5. 반모로 친해진 사람들과 영상 콜라보하길 즐긴다. 특히 액괴로 상황극하는 영상이 인기가 많다.
6. 영상을 직접 찍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편집 영상을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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