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할 것만 고3 시절. 나는 휴대폰을 2G폰으로 바꾸고 좋아하던 취미들을 정리했다. 입시에 실패하면 내 인생까지 실패할 것 같았고, 입시를 향한 마라톤에서 그런 건 방해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만 가면 다 좋아질 거라고, 어른들이 하는 말을 나 역시 반복하면서, 그렇게 꾸역꾸역 ‘인 서울’을 했다.

 

막상 대학에 오고 나서도 그리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얼마 못 가 스펙, 경력, 학점 같은 것들이 뒤엉켜 나를 또다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학 초년생 때 느낀 불안은 그저 막연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전역을 하고, 3학년이 되었을 때도 나는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텅 빈 이력서를 가지고 있었다. 막연하던 불안은 이제 구체적인 현실이 됐다.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낙오되면 어쩌지? 나는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켜놓은 런닝머신 위를 뛰고 있을 뿐, 내가 바라는 목적지 같은 건 없었다. 런닝머신의 속도는 점점 더 버거워졌다. 정신 차려보니 뒤꿈치 바로 뒤에 런닝머신의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휴학을 했다. 백지뿐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졸업을 하게 될까 두려웠다.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국토대장정이었다. 가서 내 꿈을 찾아야지, 같은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답답한 마음에 환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서 해남까지, 18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여행하는 동안 나는 그간 나를 채근하던 런닝머신에서 내려와 비로소 내 걸음의 속도대로 살 수 있었다. 열 걸음마다 바뀌던 이름 모를 식물들, 스무 걸음의 꽃향기, 백 걸음의 거름 냄새…. 사람들은 물었다. 왜 걸어요? 이게 무슨 의미예요? 처음엔 별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러게요, 하고 웃어넘기곤 했다. 그런데 걷다보니 새로운 이유들이 생겼다.

 

자동차의 속도로는 볼 수 없던 것들을 발견할 때의 기쁨이 있었다. 차가 많은 도로가 싫어 최대한 국도를 피해 오솔길로 걸었고, 좋은 풍경을 나누고 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고, 걸으면서 느껴지는 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생각해 보면 삶의 이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살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들이 생기는 거지. 그리고 그 이유들이 다시 나를 살게 한다는 걸, 걷는 동안 깨달았다.

 

어쩌면 내 문제는 나의 우유부단함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뭔가를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못 해, 머릿속으로 재기만 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럴 듯한 핑계들로 ‘할 수 없는 이유’를 합리화한다고 해서, 내 삶이 더 나아지진 않았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먼 길을 갈 수 있었던 건, 내가 ‘걸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사실. 이 단순한 사실을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닥쳐오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천리가 넘는 길을 걸어보니 이제 그 말을 발바닥으로 생생히 기억한다. 세상의 속도에 쫓겨, 한 걸음부터 내딛어야 하는 천리 길 앞에서 이미 너무 늦었다거나 혹시 더 빠른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머리만 굴리다 보면 영영 천리 길을 바라만 보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여행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나를 낭떠러지로 보내는 런닝머신에서 그만 내려오기로. 그 대신 나의 걸음으로, 나의 속도로, 계속해서 걸을 것이다. 남들의 속도와 비교할 필요 없다. 어딘가에 도달하지 못해 실패하는 인생이 아닌, 그저 나의 길을 걸으며 살고 싶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잘 걷게 될 테니까. 그럼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삶을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어린왕자>의 한 장면이다. 어린왕자는 갈증을 달래주는 알약을 파는 장사꾼을 만났다. 장사꾼은 이 알약 하나면 일주일에 오십삼 분의 물 마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왕자는 혼자 생각한다. ‘만약 내게 마음대로 써도 되는 오십삼 분이 있다면 난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겠어.’

 

Writer 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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