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녕? 나는 빙봉! 네 기억 저장소에 숨어 있던 상상 친구야! 내가 누구냐고? 헐… 네가 꼬꼬마 시절에 세일러문이나 파워레인저의 모습이 되어 함께 놀았잖아. 날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요즘 너 우울하단 얘기를 듣고 찾아왔지. 듣기로는 면담 시간에 교수님이 “자네는 꿈이 뭔가?”하고 물어본 날 이후부터 의욕도 없고 불안 증세를 보인다며? 이 빙봉이 해결해주지! 그 전에 먼저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없다기보다 남에게 네 꿈을 말하기 싫은 거 아냐? ‘재능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서’, ‘이 직업은 돈을 잘 못 버니까’  등의 이유를 붙이면서 남들이 네 꿈을 평가하기 전에 접어버리는 것 아니냐고. 원래 사람들은 남의 얘기에만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구석이 있잖아.

 

 

내가 보여줄 게 있어 이리로 따라와 봐. 기억나니? 네 상상의 나라야. 내가 기억하는 너는 하고 싶은 게 많아도 너무 많은 아이였어. 누굴 가르치는 걸 좋아해서 선생님 놀이도 하고 혼자 가수가 된 것처럼 거울 보면서 뮤직비디오도 찍었잖아. 언제적 이야기를 하느냐고?

 

휴, 그럼 이 비밀 구슬을 꺼내야겠군. 네가 버리려던 기억 구슬들을 주워놨지. 너 고등학교 때 시골에 아이들 가르치는 봉사활동 간 적 있지? 봐, 아직도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잖아. 어디 보자, 그리고… 그래! 이건 네가 첫 농구 경기를 할 때의 기억이야. 네가 3점 슛을 넣으면서 반 애들이 널 우러러보기 시작했지. 이건 심지어 최근이야, 전국 대학동아리 농구 경기에서 너희 팀이 우승했을 때는 또 어떻고? 네가 페이스북인가 하는 데에도 올렸던 거잖아!

 

이렇게 한 구석에 모아둔 네 기억을 계속 뒤져 봐. 사소한 일이지만 능력을 인정받고 기뻤던 순간 말이야. 한 가지 일에 한껏 몰두하고 나서 느꼈던 성취의 기억들이 네 안에 묻혀 있다고. 남들의 시선을 피해 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버렸을 뿐.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면 초등학교 시절 썼던 일기라든가 싸이어리를 열어 봐. 정답은 네 안에 있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지 마. 생각보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아는 친구들은 별로 없어. 바라던 직장에 먼저 들어간 친구들도 똑같아. 다들 비슷한 고민과 불안을 안은 채로 살고 있어. ‘나는 이 일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그나마 이건 괜찮아’라는 식으로 고민과 위안을 반복하면서. 그러니 당장 인생의 큰 그림 따위 없다고 걱정하지 마. 일단 네가 좋아했던 것 혹은 잘했던 걸 경험해 보는 거야. 아니면 남들에게 칭찬받았던 일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아. 성취감과 기쁨을 느끼며 그 일을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조금씩 꿈 섬이 네 안에서 자리를 잡을 거야. 이제까지 여러 번 무너지고 흔들리고, 또 새로 만들어졌던 수많은 꿈 섬들처럼 말이야. 진짜야! 내가 봤어!

 

 

미안하지만 “무슨 꿈이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거야, 너 자신을 믿어” 같은 뻔한 얘기는 하지 않을게. 그건 한 순간만 너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소리거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가장 애쓰고 불안해할 사람은 바로 너일 테니까 그런 일회성 사탕발림에 설마 속지 않겠지?

 

영화 속에서 나는 기억의 쓰레기장에서 사라져가며 라일리의 기쁨도 살렸어. 그리고 동시에 우리 모두의 빙봉을 찾아내줬지. 누구나 마음속에 각자의 빙봉이 살아 있어. 나는 네 빛나던 순간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네가 방황할 때면 언제든 다시 찾아올게. 그러니까, 달나라에 함께 가겠다는 약속은 못 지켜도 나를 잊지 말고 멋진 어른이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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