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우리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갑자기 찾아와 일상을 흔들고 계획을 무너트린다. 하고 싶은 게 많던 18살 희우에게도 병은 말없이 찾아왔다. 그렇게 11년, 그동안 루푸스라는 희소병은 희우의 신장을 앗아갔지만 희망까지 뺏지는 못했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병이었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10년간의 투병기를 에세이로 엮어낸 작가 희우를 만났다.


“저는 울면서도 씩씩하게 걸으며 이 순간까지 왔어요. 울어도 괜찮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알아가길 바라요.”


 

의지와 상관없이 아픈 사람이 됐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 ) 루푸스 투병 11년 차이자 발병 후 10년간의 투병기를 담은 에세이 『당연한 하루는 없다』를 출간한 희우라고 합니다.

 

루푸스는 생소해요. 어떤 병인가요?

정확한 이름은 ‘전신 홍반 루푸스’라고 해요. 몸의 면역계가 외부의 질병만 공격해야 하는데 반대로 저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죠. 증상은 여러 가지인데 저는 면역계가 신장을 공격하는 루푸스 신염이에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얼떨떨했어요. 루푸스라는 병명도 처음 들어보고, 통증도 심하지 않아서 금방 나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완치 없는 희소병이라니…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학업을 이어갔어요. 힘들지는 않았나요?

아프다는 이유로 공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 ) 하루에 스테로이드 알약을 12개씩 먹으며 입시 준비를 했죠. 스테로이드 부작용 때문에 얼굴이 부어서 오랜만에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못 알아볼 정도였어요. 그래도 노력한 보람이 있는지 운이 좋게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죠!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학업 욕심을 조금 내려놨나요?
아니요 : ) 대학 생활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어요. 루푸스가 매일 아픈 게 아니라 괜찮았다가 갑자기 아파지는데, 아플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힘도 없어서 입원하고, 음식 먹기도 힘들어서 하루에 과일 한두 조각만 먹는 날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컨디션이 좋아질 때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덴마크로 교환학생을 갔던 시기도 컨디션이 좋았을 때였군요! 갑자기 아플까 봐 무섭지는 않았나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다행히 ‘관해기’라고 해서 약을 끊어도 되는 시기가 왔을 때 용기 내서 떠났죠. 스테로이드를 끊으니 퉁퉁 부었던 얼굴도 원래대로 돌아와서 좋았어요. 그때까지는 몰랐죠. 제가 투석을 해야 하고 신장이식까지 필요하게 될 거란 사실을요.

병이 내가 되지 않도록


남들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해진 게 아니었나요?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나서 다시 아프기 시작했어요. 루푸스가 제 신장을 공격하고 있었죠. 1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항암치료의 하나인 싸이톡신 치료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한 학기면 끝날 강의를 두 학기에 걸쳐 들어야 했어요.

 

치료를 했는데도 신장은 결국 안 좋아졌군요.

생각보다 빠르게 안 좋아졌어요. 25살 때 신장기능이 55%까지 떨어졌고, 병원에서는 5년 후 투석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했는데 27살 가을에 복막투석을 시작했죠.

 

투석을 시작했을 때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아요.

투석 전에는 아파도 겉으로 증상이 보이지 않으니까 병을 외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마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투석액을 넣기 위해 몸 안에 도관을 이식하고, 하루의 절반은 투석 하느라 나갈 수도 없었으니까요. 장애인 등록까지 마치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아무도 내 고통은 모를 거야’같은 우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노트에 나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나요?

처음에는 자신이 없어서 인터넷에 올리지는 못했어요. 그러던 중 에세이 수업에 갔는데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고 이야기에 공감하며 같이 울어주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었어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니 댓글로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너무 큰 힘이 됐죠. 마치 혼자 외롭게 울고 있었는데 누군가 ‘저 여기 있어요!’ 하면서 전구를 하나씩 켜는 느낌이었어요.

 

원래는 친구에게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거의 안 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입 밖으로 병명을 꺼내면 그냥 저는 ‘아픈 사람’으로 남을 것 같았어요. 그로 인해 제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도 싫었고요. ‘너는 아프니까 쉬어, 힘들게 안 해도 돼’라는 말을 듣고 싶진 않았어요.

아픔이 나를 자주 외롭게 해서, 언제나 이해와 공감을 바랐다. 그러면서도 아프다는 사실을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곧 루푸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86p

에세이를 쓰며 후회되는 과거의 순간은 없었나요?

많았죠 : ) 의사 말 듣고 공부 잠시 멈출걸, 교환학생 가지 말걸, 나를 더 돌볼걸. 무수히 많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내가 과거의 순간들을 후회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부정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는 후회하지 않아요. 사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나는 이제 그때의 나를 탓하기보다 안아주고 싶어. 과거를 돌아보며 내 잘못을 샅샅이 뒤지고, 뒤따라오는 무거운 질문들을 그 애에게 던지는 일을 멈추려고 해. -42p

 

새살이 돋아난 자리에서 새 삶이 시작되다.


다행히 동생의 신장이식으로 1년간의 투석은 끝났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두 살 어린 동생은 해외에서 공부 중이라 제가 신장이식이 필요한지 몰랐어요. 일부러 말하지 않았죠. 그런데 원래 이식 예정이었던 엄마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어요. 아빠도 부적합 판정을 받았을 때 동생이 코로나19 때문에 귀국하게 됐죠.

제 아픔을 동생에게까지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동생은 너무나 태연하게 신장이식을 결정했어요. 죄책감과 고마움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서 많이 울고 수술 전까지 계속 이게 맞는 건지 고민했죠.

 

수술 이후 동생과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나요?

원래도 사이좋은 남매였는데 이번 계기로 애틋한 감정이 생겼어요. 장난으로 로또 되면 당청금 거의 다 주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엄마는 다 주라는데 저도 써야 하니 그럴 수는 없죠 : )

투병할 때 친구들이 어떤 말을 해주면 가장 도움이 됐나요?

병원에 자주, 오래 입원했기 때문에 ‘아픈 희우’가 아니라 그냥 ‘희우’로 대해줄 때 가장 좋았어요. 억지로 칭찬하거나 힘내라는 말 대신, 학교는 어떻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뭐가 맛있는지 등 소소한 이야기를 해주면 저도 바깥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죠. 친구들을 보며 잠시나마 병을 잊고 싶은데 굳이 제 상황을 이야기하면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을 텐데, 힘이 된 콘텐츠가 있었나요?

RPG 게임 덕후예요 : ) 현실에서 성장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게임 캐릭터를 성장시키게 됐죠. 수능 끝나고는 메이플 스토리를, 최근에는 제2의 나라를 했어요. 그런데 시간을 많이 뺏기는 거 같아 최근에 삭제했어요. 무한도전이나 강아지 영상 같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영상도 많이 봤어요.

 

건강해지는 시점에서, 겁이 많았을 18살의 희우와 지금보다 건강해졌을 38살의 희우에게 메시지를 보내볼까요?

18살의 희우야, 쫄지마! 더 아파질까봐, 내가 돈을 못벌까봐, 부모님에게 짐이 될까봐 겁이 났던거 알아. 그래도 씩씩하게 잘 이겨낼거니까 너무 걱정마 : )

38살의 희우야,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으면 좋겠어. 욕심 많은거 알지만 건강을 먼저 생각해줘. 동생 잘 챙기고!

이제 나는 모든 질문을 거두고 그저 소망을 읊는다. (중략)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나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야 하니까 어제는 덜 돌아보려고 애쓴다. -67p

마지막으로, 몸과 마음을 다쳐 힘들어하는 대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정말 힘들 때는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아요. 제가 그랬어요 : ) 그래서 어떤 말을 해도 와닿지 않을 거예요. 대신 지난 11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말씀드릴게요. 저는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평생 약을 먹어야하고 지금도 하루에 15알을 먹고 있어요. 우는 날이 더 많았지만 씩씩하게 걸으며 이 순간까지 왔어요. 그러니 울어도 괜찮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알아가길 바라요.

 

Photographer 안용길 Studio No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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