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에 햇반 돌려보지 않은 대학생이 있을까? 유리병에 든 소스만 부으면 크림 파스타도 뚝딱이다. 밥, 국, 찌개, 면 요리 등 이제는 원하는 음식을 편하게 먹는 게 당연한 시대다.

 

이런 당연함을 만들기 위해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온 마케터가 있다. 바로 28년 차 마케터 이주은 작가이다. 제품 개발부터 드라마 PPL 썰, 면접 꿀팁까지. 내공 가득한 그녀에게 마케터로 사는 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마케터님.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CJ 제일제당 공채 1기로 입사하여 28년 동안 식품 마케팅을 통해 대한민국의 밥상을 바꿔온 마케터 이주은입니다 : )

 

제 밥상도 바꿔주셨을까요? 어떤 브랜드에 관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햇반부터 비비고까지 CJ의 수많은 식품을 마케팅했어요. 백설과 햇반 팀장을 지나 HMR(가정간편식) 사업부장을 했고, 최근에는 비비고 브랜드 그룹장 상무를 역임했죠. 지금은 CJ 제일제당의 자문으로 활동 중입니다.

 

긴 시간 마케터로 지내며 다양한 경험을 쌓다 보니 ‘누구나 마케터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출간하게 됐어요.

 

 

대학생 때부터 마케터가 꿈이었나요?

그럼요. 입사 당시 CJ는 식품 광고를 정말 많이 했어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죠. 제품을 알리고 홍보하는 일이 굉장히 멋있게 보였어요. 그래서 ‘나도 제품을 멋지게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죠.

 

제품 홍보가 마케터의 주 업무인가요?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요.

마케터는 인하우스 마케터와 대행사 마케터로 나뉘어요. 저와 같은 인하우스 마케터는 소속된 기업 내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고 마케팅을 통해 사업을 성장시키는 일을 전문으로 하죠. 대행사 마케터는 특정 기업의 의뢰를 받아 광고 및 홍보 등의 일을 전문으로 하고요.

 

쉽게 말하면,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만들어서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는 인하우스에서, 시장에서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대행사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맡은 역할에 따라 브랜드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 등 더욱 세분화 돼요.

 

회삿돈 받으며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마케팅이야 – 15p

기억에 남는 마케팅 성공 사례가 있을까요?

‘비비고 죽’이 있어요. 처음으로 파우치형 죽을 출시했죠. 지난 30년간 죽 시장은 작고 동그란 용기에 죽이 담긴 경쟁사 제품만이 있었어요. 그러다 죽 전문점이 생기며 죽을 먹는 트렌드가 아플 때 먹는 음식에서 일상식으로 바뀌고 있었죠.

 

이때 건더기가 많고 퀄리티가 좋은 파우치 형태의 죽을 기획하여 출시했어요. 그리고 2년 만에 죽 분야 시장점유율 1등이 되었죠.

 

유리병에 든 크림 파스타 소스도 국내 최초로 상품화했어요. 그전에는 토마토 파스타 소스밖에 없었죠. 상온 보관이 쉽지 않아 셰프 출신의 연구원과 고생하며 만들었어요. 더 자세한 제품 개발 비하인드는 책에 적어두었어요 : )

 

파우치형 죽을 처음 선보여 시장 흐름을 바꾼 비비고 죽. 출처: 비비고 홈페이지

 

새로운 식품 마케팅에 도전할 때 반대 여론은 없었나요?

비비고 죽을 기획할 때 반대 의견이 꽤 있었어요. 경쟁사가 이미 선점한 시장이었고 저희는 시장 3등으로 시작하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었죠.

 

이럴 때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식품 연구원과 프로토타입 식품을 만들어서 반대하는 사람에게 계속 시식을 권하면 됩니다 : ) HMR이라는 트렌드와 최적의 맛까지 구현했으니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

 

마케터는 생명체를 키우듯 브랜드를 꾸준히 관리하고, 그 브랜드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적절한 햇볕과 물을 주며 키워나가야 한다 – 80p

설득을 위해서는 트렌드 파악이 중요할 것 같아요. 20년 넘게 트렌드를 놓치지 않은 노하우가 있을까요?

콘텐츠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파악해요. 드라마, 영화, 책 등 뜨는 콘텐츠에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키워드가 있어요. 그 안에 담긴 욕망을 읽는 거죠.

 

시장 조사도 많이 해요. 저는 ‘현장 파먹기’라고 표현하는데, 맛집이나 핫플레이스에 찾아가고, 지방에 가면 지역 매장에서 물건을 사보고 고유의 음식도 먹어봐요. 현장 파먹기로 나온 제품 중 하나가 ‘행복한 콩 두부’죠.

 

현장에 답이 있다. 소비자와 만나는 끝단을 관리하라. 최접점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분들이야말로 진정 고객의 답을 알고 있다. – 88p

 

그래도 트렌드가 잘 안 보이고 슬럼프가 올 때가 있지 않을까요? 그럴 때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주변에 의견을 묻곤 해요. 온라인 후기도 모두 읽어보고 현장 MD를 찾아가 원인을 분석하죠. ‘왜 우리 제품이 선택받지 못했을까’라며 원인을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슬럼프가 극복돼요.

 

저서에 드라마 <사내맞선> PPL 이야기도 있어요. 마케터가 드라마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나요?

<사내맞선>은 비비고 상무를 맡을 때 진행한 PPL(간접광고)입니다. 식품 회사라는 설정과 드라마가 밝다는 점이 좋았어요. 시나리오의 큰 틀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극 중 회사의 이름, 연구복 및 사원증의 로고나 컬러 등은 제안할 수 있었어요.

 

‘GO푸드’라는 극 중 회사명도 제가 제안한 여러 이름 중 하나였죠. 비비고 제품의 포스터를 어느 벽에 붙일지도 협업이 가능했어요. PPL은 마케터가 고민을 많이 할수록 성과가 높아집니다.

 

비비고가 연상될 수 있도록 노력한 드라마 <사내맞선> PPL. 출처: SBS 드라마 <사내맞선>

 

과거와 다르게 마케팅 채널과 방법이 다양해졌어요. 그럼에도 하나로 귀결되는 마케팅의 핵심이 있을까요?

고객의 정의 같아요. 마케터는 내 상품의 고객이 누구이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하게 정해두고 있어야 해요. 온라인, SNS, 인플루언서 등을 활용한 다양한 채널의 마케팅은 그 이후의 전술이자 스킬이죠.

 

지금 신입사원 혹은 인턴 채용 면접관이라면 어떤 점을 유의 깊게 볼 것 같나요?

첫째, 진정성이 있는가. 면접 학원 다닌 것처럼 짜인 답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두세 번 날카롭게 질문하면 다 알 수 있어요. 어떤 질문에도 진정성 있고 획일화되게 본인을 표현하는 게 좋아요.

 

둘째, 지원 직무를 잘 이해하고 있는가. 마케터 면접을 보러 온다면 적어도 마케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와야 해요.

 

셋째, 회사의 방향성을 알고 있는가. 회사가 어떤 인재를 추구하고 미래 어떤 사업을 하려는지 숙지해야 해요.

 

당연한 것 같지만 의외로 위의 준비가 안 된 면접자가 많아요. 저는 CJ 제품 경험에 대해서도 묻곤 했어요. 우리 제품의 불편한 점, 어떤 제품이 나오면 좋을 것 같은지 등 우리 제품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보는 것이죠.

 

“회사가 직원을 선택하지만, 직원도 회사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서로 선택하는 만큼 회사와 직무에 대해 명확히 알고 오는 분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하게 채용한 인턴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인턴이 오면 마케팅 과제를 줘요. 한 번은 편의점 신상품 아이디어 제안 과제를 주었죠. 그때 한 인턴이 편의점에 있는 거의 모든 신상품을 다 먹어보고 온라인 설문까지 해서 과제를 냈어요. 마케터는 상품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게 중요해요. 그 인턴은 본인이 세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직접 행동한 거죠.

 

핵심 인재는 일을 사랑하고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합리적 수용성이 있으며 견디는 힘을 통해서 조직에서 높은 성과를 만들어간다. – 125p

인턴 외에 졸업 전 마케터 직무를 경험해볼 기회는 없을까요?

공모전에 응모하여 기획서를 쓰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돼요. 콘텐츠 마케터가 되고 싶다면 SNS에 콘텐츠 만드는 연습을 해보세요.

 

작가님이 취준생이라면 ‘몇 년 더 공부하여 대기업 인하우스 vs. 지금 바로 실무 경험 쌓는 중소 대행사’ 중 어디를 선택할 것 같나요?

대기업 인하우스는 마케팅의 큰 틀을 배우고 사업을 보는 관점을 배울 수 있고, 대행사는 디테일한 실무를 통해 전문성을 배울 수 있어요. 두 분야의 특징이 달라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경력직의 관점에서는 중소 대행사를 거쳐 대기업으로 오는 것도 좋아요. CJ에도 그렇게 오신 분이 많습니다. 일하는 센스나 응용력, 시행착오 속에서 생기는 업무 능력은 책으로는 배울 수가 없으니까요.

 

 

책을 보면 신입사원에서 대기업 상무까지 역임하는 동안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힘듦이 적혀 있어요. 마케터를 꿈꾸거나 시작하는 대학생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과거에 비해 여건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사회의 편견이나 시대적 편견은 남아있죠. 여성 팀장은 많아지고 있지만 여성 임원은 한국을 통틀어 1% 밖에 안 돼요.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요. 그래도 본인에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하고, 남들과 다르거나 독특한 면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나만의 무기로 삼아 해당 분야의 최초가 되세요. 이제는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표현할 채널과 방법론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됩니다.

 

조직의 구조를 이해하고 시대에 맞는 리더십과 전문성을 갖춰나간다면 앞으로는 보다 많은 여성 임원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 249p

 

마지막으로, 마케터로 사는 법이란 무엇일까요?

세상의 변화를 더듬이를 갖고 감지하고, 질문과 의문으로 시장과 소비자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Photographer 안용길 Studio No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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