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차가운 세상을 버티게 해줄 따뜻한 어른이 되기를

그들을 더 차가운 곳으로 내몰지 않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독립했다. 내가 내 삶을 온전히 견인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는 1년 반쯤 됐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당시에도 열심히 살기는 했다. 다만 지금은 그것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주도적인 태도가 커졌다.  

평범한 학원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작년 7월부터는 인터넷 강의 회사에서 일했다. 1교시 수업을 듣고 오후에 주 5일 풀타임 근무를 했다. 회사 사람들은 “직장인 아니냐”는 농담을 했다. 그래도 큰 어려움 없는 업무와 쾌적한 환경 덕에 일이 수월했다.  
    
물론 수월하기만 하진 않았다. 내가 근무한 팀의 실장은 나에게 부담스러울 만큼 잘해줬다. 하루는 “연차를 안 쓰고 수당으로 받겠다”고 하자 나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다. “나는 알바생들이 안타까워. 공부해야 하는데 돈도 벌어야 하잖아. 그래서 잘해줬는데 이런 식이면 기분이 나쁘네.” 그건 선의가 아니었다. ‘알바생에게 잘 해주는 착한 자신’에게 취한 것이었을 뿐, 오히려 틀린 건 실장이었다. 그는 알바생도 직원들처럼 연차를 필수로 소진해야만 하는 줄로 잘못 알고 있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수당을 받았지만, 세상이 마냥 순리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첫 회사에서 퇴사한 뒤 입사한 방송국은 업무량이 너무 많은 곳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방송부 활동을 해온 나에게는 꿈의 직장이었는데도, 입사 1주 만에 퇴사하고 싶어졌다. 특히 나를 힘들게 했던 건 권위주의였다. 대부분 사회초년생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한 선배는 그저 권리를 지켰을 뿐인 내게 ‘역시 MZ’라며 뒷말을 했다. 회사는 생각보다 더 차가운 곳이었다. 그런데도 버틸 수 있었던 건 H라는 선배 덕분이었다. 선배는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내가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나를 대변해 주기도 했다.  
  
하루는 선배에게 왜 나에게 그렇게까지 잘 대해주는지 물었다. “20대 때가 생각나서”, “열심히 하는 내가 예뻐서”라고 대답하는 선배를 보며, 옛 실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호의를 과시하며 웃는 얼굴로 알바생을 무시하던 그 무례함이. 반면 내 앞의 선배는 한참 어린 나에게 과거의 자신을 투영하고,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하는 진짜 어른이었다.  

입사 6개월 만에 나는 퇴사했다. 경영 악화 때문이었다. 회사는 6개월 후 내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퇴사 당일엔 눈물이 나올까 봐 선배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결국, 마지막 퇴근길에 펑펑 울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선배가 없었다면 절대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세상은 차갑다. 차가운 세상에서 나를 더 얼어붙게 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는 온기가 되어줄 어른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 당부한다. 나를 버티게 했던 따뜻함을 훗날 마주하게 될 어린 후배들에게 되갚으라고. 설사 되갚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을 더 차가운 곳으로 내몰지는 말라고. 지금 나는 조금 더 작은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H 선배가 내게 그랬듯, 언젠가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알바생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사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Writer. 문성연
오늘은 내일의 복선
#20's voice#대학생 에세이#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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