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기서 살고 싶다. 무심코 내뱉었다 쓱 주워 삼켰다. 제주는 로망이고 생활은 현실이다. 그래도 로망과 현실이 만날 수도 있지 않…나?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여기서 살 돈 있어? 아니, 뭐 할 줄 아는 거나 있어? 독하게 쏘아붙이고 나서야 마음이 잔잔해졌다. 일렁이는 마음을 현실 감각이라는 돌로 누르며 보낸 몇 달,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친구가 됐던 동갑내기 남자애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그 사이 꽤 의미심장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낡은 오토바이 몸통에 쓰인 글씨는 분명 ‘제주 살이 2015년 7월 8일~’. 끝이 정해지지 않은 물결 표시가 나를 세차게 뒤흔들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선선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 제주에서 살아보려고.”

 

‘제주도에서 살아보기’

 

떠나는 게 제일 쉬웠어요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제주를 들락거렸다. 제주만 오면 밝아지는 자신이 좋았고, 주변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ROTC 복무 중에도 3개월에 한 번은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예약도 안하고 가서 자주 가는 게스트하우스의 거실에서 잔다고, 주인 누나가 째려본다는 이야기를 하며 허허 웃었다. 카페를 차리기 위해 군대에서 악착같이 4000만원이나 모았는데, 전역하기 전 어깨 부상 때문에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지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패기가 가리고 있었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달려들었고, 만약 성공하면 더 이상 놀 수 없다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그래서 끼적끼적 써내려간 것이 ‘30살이 되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리스트였다. 우선순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도 제일 처음 펜을 움직인 건 ‘제주도에서 살아보기’였다.

 

흔히 여행지 인연은 여행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다고들 하지만, 함께 오름을 오르고 바다에 뛰어들었던 기억은 신뢰로 이어지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두 살 터울의 형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에게 먹여주고 재워 줄테니 제주에 오라고 제안했다. 원래 밤 장사만 하는 술집인데 낮 장사를 시작해보려고 하니 도와달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건 ‘기회’였다. 양동이 속에 묵혀놨던 버킷 리스트가 빛을 볼 기회. 바로 중고 시장에서 20년 된 오토바이를 하나 사 번호판을 달고, 작은 짐 보따리 하나 뒷자리에 실은 채 정읍에서 목포까지 달렸다. 생애 몇 번째로 바다를 건너는 것인지는 몰라도 늙은 오토바이는 의연하게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푸른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제주항이 그들을 반겼다.

 

 

“내가 운이 좋잖아. 기회였다니까?”

 

여행이 밥 먹여준다

 

제주 여행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반해서 돌아오는 마을이 있다. 월정리, 세화, 협재…. 눈을 동그랗게 만드는 예쁜 풍경이 알알이 박혀있는 탓이다. 협재 해수욕장 근처, ‘가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장난스러운 이름의 컨테이너 창문 너머로 그가 손을 흔들었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거의 여기서 이루어진다. 서빙하고, 손님들과 밤공기에 취해 대화를 주고받고, 낮에는 사장 형과 칵테일 메뉴를 연구한다. 밥은 가게에서 먹고 잠은 사장 형이 내어준 방 반 칸 덕에 걱정 없다. 숙식이 해결되니 한 달에 30만원이면 거뜬하다.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정말 여행이 밥 먹여 준거다. “더럽게 부럽다!” 질투 섞인 칭찬에 눈꼬리를 휘어뜨리며 웃는다. “내가 운이 좋잖아. 기회였다니까?”

 

그렇다면 지인 따위 없는 내가 제주에 산다면 얼마가 필요할까. 제주도는 1년 단위로 세를 내는 ‘연세’가 보편적인데, 마을에 다 쓰러져가는 집도 3~400만원은 된다고 했다. 월정리에 사는 지인의 집은 귀신 나올 것처럼 생겼는데 700만원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번 생은 틀렸다고 좌절하는 내게 그가 어려운 팁 하나를 줬다. 동네 분들과 친하게 지내면 건너건너 오랫동안 안 쓰는 집을 구할 수도 있다고. 붙임성이 좋으면 제주 살이가 한층 윤택해진다나. 그렇다면 더욱 이번 생은 틀렸다…. 만만치 않은 돈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득 사장님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가족적인 분위기로 ‘늘 즐기자’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형의 속내는 그 역시 함부로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도 여기가 요즘 협재의 핫 플레이스라며 너스레를 떤다. “사람들이 홍대 같대.” 왜 제주도까지 와서 홍대를 찾느냐고 하려다 그만뒀다. 누군가에겐 노래와 춤, 술과 사람이 기분 좋게 뒤섞인 공간에 대한 최고의 찬사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느낀 다음에 떠나야겠다 싶으면 떠날 거야.”

 

한량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돌담이 길을 만드는 고즈넉한 마을을 좋아하지만, 평생 살 수 있냐고 물으면 망설여진다. 서울의 속도와 떠들썩함에 익숙해진 내가 깊은 고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한 달차 제주 주민은 심심함을 어떻게 풀까. 칵테일을 만들다 좀이 쑤시면 가게 앞 바다로 나간다. 스노쿨링도 하고, 조금만 더 옆으로 가면 다이빙하기 좋은 스팟이 있다. (불만이 있다면 올해 해수욕장에 놀러오는 여자들이 모두 래쉬가드를 입는다는 것뿐.) 또래 친구는 없지만 대신 나이 많은 친구가 꽤 생겼다. 그 덕에 군 생활 할 땐 늘 이야기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여기선 자연스럽게 ‘듣게’ 된다. 원래 얼굴 보기 힘들었던 친구들도 그가 제주도에 있다는 핑계로 놀러오는 일이 잦아졌다. 영화를 좋아해서 극장이 멀리 떨어져있는 것은 아쉽지만, 1TB나 담아 가져온 영화들이 있기 때문에 조급하진 않다. 아직은 좋다고, 그는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팔불출처럼 동네 자랑도 잊지 않았다. “시골 동네지만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게 많아. 기타도 배울 수 있고, 푸드 테라피에 SNS 블로그 교육 같은 것도 있더라고. 계속 찾아보고 있어. 앞으로 배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앞으로’란 말이 귀에 걸린 것은 내가 미래 지향적 사고를 강요받으며 자라서일까. 불안하지 않아? 여기서 계속 살 거야? 앞으로 뭐할 건데? 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속사포처럼 그에게 쏟아냈다. “기약 없이 오긴 했지만 정착할 마음은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느낀 다음에 떠나야겠다 싶으면 떠날 거야.” 처음에 펄펄 뛰었던 부모님은 ‘네가 놀아봤자 얼마나 놀겠냐’ 체념하는 마음으로 아들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생각해보면 아들은 누누이 말해왔기 때문이다. 장교 채용으로 대기업 갈 생각 없다고, 카페를 할 거라고. 그는 한량처럼 살고 싶어서 카페 주인을 꿈꾼다고 했다. 다만, 이제 진짜 여유를 가지려면 생각보다 자신이 더 단단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는 아름다운 제주에서 장사하고, 홀로 원두 로스팅을 연습하고, 멋진 카페를 염탐하며 논다. 일을 일처럼 하면 한량이 아니란 점에서 그에게는 좋은 한량의 싹수가 보인다. 그러니 도피라고 놀릴 필요도, 혀를 찰 필요도 없다. 번쩍이는 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보통 사람이 한량으로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우리가 가장 잘 알지 않은가.

 

Editor 김슬 dew@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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