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속된 집단, 혹은 무리를 의미하는 단어로 우리는 흔히 ‘그룹(Group)’을 떠올립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클랜(Clan)’ 혹은 ‘길드(Guild)’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죠.

 

대학내일의 20대 연구소는 2024년 Z세대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트라이브십(Tribeship)’을 제안했습니다. 개인의 취향, 관심사,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소규모 커뮤니티를 의미하는 단어인데요. 트라이브는 다른 단어와 달리, 그 구성원들이 강한 정체성과 전통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문화적이고 공동체적인 느낌이 강하죠.

 

이번 3분기에 틱톡에서 발견된 인사이트 역시 이 ‘트라이브십’과 엮여 있습니다. Z세대가 적극적으로 숏폼을 만들고 소비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지만, 이들의 일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숏폼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새로 나온 신상품을 찾아다니며 영상을 찍고, 챌린지를 놀이처럼 소비하며, 밈이 될 만한 영상을 발굴해 숏폼으로 재생산하기도 하죠. 숏폼은 Z세대에게 더이상 고도화된 편집 능력을 요구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의 산물입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발견한 재미를 숏폼으로 담아내고, 나아가 소통의 수단으로 숏폼을 활용하는 Z세대의 특성을 우리는 ‘숏폼 트라이브’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올해 3분기 틱톡 내에서 발견한 숏폼 트라이브의 특징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일상의 기록이 콘텐츠로

숏폼이 등장하기 전까지 콘텐츠 제작자 다수는 콘텐츠를 ‘각잡고’ 만들어 왔습니다. 제품 하나를 리뷰하더라도 여러 조명과 높은 해상도의 카메라를 활용해 앉은 자리에서 열심히 특징을 나열하는 식이었죠. 홈페이지와 블로그 시대를 넘어,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창작자들에게는 콘텐츠의 ‘편집’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올해 3분기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콘텐츠 카테고리별로 존재하던 양식, 혹은 틀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크리에이터인 요즘 시대에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일상에서 발견한 우연한 요소가 콘텐츠가 되기도 하죠.

 

최근 리뷰 열풍이 불며 품절대란이 일어난 ‘두바이 초콜릿’의 경우, 많은 크리에이터가 제품을 구입해 리뷰 영상을 찍었습니다. 품절대란으로 리뷰를 하지 못한 크리에이터들은 두바이 초콜릿을 구하는 여정을 콘텐츠로 제작해 큰 호응을 얻어내기도 했죠. 이들은 초조한 얼굴로 편의점에 들어서는 장면, 알바와 대화하는 장면, 구하지 못해 낙심하며 투덜거리는 장면 등을 숏폼으로 담아냈는데요. 심지어 두바이 초콜릿이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 영상에도 약 1천여 개의 댓글이 달리며 많은 유저들이 공감했습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의 이재흔 연구원은 Z세대가 ‘과정형 콘텐츠’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성공하는 모습만 담는 게 아니라,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모습도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이죠. 이런 날 것의 과정들이 쌓여 ‘크리에이터 본인의 캐릭터가 더 입체적이고 선명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과정형 콘텐츠에 유저들이 반응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Z세대의 주체적인 콘텐츠 소비’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콘텐츠를 소비할 때 제작자의 의도보다는 자신의 시각으로 콘텐츠를 해석하며 재미를 찾는 Z세대의 특성상, 결국 기대했던 ‘두바이 초콜릿’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날 것의 과정을 담은 영상 속에서 능동적으로 공감거리를 찾고 반응하는 것이죠.

 

3분기에 유행했던 동결건조 지구젤리 리뷰 영상 역시 유사한 사례입니다. 어떤 크리에이터들은 갑작스레 편의점에 찾아가 동결건조 젤리를 구입하고, 스튜디오가 아닌 차에서 각자 먹은 소감을 교환하기도 했죠. 여느 먹방처럼 어떻게 생긴 젤리인지, 단면이 어떤지 등 세세하게 분석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맛있네”, “나쁘지 않아” 정도의 소감을 교환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상에는 “OOO도 사서 먹어봐주세요”라는 식의 댓글이 약 400여 개나 달렸습니다.

 

이렇게 숏폼 트라이브는 일상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유용한 정보를 담으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뭔가를 하는 김에 영상을 찍는다’는 태도에 가깝죠. 이를 소비하는 팬 역시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며 크리에이터의 일상에 댓글과 좋아요 등으로 적극적으로 관여합니다.

“공개적으로 올리진 않지만, 친구와 재미있는 일을 겪었을 때 영상을 찍는 편이에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을 때 음악에 맞춰서 카메라 무빙을 치기도 하고, 닮은 꼴을 찾아주는 필터를 적용해 영상을 찍기도 하죠. 가끔 노래 커버도 하고요.” – 손민교, 21세

이재흔 연구원은 이렇게 일상이 담긴 숏폼이 유행하는 현상을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특징’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콘텐츠 하나를 만들 때도 각 잡힌 기획을 바탕으로 ‘잘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골라 보정과 편집을 거쳐 업로드했지만, 최근의 Z세대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콘텐츠를 더 힙하다고 여기고, 자신을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김지현 한양대학교 교수 역시 숏폼과 같은 이용자 생성 콘텐츠(UGC)의 확산이 유례 없는 정보 과부화, 콘텐츠 포화의 시대를 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소재를 다루는 사례들이 숏폼의 주류/메인스트림 트렌드가 되어 왔지만, 이에 피로감을 느낀 유저들은 오히려 개인 이용자들의 일상에서 찰나의 순간, 평범한 모습을 비추는 기획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최근 여러 플랫폼에서 ‘포토덤프’(흔들리고 초점이 어긋난 수십, 수백장의 B컷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는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숏폼 플랫폼에서도 이런 자연스러운 날 것의 영상이 Z세대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기획과 편집이 필요한, ‘가공’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긴 호흡의 롱폼 영상에서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묻어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콘텐츠에 자아를 담아

숏폼 트라이브의 두 번째 특징은 본인의 경험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콘텐츠에 투영한다는 점입니다. Z세대는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자신의 개성과 경험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죠.

 

올해 3분기에 유행한 이영지의 #smallgirl 챌린지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Small Girl>은 “작고 아담한 여자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그런 모습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 노래인데요. 이 노래 가사에 공감한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들은 틱톡에서 ‘키 167cm이 부르는 <Small Girl>’, ‘키 큰 여자 썰푼다’, ‘내 이야기 그 자체’ 등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숏폼을 만들었습니다. 노래 가사의 내용을 자신의 일상과 연결해 콘텐츠를 만드는 이러한 현상은, Z세대가 이런 숏폼 챌린지를 단순한 놀이 뿐 아니라, 본인을 드러내는 자아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최근 틱톡에서 유행 중인 #노래추천 숏폼 역시 Z세대가 자신의 취향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이들은 특별한 설명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배경으로 깔고 노래에 맞춰 흘러가는 가사를 영상으로 담거나, 아예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노래와 함께 가사를 찍어 업로드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듣고 있는 노래를 SNS에 자주 업로드하는 편이에요. 어떤 장르의 어떤 가수의 노래를 올리느냐가, 남들에게 보이는 제 모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제가 노래를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제 아이덴티티 혹은 추구미를 표현하기 위해서죠.” – 정유찬, 21세

이전 세대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현재 감정을 SNS에 이미지 혹은 텍스트로 업로드했다면, 현재의 숏폼 트라이브는 아예 틱톡과 같은 플랫폼에 숏폼으로 이를 업로드하는 것이죠. 콘텐츠가 아닌, 그저 일상이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이들은 숏폼 영상을 활용합니다.

 

김지현 교수는 이렇게 본인의 취향을 숏폼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한국 사회의 경쟁적인 소비 문화, 이를테면 ‘명품’과 같은 사치재 소비가 일상적인 행위가 되어 버린 SNS상에서의 과시 행위에 반하는 문화적 실천으로 해석합니다. 즉, 경쟁적인 소비문화로부터 거리를 두고, 의미와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챌린지 혹은 일상을 창작 행위로 재현함으로써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정신적 치유(힐링)를 얻기도 하고요.

 

 

노래 추천 영상만을 업로드하는 크리에이터의 틱톡 계정

 

‘노래 추천’을 하는 행위에 대해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원하는 것을 짧고 빠르게 소화하고, 또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미디어로서 틱톡의 영향력’을 방증하는 현상이라고 해석합니다. 찰나의 감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음악이야말로 ‘만능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숏폼에서 가장 활발하게 공유될 수 있는 콘텐츠(장르)니까요.

 

숏폼으로 ‘놀거리’를 발굴하는 세대

Z세대는 숏폼 플랫폼을 단순한 SNS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만 활용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숏폼은 놀이의 장이자,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종의 ‘놀이터’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은 틱톡에서 발견한 요소들을 더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소비하며,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죠.

 

#삐끼삐끼춤 챌린지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 챌린지는 기아 타이거즈의 치어리더 이주은이 화장을 고치던 중 응원단상에 올라 춤을 추던 영상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존의 챌린지가 단순히 춤 동작을 따라 하는 방식이었다면, #삐끼삐끼춤 챌린지는 ‘화장을 고치던’ 장면까지도 포함해 따라 한다는 점이 이색적이죠. Z세대는 이렇게 기존의 틀을 넘어서면서 놀이의 요소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갑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틱톡에서 유행 중인 #폴라레티 밈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얼려먹는 간식인 폴라레티는 원래 2014년쯤 국내에서 CM송으로 잠깐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 틱톡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다시 발굴되며 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릴 때 정말 자주 먹었어요. 학창 시절 자주 먹던 아이스크림이라는 추억, 그리고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그 시절 광고(?) 스타일 때문에 다시 회자되는 것 같아요. 중독적인 멜로디 때문에 수능금지곡으로 바이럴되기도 했고요. 특히 재미있었던 포인트는 ‘텍대(텍스트 대치)’를 활용해 킹받는 댓글을 쓰는 거였어요. 요상한 이모티콘과 함께 맥락없이 폴라레티를 남발하는 감성이 재미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포포포포 폴라레티 얼려먹는 폴라레티 진짜 시원하고 상큼하죠)” – 김소리, 24세

이처럼 유저들은 댓글에 폴라레티 CM송 가사를 적거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으며 이를 재미있는 놀이로 소비하기도 합니다. Z세대는 이렇게 잊힌 콘텐츠나 트렌드를 다시금 발굴해 놀이 요소로 재탄생시키는 데 능숙합니다.

 

 

폴라레티 틱톡 영상에 ‘텍대’ 댓글을 달며 노는 유저들의 모습

 

#랄랄부캐3종 커버 역시 숏폼 트라이브의 놀이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크리에이터 ‘랄랄’이 연기하는 세 가지 부캐를 따라하는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춤을 따라하던 기존 챌린지가 이제는 밈적인 요소까지 흡수하며 ‘커버’라는 새로운 놀이 영역으로 확장된 것을 의미하죠. 심지어 세 명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별도의 화장과 분장까지 필요한 챌린지임에도, 틱톡 유저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왕 챌린지를 찍을 거면 유머러스한 챌린지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랄랄부캐 세 명은 모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캐릭터기도 하고, 친구와의 케미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챌린지예요. 찍고 나서 업로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아마 찐친들만 모여 있는 비공개 계정에는 업로드 해 볼 수도 있겠네요…ㅎㅎ)” – 김소리(24)

올해 하반기에 여러 플랫폼을 달군 <미룬이 챌린지> 도 재미있는 사례입니다. 원래는 크리에이터 이제규의 신곡에 맞춰 율동을 하는 단순한 댄스 챌린지였는데요. 어느 행사장에서 이제규가 노래를 부르며 막춤을 추다 관객들의 무반응으로 굴욕을 당한 이후, 챌린지도 이 막춤으로 마무리하는 게 국룰(?)이 되었죠. 이 역시 놀거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는 숏폼 트라이브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단순한 패러디를 넘어, 그 안에서 새로운 유머와 재미를 창출하고 이를 숏폼 형식으로 확장시키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올해 상반기 많은 챌린지를 양산해냈던 이제규의 <미룬이>

 

이렇게 음원을 기반으로 한 숏폼 콘텐츠가 주력인 틱톡 플랫폼 특성상, 플랫폼 내에서 인기를 끄는 음원 차트가 따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지점입니다. 이제규의 <미룬이>를 비롯해, <마라탕후루>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서이브의 신곡 <쿵쿵따>, 그리고 에스파의 윈터가 부른 극장판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 OST <처음 본 순간> 역시 틱톡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런 음원들은 방송 3사를 비롯한 멜론, 바이브 등 주요 메이저 음원 서비스와 달리 숏폼 플랫폼 내에서 훨씬 크게 주목받고, 또 자주 소비되었는데요.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원곡이 가진 맥락 없이, 미분된 한 부분만으로도 재미있는 요소, 뭉클한 감성을 순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곡들이 숏폼에서 별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멜로디나 가사 내용의 기승전결이 뚜렷한 ‘감상형’ 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는 타 음원 플랫폼과는 궤를 달리 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숏폼 트라이브는 틱톡과 같은 플랫폼을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놀거리와 놀이 문화를 창조해내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새로운 놀이 트렌드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여타 플랫폼과는 다른 성격의 트렌드가 주류를 이루기도 하죠.

 

 

 

아직까지는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롱폼 플랫폼에서 추출한 클립으로 숏폼을 만듭니다. 틱톡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하다(@hada.kr)’의 경우는 좀 다른데요. 본인의 특기를 살린 감각적인 숏폼부터, 단순하고 친근한 구성의 숏폼까지 ‘숏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영상을 만드는 크리에이터죠.

 

일상을 습관처럼 기록하고 숏폼으로 본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숏폼 트라이브에 가장 적합한 크리에이터 하다를 만났습니다. 감각적이면서도 친근한 영상으로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그들과 적극 소통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다양한 기획과 연출로 여러 소재를 다루고 계신데요. 하다님은 본인을 어떤 크리에이터로  정의하고 계신가요?

예전에는 경계 없는, 자유로운 크리에이터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정체성을 잡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요즘의 저는 일상을 숏필름으로 담아내는, ‘삶을 영화처럼 기록하는 크리에이터’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원래는 패션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패션과는 전혀 무관한 숏폼 크리에이터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패션을 좋아하긴 했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도피하다시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다가, 여행 미디어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고요.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고민을 하던 중 틱톡이라는 플랫폼을 발견했는데, ‘내가 너무 잘 할 수 있겠다’ 싶은 거예요. 그렇게 숏폼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영상 제작자 출신으로서 롱폼이 아닌 숏폼 콘텐츠에 집중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주력 플랫폼으로 틱톡을 활용하시는 이유도요.

성격이 급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정말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다양한 연출로 다양한 스토리를 풀고 싶은데, 롱폼은 한 가지 주제를 길고 깊게 풀어내는 데 적합하잖아요. 저는 제가 가진 많은 이야기를,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고 싶어서 숏폼을 주력으로 삼았어요.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전공자답게(?) 패션 콘텐츠를 다루셨더라고요. 그러다 점점 여행을 다루는 콘텐츠의 비중이 높아졌어요. 취향의 변화일까요?

기록하는 걸 좋아해요. 여행은 사진과 영상이 전부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추억은 미화된다”는 게 뭔지 알게 돼요. 싸우고 힘들었던 기억은 생각나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더 많이 기록하고 싶고, 여행을 다룬 콘텐츠를 더 많이 만들게 된 것 같아요.

 

파리 올림픽을 직관하러 간 것도 숏폼 영상으로 제작하셨잖아요. 근데 저는 이런 큰 경험을 숏폼 다섯 개로 제작하는 데 그칠 수 있나 싶었어요. 정말 많은 클립을 만드셨을 거 같았거든요.

찍어 온 클립이 정말 많아요.(웃음) 이건 제 고집 같은 건데 시기가 조금이라도 지났거나, 뾰족하지 않은 건 잘 안 내려고 해요. 화살을 과녁 한 가운데에만 맞춰서 쏘려고 하는 거죠. 트렌드에 맞춰서 내는 건 좋지만, 억지로 만족하지 못할 영상을 내놓진 않으려 해요.

 

어느덧 240만 팔로워를 보유한, 성공한 크리에이터잖아요. 하다님이 숏폼 크리에이터 가운데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진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틱톡에서 유행하는 음원을 바로바로 활용할 수 있는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앞에서 클립이 굉장히 많다고 했잖아요? 제가 또 틱톡 음원을 정말 부지런히 듣거든요. 새롭게 찾아온 유행도 유행이지만, 이미 옛날에 유행한 음원이 다시 뜨기도 해요. 그런 걸 빠르게 캐치해서 영상을 적절히 배합하는 편이죠.

 

 

<미룬이> 영상도 되게 독특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남들처럼 챌린지가 아닌 일상 관찰 느낌으로 연출하신 부분이요.

맞아요. 같은 유행도 조금씩 다른 포인트를 주려고 해요. 사람이 집에 갇혀(?) 있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그런 연습이 자연스럽게 됐어요. <미룬이> 영상도 그래요. 나는 춤을 잘 못 추는데, 노래에 담긴 공감 요소를 살려 보면 어떨까? 대신 CCTV 구도로 마치 사찰당하는 느낌으로 연출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서 만든 영상이에요.

 

1020 세대가 본인의 일상을 숏폼으로 기록하는 게 최근의 트렌드인 것 같아요. 크리에이터로서 이런 부분을 캐치하고 계신가요? 이런 트렌드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시는지.

10대, 혹은 20대의 감성으로 일상을 담아낸 콘텐츠가 또래의 공감을 많이 얻어내잖아요. 그런 콘텐츠를 보면서 이들이 반응하는 이유를 살펴봐요. 그 이유는 ‘퀄리티’가 아니더라고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보며 공감하는 거죠. 제 초기 숏폼 전략은 ‘고퀄리티 영상 제작’ 이었지만, 크리에이터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는 약점도 안고 있죠.

그래서 계정을 하나 더 팠어요. 10대들이 더 친숙하게 느낄 만한 영상 위주로 업로드하는 ‘안하다(anhada.kr)’라는 계정이요. 여기서는 주로 10대들에게 친숙한 스마트폰 필터나 스티커 등을 활용한 영상을 올리고 있어요. 어떤 친구들은 “언니 저는 이 계정이 더 좋아요”라고 하더라고요.

 

 

끝으로 하다님은 앞으로 어떤 도전을 더 하실 계획인지, 앞으로 어떤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건 안 하고 싶다”는 청개구리 같은 취향과, “트렌드를 캐치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자주 고민을 해요. 하지만 언제나 밸런스를 찾으려 하죠.

최근에는 혼자서 영상을 만드는 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성격상 혼자 하는 게 편하지만, 만들어 보고 싶은 콘텐츠가 너무 많아요. 퀄리티 있는 영화도 여전히 만들고 싶고, CG 전문 인력과 함께 영상을 제작해 보고 싶기도 해요. 앞으로 다양하게 뻗어나갈 제 모습을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목할 만한 크리에이터

 

코알라짱(https://www.tiktok.com/@y_ssuh_) – 팔로워 660K / 좋아요 9.6M

틱톡 크리에이터 ‘코알라짱’은 독특한 유머 감각을 녹인 쇼츠 영상들로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에이터입니다. 일상에서의 재미난 순간이나 유머스러운 상황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팬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한명쯤 있을 것 같은 여사친 콘셉트로 숏폼을 제작하고 있죠. 특유의 어색한 몸동작과 귀여운 리액션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봐야 할 영상 – 교정한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양치질 필수 음식

 

 

밍들(https://www.tiktok.com/@mingddora2) – 팔로워 1.3M / 좋아요 40.6M

숏폼으로 브이로그를 만드는, 이른바 ‘숏로그’를 업로드하는 크리에이터입니다. 주력 취미인 바이크를 소재로 한 일상 영상부터 최근 구매한 제품을 가볍게 리뷰하는 영상, 데이트 혹은 핫플 방문 영상 등 본인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하고 다양한 사건을 숏폼으로 담아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반드시 봐야 할 영상 – 봉사는 뭐든 뿌듯해(유기견 보호소 산책봉사)

 

 

오닝(https://www.tiktok.com/@oningoning) – 팔로워 1.2M / 좋아요 36.2M

귀여운 아이템과 독특한 물건들을 주제로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입니다. 장난감, 신기한 장소, 재미있는 소품 등을 활용한 영상을 주로 제작합니다. 타투 스티커를 직접 붙여 보고, 조카와 함께 하츄핑을 관람하고 난 후기를 영상을 찍는 등 일상 속 체험을 기반으로 리뷰 영상을 제작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반드시 봐야 할 영상 – 요즘 핫한 일본여행 쇼핑 필수템

 


 

지금까지 알아본 ‘숏폼 트라이브’에 대한 인사이트는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숏폼 트라이브(Short-form Tribe) – 일상에서 발견한 재미를 숏폼으로 담아내고, 나아가 소통과 놀이의 수단으로 숏폼을 활용하는 세대를 이르는 말

 

1) 일상의 기록이 콘텐츠로

 

·각잡은 기획, 멋들어진 촬영과 편집 대신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담아낸 숏폼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성향이 있음.

·주체적인 콘텐츠 소비 성향을 가진 세대는, 결과보다 과정의 서사를 적극 소비하며 그 안에서 공감할 요소를 찾아냄.

 

2) 콘텐츠에 자아를 담아

 

·단순히 유행을 따르려 하지 않고 본인의 경험과 취향을 숏폼에 적극적으로 담아내며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소비함.

·음악이 콘텐츠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틱톡 특성상, 본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음악 추천’ 영상 역시 생산자들 사이에서 유행.

 

3) 숏폼으로 ‘놀거리’를 발굴하는 세대

 

·짤막한 서사가 있는 <삐끼삐끼춤> 같은 챌린지 뿐 아니라 <랄랄부캐 3종 커버> 처럼, 다소 수고로운 챌린지까지 놀이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음.

·<미룬이>, <쿵쿵따> 처럼 틱톡 내에서 인기인 ‘숏폼 최적화’ 음원들이 기존 플랫폼의 음원 차트와 다른, 별도의 트렌드를 형성해 냄.

 

3분기의 트렌드 키워드로 다룬 ‘숏폼 트라이브’는, 2024년 3분기에 가장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숏폼 내 흐름이면서, 동시에 ‘Z세대’라 불리는 요즘 1020 세대들의 플랫폼 소비 방식을 가장 잘 표현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꼽은 2024년 키워드 트라이브십(Tribeship)은, 초개인화시대에 관심사, 취향만 맞으면 언제든 빠르게 연결되어 작은 커뮤니티, 트라이브를 형성하고 이 트라이브를 바탕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Z세대의 모습을 다룬 키워드입니다. 숏폼은 이제 콘텐츠를 넘어 세분화된 지향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트라이브’, 커뮤니티가 된 것 같습니다. 숏폼 트라이브(Short-form Tribe)는 유연한 숏폼 생태계에서 관심사로 연결되는 트라이브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트렌드를 확산하거나 영향력을 만들어가는 유저들의 모습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 이재흔 20대 연구소 연구원

숏폼 트라이브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플랫폼 틱톡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트렌드가 가장 빠르게 생성되고 소비되는 곳입니다. 2010년대 이후 생겨난 레거시 플랫폼이 지금까지 줄곧 트렌드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것처럼, 이제는 숏폼이 콘텐츠 시장의 주력 모델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몇 년 간은 틱톡으로 숏폼 트라이브가 만들어 내는 트렌드를 꾸준히 팔로업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트렌드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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