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서랍에 넣어두고 떠나기로 한다.
메신저 상태 메시지는 ‘연락 X’로 바꿔둔다.
숙소나 투어 예약은 현지에서 하기로 한다.
계획도 미리 세워둘 필요 없다.
준비된 여행은 그저 준수하게 흘러가지만,
미비된 여행은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니까.
스마트폰을 두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건 릴스를 하나 보고 나서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 새해맞이 볼드랍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2000년부터 2020년까지 타임라인으로 보여주는 짧은 스케치 영상이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행복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부둥켜 안으며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서서히 사람들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지면서 분위기는 달라진다. 마지막엔 모든 사람들이 정신없이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하느라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상은 끝난다.
“아, 한 뼘 직사각형이 여행을 다 망치는구나!”
스마트폰에 매몰된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당근에서 쓸 만한 mp3 플레이어와 필름 카메라, 오래된 넷북을 샀다. 몇 해는 빛을 못 보던 서랍 속 유선 이어폰도 하나 꺼냈다. 가이드북은 서점에서 현지 지도가 실한 녀석과 맛집에 충실한 녀석으로 두 권 구매했다. 동네 문방구에서 파일 몇 장과 수첩을 하나 샀다. 여권과 전자항공권은 몇 장 프린트해 파일에 챙겨 뒀다. 수첩엔 미리 알아둔 현지 대사관, 숙박업체, 여행사 주소와 전화번호, 가족과 지인 비상연락망을 빼곡히 적어뒀다.
다음으로 챙길 건…
1. 공용 PC가 있는 숙소를 알아둔다.
아무리 스마트폰 없는 여행이라도, 일과가 끝난 후엔 치팅 타임도 필요하다. 숙소는 공용 PC가 있는 도미토리로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에 항상 공용 PC가 있어 교통편을 예약하거나 여행지를 검색하는 데 쓰곤 했는데, 지금은 드물어서 미리 알아보고 떠나는 게 좋다. 아니면 간신히 인터넷만 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그 시절’ 넷북을 중고로 구매해서 들고 가는 것도 추천한다.
숙소에 돌아와서 가족과 연락을 취하고, 다음 날 계획을 세우다 보면 다시 찾은 문명의 이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과하면 안 된다는 것. 보상심리로 저녁 내내 인터넷만 붙잡고 있다가 여행지의 밤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2. 나침반은 의외로 많은 도움이 된다.
대항해 시대도 아니고 나침반? 농담이 아니다. 구글 지도 없이 여행하는 데는 생각보다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미리 챙겨간 종이 지도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구글 지도에서 나침반 모양을 누르면 내 위치와 방향을 바로 알 수 있는데, 종이 지도는 그렇게 친절하지 못하다.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도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이럴 때 나침반이 있으면 내가 어딜 향해 가는지 파악할 수 있어 버스를 잘못 타거나 딴길로 새도 금방 알 수 있다. 종이 지도에서 내 위치를 찾기 힘들 때는 랜드마크 위주로 위치를 파악해두는 게 좋다. 아니면 나처럼 지나가는 행인 하나하나 붙잡고 지도 내밀면서 “Where am I?”라고 물으면서 다니는 수밖에. 퇴화된 스몰토크 스킬도 향상할 수 있다.
3. 크고 편안한 배낭은 필수다.
캐리어는 팬트리 안에 넣어두고 먼지 쌓인 배낭을 꺼내자. 어플 없이 떠나는 여행은 기동성이 생명이다. 길을 잃을 때도 부지기수, 묵을 만한 숙소를 찾으려고 반나절을 걸어야 할 수도 있는데, 끌고 다녀야 하는 캐리어는 버겁다.
특히 한 손엔 지도, 한 손엔 가이드북을 들고 목에는 카메라까지 걸고 다녀야 하는 ‘레트로 여행’에선 두 손이 자유로워야 헤매는 시간도 준다. 등에는 거북이 등딱지처럼 커다란 배낭을 매고, 조그마한 보조 백팩을 앞으로 메고 다니면 귀여워 보이는 건 덤.
4. 여행사는 세 군데 이상 들른다.
스마트폰 어플로 모든 걸 처리하는 지금은 많은 곳이 망해 없어졌지만, 여행자 거리엔 현장에서 투어 상품을 예약하거나 교통편을 예매할 수 있는 작은 여행사가 곳곳에 있다. 혹은, 숙소에서도 액티비티 예약을 받는 곳도 많다. 스마트폰 어플이 없으면 현장에서 결정하고 결제해야 하는데, 가격비교가 되지 않아 소위 ‘눈탱이’ 맞을 위험이 있다.
여행사는 발품 팔아 세 군데 이상 들르길 권장한다. 초반에 좀 고생하다 보면 나중엔 여행사에서 결제하고 나오는 다른 여행자 표정만 봐도 눈두덩이에 퍼런 멍이 들지 말지 대충 알 수 있다. 참고로 스마트폰 없는 여행을 선택했다면 높은 확률로 해외 결제 카드는 집에 두고 달러를 두둑하게 들고 나왔을 확률이 높은데, 환전소의 경우엔 환율 좋은 곳을 찾되 한번에 많은 금액은 환전하지 말자. 더 잘 쳐주는 환전소가 바로 다음에 나타난다는 법칙이 있다.
5. 그럼에도 음악과 사진은 빠질 수 없다.
mp3 플레이어는 512MB 용량 정도 되는 옛날 물건 하나 구해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던 노래를 꾸역꾸역 저장해 둔다. 너무 많은 음악은 필요 없다. 여행 중엔 듣던 노래가 더 반갑다. 카메라는 줌이 되지 않는 28mm 화각 언저리 단렌즈 필름 카메라에 36매 필름 서너 개면 충분하다. 줌은 피사체에 다가갈 기회를 빼앗아 돌아와서 현상해 보면 생생한 현장감이 남지 않는다. mp3와 필름 카메라 둘 합쳐 중고로 10만원 내외면 충분하다.
차곡차곡 정성껏 저장한 ‘나의’ 선곡은 ****‘알고리즘’의 스트리밍보다 공명이 깊다. 비일상의 공간에서 일상의 소리가 들려오면 그 자체로 눈물이 난다. 모니터로 바로 리뷰할 수 없는 필름 사진은 이방인으로서 존재하는 이 순간을 더없이 긴하게 만든다. 여행에서 돌아 한참 뒤 필름을 현상하고 그날의 사진을 다시 보노라면, 하늬바람 따라 불어오는 먼 땅의 냄새가 코를 시큰하게 간질일 테다.
삽질도 여행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 했는데, 스마트폰 없이 여행하면서 고생하다 보면 정말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무슨 낭만을 찾겠다고 이러고 있지?”, ”내 돈 내고 해외 나와서 이 고생이 맞아?” 수많은 생각이 들 테지만, 젊은 여행자의 좌충우돌 우여곡절 시행착오는 여정을 더욱 어여쁘게 만든다.
인도 바라나시에 스마트폰 없이 여행할 때였다. 기차에서 내려 릭샤를 탄 뒤 미리 알아둔 인기 좋은 도미토리로 가달라고 했는데, 한참 뒤에 도착한 곳은 외진 데 누추한 공간이었다. 알고 보니 릭샤 왈라가 데려간 곳은 이름만 같은 ‘짝퉁’이었고, 집주인에게 커미션을 받아 나에게 사기를 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이미 일주일치 숙박료를 계산한 뒤.
어쩔 도리 없이 메인 여행자 거리가 있는 곳까지 30여분을 골목골목 걸어다녔는데, 이제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골목서 만났던 사람들 뿐이다. 선뜻 화장터로 데려가 가이드를 자처하던 오지랖 넓은 아저씨와 밤중에 오토바이 타고 따라와 하시시를 권하던 불량 청소년들, 겐지스강 배 태워준다면서 나한테 노 젓게 하던 노인네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이를 끓이던 소녀까지. 모 많은 여행을 둥글게 연마한 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이 없어 생긴 삽질에서 나왔다. 삽질은 빛나는 보석을 캐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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