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비타민 상자에 토끼를 담아 팔에 힘을 꽉 주고 살금살금 걸어 집에 데리 고 왔다.

조그만 비타민 상자에 토끼를 담아 팔에 힘을 꽉 주고 살금살금 걸어 집에 데리고 왔다.

 

토끼가 생겼다.

 

휴학이 나을까 자퇴가 나을까 하는 고민으로 가득 채운 3월을 보내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하면 우주를 알 수 있는가를 고민하던 4월 중순이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세계와의 갈등이고 가볍게 말하면 ‘학교다니기싫어병’이라 할 수 있는, 말끔히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강렬한 그 무언가에 휩쓸려 회의감, 무기력, 우울증에 푹 절어 있었다. 터덜터덜 길을 걷다가 펫숍에서 내놓은 케이지 안의 토끼들을 봤다.

 

아, 귀엽다. 철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봤더니 하얀 토끼 한 마리가 내 손가락을 핥았다. 아, 좋다. 토끼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토끼 수명이 몇 년이지? 길면 8년. 그동안 나 외국 나갈 계획 없나? 딱히 없음. 결혼 계획은? 없음. 돈은? 설마 얘 풀 값이 없어서 굶길까. “너 나랑 살래?” 하니콧구멍을 벌름벌름하며 새까만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조그만 비타민 상자에 토끼를 담아 팔에 힘을 꽉 주고 살금살금 걸어 집에 데리고 왔다. 토끼는 눈이 정말 까맸다. 눈이 크고 얼굴이 하얀 일본인 친구 마리코가 생각났다. 그래서 토끼는 마리코가 됐다. 태어난 지 겨우 한 달이 된 마리코는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다. 손바닥 하나만큼도 안 되는 작은 몸통에 부슬부슬 덮여 있는 짧은 털은 크림색이고, 머리 위로 쫑긋 솟은 짧은 귀와 보일 듯 말 듯한 꼬리는 아주 연한 커피색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 마리코가 연분홍색 코를 쉴 새 없이 벌름거리고, 동글동글한 엉덩이로 쫑쫑 뛰어다니고, 연분홍색 혀로 자기 몸을 열심히 핥는 모습을 신나게 구경하다가 잤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뒹구느라 굶다가도 마리코 밥을 챙겨주려고 일어난 김에 뭐라도 집어 먹게 됐고, 씻기 귀찮아 꼬질꼬질하다가도 마리코 화장실을치워준다며 화장실에 간 김에 양치라도 하게 됐다. 우울감으로 사회성이 급격히 떨어져 사람들과 가벼운 잡담을 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마리코 사진을 자랑하면서 말 한마디라도 더하고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서서히 마리코는 무기력증에 침잠해 있던 나를 수면 가까이로 띄워 올려줬다.

 

마리코가 엎드려 있는 내 등에 스스럼없이 올라타고, 나는 마리코에게 왜 오줌을 아무데나 싸느냐고 짜증을 내게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마리코가 동생 방문에 발이 끼어 발가락 두 개가 부러졌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한두 달쯤 깁스를 하고 있으면 낫는다고 했다. 눈물을 닦고 마음을 추스르고 병원비를 계산하려고 보니 엑스레이, 주사, 약값, 처치 비용까지 8만원이 나왔다. 아, 눈물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 후로도 일주일에 한 번 붕대를 새로 감고 약을 지어올 때마다 5만원씩 나온다는 것인데, 개털 신세에 이는 보통 위기 상황이 아니었다. “아… 선생님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제가 요즘 태어나서 제일 가난해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더니 수의사가 말했다. “저도 그래요.” 옆에 서 있던 간호사도 말했다. “저도 그래요.” 하는 수 없이 또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과제와 팀플이 괴물처럼 쌓여 있고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알바를 구하는 것은무리여서 중고나라에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다. 작년에 추석 선물로 들어온 보디샤워 세트도 팔고 상품권도 팔고 금팔찌도 팔았다.아파트 복도에 버려져 있는 골프 매트와 캠핑용 테이블도 주워다가 팔았다. 토끼 카페 회원이 안 먹는 건초를 나눠준다고 해서 청량리까지 가서 건초 포대 4kg을 낑낑대고 안고 오며 젖동냥하러 다니는 마음이 이런 걸까 싶었다. 그 덕에 마리코는 병원도 다니고 약도 잘 먹어서 이제 거의 다 나았고, 나는 그거면 족하다. 내 자신 하나 책임지는 것도 버거워하던 내가 감히 또 다른 존재를 책임지겠다고 이렇게 애를 쓰고 있다. 혼자일 때는 돈이 없으면 안 먹고 안 쓰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고, 또 언제 마리코가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이 생길지 모르니 돈도 좀 열심히 벌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적어도 마리코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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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이는?
마리코, 나랑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자.

 

Freelancer 이단이 spot0128@hanmail.net

 

Ii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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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고나 문의는 kikiki@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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