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아끼는 동생 하나가 취업을 했다.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한 대기업이었고, 운 좋게도 본인이 원하는 직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취업 준비 기간은 반년 정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아이가 얼마나 불안에 떨며 취업을 준비해 왔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행여나 이미 연약해진 마음이 상할까봐 제대로된 위로도 응원도 못 한 채 곁을 맴돌며 전전긍긍하기만 했다.
수고했다며 축배를 들었다. 그 애는 아직 얼떨떨한 얼굴로, 그러나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다. 기쁘다기보단 안심이 된다고 했다. 나는 그 표정이 귀여워서 다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했다. 너도 이제 직장이란 무덤에 들어오게 됐구나!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잔을 부딪히며 웃었던 게 고작 한 달 전이었는데. 아주 늦은 시간 퇴근을 한 그 애는 내 품에 안겨 왕, 울음을 터트렸다. “언니, 나 못 다니겠어. 더는 못 다니겠어.”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겠어서 나까지 눈가가 뜨거워졌다. “내가 없어져버린 것 같아….”
디자인을 전공했던 그 아이는, 디자인 스튜디오에 막내로 들어가거나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대기업의 길을 택했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과 다르게 현실적인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선택을 뿌듯해 하기도 했다. 모든 취준생들이 그러하듯, 그 애 역시 ‘취업 후’의 삶을 예쁘게 그리고 또 고쳐 그리며 탈락의 고배들을 꾸역꾸역 마셨다. 서류 심사에서, 1차 실무에서,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자기 자신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걸 버티게 한 힘은 오로지 취업 후의 미래를 꿈꾸는 데서 왔을 테고.
하지만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건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무척이나 방대한 양의 업무들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 들어가기만 했는데도 사회라는 아주 거대한 시스템 속에 완전히 붙들린 기분이 든다. 훌륭하게 일을 해내는 것은, 물론 나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내가 나로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지는 않는 것 같다. 전화 업무에 능숙해진다거나 사내 오피스 프로그램을 실수 없이 척척 해나가는 건 그렇지않은 것보다야 낫겠지만, 나라는 존재에 있어서는 과연 얼마나 유용할까?
직장인이 되고 나면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일을 하면서 보낸다.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는 건 출근을 위해서다. 점심시간이 되면 일단 뭐라도 좀 먹어 둬야 하는 것도 일을 하기 위해서다. 술도 마시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면서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 가야 하는 것도 역시, 회사 때문이다.
하루 치의 에너지를 몽땅 회사에 쏟아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온갖 질문들이 걸음마다 따라붙는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십 년 후, 오 년 후, 아니 다섯 달 후의 나에게 어떤 것을 남길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이걸까. 내 이상과 현실은 얼마나 동떨어져 있을까. 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 아니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걸까. 거꾸로 생각해서 나는 이 일이 아니면 안되는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괜찮은 걸까….
일을 하면서 ‘나’를 생각하는 것,‘나’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괴롭다. 마음속으로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조용히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도 싶다. 하지만 당장에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며, 심지어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느라 귀가하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그냥 속 편히, 일 속으로 쑤욱 들어가버리면 편하다. 무겁게 들고 있던 ‘나’에 대한 생각들을 짐처럼 내려놓아 버리면 된다. 밖에서 나를 끌어내려는 힘이 없으니, 일에 대해 몰입하기도 쉽고 성과도 더 잘 나올 수도 있다.
알베르 카뮈가 쓴 『시지프 신화』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오늘날의 노동자는 그 생애의 그날 그날을 똑같은 일에 종사하며 산다. 그 운명도 시지프에 못지않게 부조리하다. 그러나 운명은 오직 의식이 깨어 있는 드문 순간들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다.” 시지프(시지프스)는 신화 속 인물로, 신에게 맞섰다는 이유로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올리는 일을 평생 반복해야 하는 비극적인 삶을 산다.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바위를 밀어올리면 바위는 굴러 떨어지고, 그 바위를 다시 밀고…. 정말 매일 일터로 나가는 우리 삶과 비슷하다. 카뮈가 ‘오직 의식이 깨어 있는 드문 순간들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라고 한 것처럼, 삶을 들여다보고 나를 찾으려는 상태는 어쩌면 고통을 자처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뒷부분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시지프의 말 없는 기쁨은 송두리째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들은 침묵한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할 힘을 잃는다면 그 사람은 점점 투명해질지도 모른다. 안다. ‘자아’ 같은 걸 생각하고 얘기하는 게,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데 걸리적거리는 이물질처럼 느껴질 거란 걸. 자꾸만 쓸리고 상처를 만들어서 아프게 할 거란 걸.
책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마흔 살이 돼서야 주식 중개인이란 직업을 때려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도 마흔 살에 첫 작품을 썼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는 30대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죽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어 긴 휴가를 내고 노트북 하나와 함께 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들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들여다보며 괴로워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게 이물질을 뱉어내지 않은 조개만이 진주를 만들수 있다. 우유빛깔의 탄산칼슘 결정이 겹겹이 쌓이는 시간만큼 괴로움도 있겠지만, 그걸 품고 있어야 뭐라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끝나지 않는 질문들을 계속 안고 가려고 한다. 물론 맡은 일은 성실히 해내면서!
Editor in chief 전아론 aron@univ.me
Il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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