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무것도 모른다

1986년 출생. 우리는 동갑이다. 10년 전,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그는 연기에 입문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20대를 지나 이제는 30대의 문턱.

삶에 능숙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편안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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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니엘은 드라마 <황금 사과>의 단역으로 시작해 <그들이 사는 세상>의 양언니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2010년부터는 <시라노: 연애조작단>, <공모자들>, <악의 연대기> 같은 영화들도 찍었다. 그동안 나는 졸업을 하고 1년에 50여권, 총 250여 권의 잡지를 만들었다. 과연 우리 둘이 무슨 얘길 할 수 있을까? 그를 만나러 가면서 상상해봤다. 이번에 찍은 영화 <치외법권> 이야기, 배우 생활, 연기 철학, 근황 이야기…. 뻔한 어른들의 대화만 주고받게 될 것 같았다. 한숨이 났다.

 

그는 멋있게 보이려고 포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까불거리기도 하고 예쁘게 웃기도 했다.

 

 

이번에 찍은 영화 <치외법권>, 어땠어요?

이 영화는 찍으면서 메워야 할 부분이 좀 있었어요. 빵빵하고 탄탄한 작품을 여유 있게 찍으면 너무 좋겠지만은,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았어요. 찍으면서 힘들기도 했는데, 막상 만들어진 걸 보니까 소위 말해 골때리는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진지한 영화의 느낌도 있고, 주성치 영화 같은 B급 요소도 좀 섞여 있는, 퓨전 요리 같은 영화랄까요?

 

촬영장에 그렇게 애드리브가 난무했다고 하던데. 원래 대본대로 가는 스타일이시잖아요.

정말 무협영화처럼 애드리브가 날아다녔죠. 어쩌면 연기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촬영일 수도 있어요. 우왕좌왕했지만, 결국 느낌을 잘 살려 나온 것 같아요. 저는 창정이 형과 이런 현장을 경험해서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아요. 서로 많이 달라서 나의 문제점이나 틀을 스스로 볼 수 있더라고요. 깨지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그렇게 성장하면서 찍었던 것 같아요.

 

찍다보니 액션이 너무 강했죠? 저는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저도 놀랐어요. 제가 몸치의 황태자라, 혼자 연습도 많이 했어요. 집에서 발차기하다가 갈비뼈에 통증이 왔거든요? 담 걸린 줄 알고 침맞고 파스 붙이고 했는데, 나중에 병원 가보니까 금이 갔더라고요….

 

결국은 영화가 다루는 주제가 정의예요.

주제 의식이 좀 있죠. 주제가 무거워서 배우들은 일부러 생각 없이 연기했어요. 왜, 뉴스나 인터넷에서 보잖아요. 예를 들어 유 회장이 죽었다. 해골로 발견됐다. 근데 우리는 그게 실제로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갑자기 어떻게 하루아침에 해골로 발견돼? 이런 궁금증이 생기지만 풀 수 없고.

 

<치외법권> 속 주인공들은 내키는 대로 스타일이에요. 실제로도 그래요?

반반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술을 잘 안 먹어요. 그래서 술자리에 잘 안 가요. 그러니까 술로 친해지는 사람이 없어서 친분도 별로 넓지 않고요. 근데 막상 만나면 진짜 재미있게, 다신 못 볼 사람처럼 놀아요. 어차피 간 거면 그 분위기에 맞춰 즐거운 게 좋아요.

 

연기했던 ‘유민’ 캐릭터는 성충동 장애가 있다는 설정이죠. 혹시 그렇게 빠져들거나 중독된 게 있어요?

제가… 예전에 두유를 되게 좋아했어요! 마트에서 세일할 때 막 세 박스씩 사고 그랬거든요. 게임도 빠지면 끝장날 때까지 하고요. 그렇게 심할 정도로 중독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에요. 예전 여자친구한테 취미가 없다고 많이 혼났어요.(웃음) 나는 없고 싶어서 없냐고! 여행이라도 가래. 근데 여행 가려면 캐리어 사서 짐 싸고, 수속 밟고 한 시간 면세점에서 시간 때우고…. 싫다. 난 바로 가는 게 좋다. 그랬죠(웃음). 이걸 취미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엔 집에서 요리하는 게 재미있어요. TV 보면 요리 프로그램 많잖아요. 그거 보고 카레도 만들어보고, 스테이크도 구워보고.

 

의외네요. 요리 못 하실 것 같은데.

헤헤헤헤. 곧잘 하는 것 같아요. 손으로 하는 건 다 곧잘 했었어요.

 

 

 

하지만 내 예상이 틀렸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집에서 혼자 연습했다던 발차기 시늉을 하질 않나, 친분이 별로 없다고 실토하질 않나, 두유에 중독됐었다고 하질 않나…. 멋있게 보이려고 포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까불거리기도 하고 예쁘게 웃기도 했다. 덩달아 웃게 하는 순한 웃음이었다.

 

 

 

지금까지 연기한 것 중 어떤 작품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지붕 뚫고 하이킥>이 많이 기억에 남고, 개인적으로는 <동안미녀>도 열심히 했던 작품이에요. 그 당시에 연기가 하기 싫어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걸 다 쏟아부었죠.

 

왜요? 한창 잘 나갈 때였는데.

그냥 급변한 삶에 적응이 안 됐던 것 같아요. <하이킥>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잖아요. 데뷔하기 전에는 친구들이랑 밤새 놀다가 막차 끊기면 공원에서 신문지 깔고 자고, 지하철역에서 자고 그랬거든요(웃음). 그런 삶이 더는 안되는 거에요. 게다가 내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매력적인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고요. 여기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사춘기가 뒤늦게 온 것 같이 힘들었어요.

 

연예계에 몸담기로 했으면, 스타가 됐을 때를 짐작했을 텐데요.

알고는 있었는데요. 막상 현실로 닥치니까 내가 스타인 척하고, 멋있는 척 옷을 갖춰입고, 그런게 뭔가 별로인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자라는 직업이 나에게 안 맞는가보다, 내가 생각하는 연기자는 세상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었다보다. 그런 회의를 많이 느꼈어요. 사실 그건 지금도 반복되고 있고요. 연기 쪽 생활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건가. 자꾸 내 일에 대한 의심을 품게 돼요. 그러다 어떤 순간에는 작은 확신이 생기기도 하지만요.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일에 대한 의심은 품고 사는 것 같아요.

지금은 잔잔한 바다인 것 같지만, 가끔씩 그래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아, 내가 짱인 것 같아. 나는 막, 로버트 드니로도 무섭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아 나 왜 이렇게 못하지. 나는 연기를 하면 안 됐었어….’

 

그 기복은 어떻게 메워요?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 때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런 생각이었어요. 일단은 나한테 닥친 거니까. 이건 다 해내자. 마치 국밥 한 그릇 일단 다 먹어치우자. 이런 느낌.

 

원래 꿈은 뭐였어요?

없었어요. 우연찮게 연기를 하게 됐죠. 어느 순간 연기를 안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단 기분이 들었어요. 사실 저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제가 재능이 많았다면 연기를 안 했을 것같아요(웃음). 근데 뭐 자격증도 없고. 공부도 안 했고. 기술도 없고…. 그러다보니까 난 계속 이거 해야겠다. 나한테는 이거 밖에 여지가 없구나. 여기서 내가 살아남아야 되는구나.

 

유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스타일이네요. 하나의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맞아요. 누군가는 여행을 가도 계획을 세우잖아요. 그런걸 잘 못해요, 몸에 안 익어서. 계획을 잘 세우고 잘 꾸리고 사업하고 그런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계획 세운다고 다 이뤄지지도 않아요(웃음). 안 세우고 사는 것도 편해요.

헤헤. 맞아요. 항상 뭔가 마음대로 안되잖아요. 에라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하자. 그러다보니까 더 계획을 안 세우고, 이젠 정말 간단한 계획도 못 세우더라고요.

 

“지금 인생에서는 연기가 1순위”

 

그는 너무 솔직해서 투명할 정도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너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농담처럼 “어떤 게 진짜 최다니엘이에요?”하고 물었을 때 그는 담백하게 “모르겠어요, 저도.”라고 대답하며 살풋 웃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갔다. 아무 것도 다 안다고 말하는 법 없는 그를, 끝끝내 아무도 다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인생에서는 연기가 1순위이에요?

음. 지금은 그렇죠. 1순위, 내가 해야 될 거.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2순위, 3순위.

 

그럼 뭐가 1순위었어요? 

어디가서 이런 얘기하면 4차원 소리 듣는데… (잠시 침묵하다가)‘난 왜 태어났지?’ 이게 1순위었어요. 그게 확립이 안 되니까, 궁금하니까 뭐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거예요.

 

그 생각은 한 번 시작하면 끝나질 않죠.

끝이 없죠. 그걸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계속, 계속 했어요. 그래서 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흔들리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뒤늦게 신앙이 생기고 그런 부분이 해소가 좀 됐어요. 그럼 내가 할 수 있는게 감사한 거구나. 내가 잘해서가 아니고 신이 됐든 운이 됐든 무언가가 주어진 거구나. 나는 주어진 거에 열심히 하자. 다만 예전에는 그랬어요. ‘이 사람 속일 수 있다.’ 누군가가 날 본다는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다 지켜보는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어디에서나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실존적 고민을 하는 건 보통 사는 게 힘들어서 아닌가요. 다니엘씨는 예쁨 많이 받고 자랐을 것 같은데.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육사를 들어가셨었어요. 아버지가 46년생인가. 나이가 많으셔서 6.25를 겪은 세대이시거든요. 근데 그 시절에 친가 중 한 분이 북에 남게 됐대요. 찢어진 거죠. 그게 걸림돌이 된 모양이에요. 예전에는 연좌제가 심했다 그러더라고요. 결국 진급을 못 하고 나오시게 됐죠.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엔 다단계에 손을 대셔서….

 

진짜요?

군인, 뱃사람 이런 분들이 사회에서 좀…. (순진하시죠.) 예,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잖아요. 남자 혼자 남으면 그렇게 되기 쉬운것 같아요. 빚이 많이 생겨서 학교 다닐 때엔 지원도 많이 받았어요. 급식도 지원 받고 학비도 거의 다 지원받으며 다녔었고요. 대학도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못 다녔어요. 한 학기를 다니다… 돈이 없으니까. 대학 등록금 너무 비싸더라고요. 너무 비싸.

 

이렇게 고운데. 사람은 생긴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나봐요.

헤헤.

 

곧 군대 가신다는 게 진짜예요?

네. 아마 올해 안에 가겠죠. 현역일 수도 공익일 수도 있는데, 아직 날짜도 안 나와서요. 근데 저는 좋을 것 같아요. 충전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지금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됐으면 해요?

그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남을 텐데. 항상 받는 질문인데, 늘 답이 생각이 안 나요. 그냥 많은 배우 중 하나? 왜냐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할 수 없는 역할이 있거든요. 그건 다른 분들이 해주실 테니까요. 그냥, 제 역할을 잘 하고 싶어요.

 

 

 

Editor in chief 전아론 aron@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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