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큰 공원도 더운 날엔 그냥 집에 가고 싶구나’를 생각하며 인증샷 하나 남기지 않는 내가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이 큰 공원도 더운 날엔 그냥 집에 가고 싶구나’를 생각하며 인증샷 하나 남기지 않는 내가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나는 지금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이다. 3주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다. 특히 1주일간의 뉴욕은 남매끼리 가이드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설계해야 하는 배낭여행이었다. 모두가 부럽다고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뉴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굉장히 무감각했다. 수강신청을 하든 말든 학교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건달 학생 창업자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가족여행이라는 숭고한 목적에 합류해야 했다.

 

일정이라 한들 의욕적인 누나가 90%를 짜두었고 나는 말 그대로 몸만 비행기에 실었다. 그녀의 팔짱에는 언제나 『뉴욕 100배 즐기기』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친절하고 섬세하게 여행 스팟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그 책이 소개한 맛집은 맛이 있었고, 그들이 소개한 명소는 사진 찍을 때마다 그림 같았다.

 

그러나 마음은 서울에 두고 온 여행에 몸이 들뜨기는 어려운 법이다. 높은 빌딩 앞에서 터지는 탄성도 하루 이틀이지, 불가마 날씨에 몸은 빠르게 지쳤다. 하루는 국제적인 현대 미술관으로 향했다. 비싼 티켓을 끊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찾아간 나는 엄청난 인파를 뚫고 들어가 그를 마주했다. 그게 사본인지 진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참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울렁이는 밤하늘에는 내면의 표현을 좇아 미쳐가는 정신 속에서 피워낸 아름다움이 빛나고 있었다. 광기와 미, 그리고 주워 읽었던 화가의 인생 이야기를 나와 비교해 곱씹으며 수십억짜리 그림을 30여 분간 독차지했다. 양옆으로는 이 동양인 남성을 자신의 ‘고흐 인증’ 기념사진에 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며 카메라를 돌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진을 찍고난 그들은 민망한 표정을 짓고는, 총총걸음으로 다음 인기작을 향해 달아났다.

 

그들의 민망한 웃음은, 월가의 황소 옆에도 있었고 센트럴 파크의 마차 앞에도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람이 명소에서 웃음 짓는 사진을 남기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 반면 그곳들을 걸으며 ‘돈이나 엄청나게 벌고 싶다’거나, ‘이 큰 공원도 더운 날엔 그냥 집에 가고 싶구나’를 생각하며 인증샷 하나 남기지 않는 내가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그들은 비싼 여행을 ‘100배 즐기기’ 위해 이 더운 날씨에도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누이를 따라다니며 유명한 장소들에 발 도장을 찍기 위해 지구 반대편의 땡볕 아래서 쏘다닌 며칠들이 생각났다. ‘예쁘네. 근데 덥다’, ‘와 멋져. 근데 덥네’, ‘좋긴 한데 다리 아프고 그냥 숙소 가고 싶다’. 누군가는 한심하게 생각할 것이고, 뉴욕 입장에서는 자존심도 상하겠지만 미안하게도 나의 머릿속은 이 생각 뿐이었다.

 

여행의 막바지, 갈만한 곳도 다 가보았고 결국 나는 혼자 떨어져 카페에 앉았다. 창밖에는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사실 여행을 스스로 끝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다. “미국 갔다 왔다고? 느낀 게 뭐야?” 돌아가면 백이면 백 묻겠지? 하지만 나는 진실한 대답이었던 ’그냥 더웠다’라고 말하기는 좀 그러니 뉴욕의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링컨 센터의 오케스트라는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말할 것 같았다. 그 비싼 돈과 아까운 시간을 들였으니 100배 즐기지는 못할망정 뭐라도 보았다고 변명해야 그럴싸할 테니.

 

귓가에 외국어만이 들려오는 카페에 앉으니, 그때서야 서울에 두고 온 마음을 챙기기 시작한 것 같다. 배낭에는 나의 몸을 위한 옷들만이 가득해 나의 배낭여행은 그토록 지루했나 보다. 서울에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젊지만 어린 내가 있었고, 보고 싶은 사람과 미워했던 사람, 떠나간 사람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비행기를 16시간이나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야 비로소 나와 그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생각하고, 적고, 또 그냥 지워버리기도 했다.

 

라떼가 완전히 녹은 얼음에 희끄무르죽죽해질 때쯤이 되고 나서야, 나는 주린 배를 잡고 돌아갔다. 처음으로 덥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후련하다는 느낌으로 가득했다. 몸은 3주간이나 미국에 있었지만, 결국 나의 여행은 단 하루뿐이었나 보다. 오늘날 SNS와 기념품 속에 아름답게 기록된 수많은 배낭여행들을 보면서, 나의 여행을 생각해본다. 비싼 티켓을 사느라 한껏 마음 정리를 하는 기회조차 팔아버린 사람들이 가득 찬 지구의 반대편에서 나는 비싼 교훈을 기념으로 사 간다. 배낭은 있되 자유는 없는 여행이라면 그 돈으로 차라리 집에서 닭이나 시켜 먹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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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태웅은?
여행 덕에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문화팀 리포터

 

Reporter 공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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