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숫기가 없어 좋아하는 남자의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는 당신에게 처녀 귀신이 이런 제안을 한다면 어떨까. 책임지고 그를 네 남자로 만들어주겠다고. 그러니 몸만 빌려달라고. 봉선은 고민 끝에 처녀 귀신 순애의 빙의를 받아들인다. 어떤 면박에도 굴하지 않는 뻔뻔함과 붙임성으로 무장한 순애는 선우에게 끊임없이 들이대고, 봉선의 바람대로 선우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선우가 사랑하는 여자는 순애일까, 봉선일까? 순애가 떠난 뒤, 봉선은 순애만큼 씩씩해지려고 노력하고 순애가 좋아한다던 순대볶음을 잘 먹는 척하며 선우의 옆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그의 품에 안긴 가장 행복한 순간에 깨닫는다. 영원히 ‘순애 표 나봉선’으로 그의 곁에 있을 순 없다는걸.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순애’를 만들어낸다. 가진 것을 과장하기도 하고 없는 면을 꾸며내기도 하면서. 동시에 매력 없다고 느끼는 부분은 등 뒤로 슬쩍 숨긴다. 내가 밝아서 좋다는 그 사람에게 우울한 마음을 티 내기가 겁나고, 너그러운 척하느라 친구들과의 늦은 술자리를 허락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여주고 싶은 나’가 아닌 ‘진짜 나’를 드러내게 된다. “이런 나도 사랑해줘” 말하고 싶어진다.
봉선은 선우가 만난 ‘봉선’이 자기가 아니었단 걸 고백하면서,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비밀을 처음으로 털어놓는다. ‘순애’의 밝음에 가려 선우가 보지 못했던 진짜 나봉선의 이야기를. 그래서 이 장면은 세 사람의 러브라인을 정리하기 위한 용도를 넘어, 선우가 ‘진짜 봉선’을 만나는 여정의 첫머리처럼 보인다. 관계란, 감춰 왔던 어둡고 모난 부분마저 나누고 받아들일 때 여물어가는 것이니까. 문득 ‘오르막길’이란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Editor 김슬 dew@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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