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걷는 남자, 역사여행가 권기봉

오늘 아침 집앞에 피어있던 꽃의 색깔은? 서대문 옆 독립문의 진짜 의미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거리에서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찾는 역사여행가 권기봉씨를 만나고 왔다. 그의 눈을 통해서 보는 서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역사여행가 권기봉

역사여행가 권기봉

 

방송 기자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여행 작가가 되셨어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이었을 텐데, 전업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서른 살이 되면서 일을 그만뒀어요. 기자로 살다보면 주어진 사건을 취재해야 하는데요. 저는 제가 원하는 주제를 취재하고 싶었어요. 대학생때부터 우리 근현대사와 현장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 꾸준히 취재해 왔지요. 그 현장들은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방치되고 있었고 심지어 일부러 파괴하는 곳 조차 부지기수였어요. 그때 취재한 얘기들을 모은 첫 책이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예요.

 

서울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죠? 첫 책에는 서울 얘기가 담겨 있었고, 최근에 나온 『권기봉의 도시산책』에도 서울 이야기가 나와요. 고향은 충북 충주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서울을 좋아하게 됐어요?

어릴 때 월악산국립공원에 살았어요. 도시에서 들어오는 막차가 오후 5시면 끊기는 산골이었죠.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왔는데. 재밌는 게 정말 많더라고요. 만화경 같기도 하고 원더랜드 같기도 했어요. 청계천 공구 상가에는 60~70년대 영화에서 봤던 골목들이 있었고, 테헤란로에 가면 삐까뻔쩍한 건물들이 보였어요. 남산에 올랐을 때는 역사 드라마에서 봤던 ‘한양’이 가늠되는거예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신기한 공간이었어요.

 

대학에선 지구과학교육을 전공하셨죠. 이과 출신(!)으로서 ‘도시’와 ‘역사’에 관해 쓰게 된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저는 ‘유홍준 키즈’라고 할 수 있죠. 대학생 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같은 책을 보면서 답사했어요. 하지만 고색창연한 문화재들이 저와는 멀게 느껴지더라고요. 나와 부모와 친구들을 있게 한 직접적인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졌죠. 이를 계기로 구한말과 일제, 해방 이후의 역사 현장들을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건물들은 대부분 방치 상태였고 문화재란 인식 자체가 없었죠. 주로 철근콘크리트 건물인데다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한 곳들이라 일반 시민은 물론 정부나 지자체마저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심했거든요. 또 개발 이익을 노리고 건물들을 허물어 재개발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후속세대는 또 어떤 현장을 보고 우리의 삶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늦기 전에 알리고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쓰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글 가운데, ‘조선총독부를 굳이 없애야했느냐?’는 주제의 글을 읽었어요. 인터넷을 보니까 이에 반대하는 독자의견도 만만치 않던데요.

제가 썼던 내용은 엄밀히 말하면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었어요. 철거를 하든 안 하든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천천히 고민해보자는. 총독부 청사 철거는 당시 정권의 결정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정된 이벤있었지요. 하지만 일사천리로 철거는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로니컬한 게 총독부의 돔을 떼어다가 천안 독립기념관 야외전시장에 묻어놨어요. 거기 안내문이 하나 붙어있는데, ‘지하 5m 아래에 매장 전시함으로써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내용이예요. 과연 일제 잔재가 그렇게 주술적인 방식으로 청산될까요? 진정성 있는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서는 건물 하나 허무는 것보다는 사실 일제 때 잉태된 통제와 타율성 위주의 사법체계나 교육 구조, 사회시스템 등을 고민해야겠죠. 21세기에 건물을 없앰으로써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전근대적인 발상입니다.

 

역사를 따분하다고 생각하곤 하잖아요.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의 역사를 알면 삶이 정말 달라지나요?

연인을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듯이, 공간의 역사 그리고 지역과 개인 사이에도 상호작용이 있다고 생각해요.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게 달라져요. 인간의 역사라는 게 여러 고민과 선택들이 모여 쓰여지는 거잖아요. 즉 역사가 서려있는 현장, 공간의 역사를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맥락을 이해하려 해본다면, 아마도 나자신 그리고 우리 사회 앞에 놓여있는 여러 선택지들 가운데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역사 공간을 그저 과거의 기억이 서린 박제로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 현재의 맥락 속에서 고민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선물이에요.

 

 

작가님은 서울뿐 아니라 세계 곳곳을 여행하셨어요. EBS의 <세계테마기행>의 출연자로 부탄과 코르시카,레위니옹 등에도 다녀오셨고요. 대학생들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섣불리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전 예전부터 한 달에 70만원만 벌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면 덜 먹고 덜 입는다는 가정 아래 여행하고 글 쓰며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어요. 실제로 그러했고요. 일단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다보면 잘 할 수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돈도 들어옵니다. 남들 가는 길따라 가지 말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 취향을 찾고 계발하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Editor 조아라 ahrajo@univ.me

Photographer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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