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그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밖에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니까.

지금 당신이 그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밖에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니까.

 

1년 전이었다. 퇴근 시간, 차는 마포대교 위에 갇혀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마감 기한을 며칠씩 넘긴 원고들이 나를, 며칠 밤을 새워도 못 마칠 작업들이 포토그래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운전석과 보조석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지옥불 속에서 발바닥이 달궈지고 창자가 뽑히고 있었다. 포토그래퍼는 무력감을 담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돼?” 처음에는 약간 큰 한숨 같은 것이었는데 나중에는 작은 고함 같은 것이 되었다. 물론 남에게 들리도록 말하여진 의문문이 모두 질문은 아니라는 것쯤이야 알고 있다. 하지만 차 안이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기에, 나는 답했다. “이렇게밖에 살 수 없어서가 아닐까요. 다르게 살 수가 없어서.” 숙고 없이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머릿속에 날카롭게 박혔고, 스스로의 불가해한 선택들을 되짚을 때마다 어른거리곤 했다.

 

나의 대학 전공은 국제회의학과 경영학이었다. 지금 생업으로 삼고 있는 잡지 에디터가 눈에 들어온 것은 3학년 2학기 무렵이었다. 스펙 삼아 들어간 모 브랜드 학생기자단의 관리자가 잡지 에디터 출신이었다. 그녀에 게서 폴폴 풍기는 지식과 사유의 냄새로 미루어 잡지 기자는 꽤 해볼 만한 직업 같았다. 문외한이었던 나는 좁은 업계의 문틈에 어떻게든 발을 들이려 애썼다. 패션지 어시스턴트로 반년을 일했고, 1년 동안 사정이 비슷한 대학생들과 독립 잡지 몇 권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허섭스레기 같은 포트폴리오를 잡지 에디터들에게 보내며 일을 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공채 시기가 오면 대기업들에 이력서를 넣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전력투구가 용기인지 무모함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결과가 성공일 때 그 과정을 용기라 부를 수 있게 되고 결과가 실패일 때 그 과정도 무모함이라 불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평범한 진로와 모험 사이에 다리를 넓게 걸쳐 놓으려 애썼다. 대기업에 지원한 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붙으면 좋겠는데, 붙으면 또 어떡하나 싶었다. 다행히 나는 늘 직무적성검사에서 떨어졌다. ‘다행히’는 내가 운 좋게 기회를 잡아 지금 이 직종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눈앞이 캄캄하던 당시에는 대기업의 직무적성검사 시스템을 성토하는 글을 써서 어딘가에 기고하기도 했다. 억하심정을 듬뿍 담아.

 

일거리를 달라는 메일에는 가뭄에 콩 나듯 답신이 왔다. 어떤 것은 보낸 지 6개월 뒤에야 왔다. 대개 응원 섞인 거절이었지만, 놀랍게도 언젠가부터 정말 일이 들어왔다. 나는 내가 대기업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 아버지를 위해 기사가 실린 잡지를 본가에 한 권씩 가져다 놓았다. 아버지는 당신의 친구들에게 잡지를 보여 주며 자랑하기도 했다. 아버지도 그 친구들도 이 업계의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사이에 어떤 갭이 있는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요하는 대부분의 직종이 그러하듯 잡지사도 공개채용이 별로 없었다. 프리랜서 활동은 청탁 빈도도 고료도 낮았다. 내가 제시한 기획안으로 다른 기자가 기사를 쓰는 등의 작태를 보면서, 전문 프리랜서 에디터라는 선택지도 자연스레 삭제되었다. 그러니 할수 있는 것은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겪어본 사람만이 그것이 얼마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는 일인지를 안다. 한 잡지사 공채에서 힘겹게 최종 면접까지 올라간 후에야 다른 지원자가 그 잡지사에서 오래도록 일해 온 ‘내정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좁은 업계의 공채란 십중팔구 비슷한 정치적 사정을 안고 있을 테다.

 

학교에서 졸업을 하라고 하기에 그냥 졸업을 했다. 몇몇 술자리에선 취업을 못 해 졸업 유예 신청을 한 동기들을 겁쟁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직자’로 반지하 자취방에서 홀로 지새우는 몇 밤들은, 정말, 똥을 지릴만큼, 무서웠다. 가끔 머릿속에는 서른이 훌쩍 넘어서까지 방 한구석에서 원고 한두 개나 쓰며 사는 미래가 떠올랐다. 그러면 심장박동이 너무 빨라져 깨어 있기도 잠을 자기도 어려웠다. 때로 방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거나 아끼는 운동화를 신은 채로 원고를 쓰기도 했다. 스스로가 우스꽝스러워져서, 모든 것이 해프닝처럼 느껴져서 좀 견딜 만했다.

 

구원의 손길을 뻗어준 것은 부유한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명품 브랜드와 고급 취미를 소개하는 잡지였다. 읽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함께 일할 생각이 있느냐는 말에 지체 없이 하겠다고 답했다. 연봉도 묻지 않았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건너고 있었고, 불쑥 나타나서 물을 주겠다는 사람에게 ‘포카리스웨트 없냐’고 말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도 내 상태를 빤히 알고 있었기에 포카리스웨트를 줄 마음은 없었다. 초봉은 잔인한 수준이었다. 그 후 회사를 한 번 옮기기는 했지만 애초에 바닥 수준으로 책정된 연봉을 끌어올리긴 쉽지 않았다. 소득수준의 완만한 상승곡선을 보건대 아마 나의 중년기도 청년기만큼이나 궁상맞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한번 평범한 삶의 범주에서 벗어 났다면 사는 내내 비범한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만 한다.

 

당신은 지금쯤 아마 궁금해 할 것이다. 그래서 대체 결론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는 대학생들을 만류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좇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잡지 에디터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을 때에도 많은 이들이 양단의 조언을 던졌다. 하지만 꿈을 좇는 삶에 대한 예찬이든 현실의 냉혹함에 기댄 비관이든, 일반화에 기댄 조언에서 얻을 것은 별로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같은 표현을 쓰면 거기에서는 달콤 쌉싸래한 낭만의 뉘앙스가 잔뜩 배어나와서, 현실은 호도되기 쉽다.

 

나는 그저 지금 ‘좁은 문’ 앞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앞길에 도사리는 고통을 조목조목 따지기를 바란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 속에서 얼마만큼의 기지와 능력을 발휘해야 할지, 어떤 야만들 앞에서 눈감아야 할지 최대한 현실 감각을 갖고 상상하기를 바란다. 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비켜가도록 스스로 설득해야 한다면, 각박한 현실이라는 ‘풍문’ 대신 그 길의 선배들에게서 직접 수집한 ‘사례’들을 근거로 하기를 바란다. 잘하면 깨끗이 포기할 수도 있을 테다. 물론 아닐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설득하려 할수록 일상이 가상처럼 헛되게 느껴지고, 밤마다 배가 울렁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 잠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이제 그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미래의 당신이 지금의 당신을 원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선택권은 어차피 당신에게 없었으니까. 지금 당신이 그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밖에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니까. 다르게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니까. 하필 그 문 뒤에서 기다리는 짜릿한 맛을 알아버려서 말이다. 모쪼록 건투 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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