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 『한국이 싫어서』, p.170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고 싶을 뿐인데, 조국은 묵묵부답이다. 결국 스스로 행복을 찾기 위해 한국을 떠나는 20대를 그린 『한국이 싫어서』의 작가 장강명을 만났다.

 

20대의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되지?’의 차원인 것 같아요

20대의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되지?’의 차원인 것 같아요.

 

작년부터 출간된 장편만 무려 4권이에요. 연간 2200시간 집필이 목표라고 하시던데 어떻게 나온 시간인가요?

2013년 9월에 「동아일보」 기자를 그만뒀어요. 조직에 속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걱정되더라고요. 처음엔 ‘하루에 30매씩 쓰자’ 했어요. 그런데 그걸 다 못 채우면 새벽까지 글을 쓰고 다음 날 늦게 일어나게 되니까 생활 리듬도 깨지고 몸도 망가지더라고요.

 

‘소설가의 하루’ 하면 그런 일상이 떠오르긴 해요.

저는 그게 잘 안 맞았어요. 그래서 하루에 8시간 정도씩, 회사 다니는 한국인의 평균 근로시간을 따져보니 약 2200시간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회사 다닐 땐 4천 시간쯤 일했던 것 같지만.(웃음) ‘그 기준에 가깝게 시간을 정하자’라고 생각해 하루에 몇 시간씩 나눠서 집필을 하고 있어요. 출퇴근 시간이랑 상사 스트레스가 없는 것 빼고는 하루 패턴이 회사 다닐 때랑 비슷합니다. 되게 좋아요.

 

좀비 물을 연재 중이시고, SF 소설도 발간 예정이시라고요. SF가 작가님의 마음의 고향인가봐요.

그렇습니다.(웃음) 실제로 SF를 쓰다가 소설도 쓰게 된 것이거든요. 대학교 1학년이 돼서 컴퓨터를 사고 PC통신의 세계로 들어간 뒤,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 활동을 했던 게 소설의 꿈을 꾸게 한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표백』이나 『한국이 싫어서』까지는 르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고 빨리 읽히기도 하고. 이번에 출간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좀 더 소설적인 문법을 사용하신 것 같더라고요.

『표백』으로 등단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설로서 고루 뛰어나서가 아니라 주제가 좋고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믐』 이전 작품들은 이슈 될 만한 소재를 하나 잡은 다음에 소설로 형상화를 한 거였거든요. 나쁜 건 아니지만 평생 그것만 할 순 없어요. 아이돌로 치면, 가창력도 비주얼도 아니고 다른 특이한 걸로 뽑혀 주목받는 느낌이죠. 그런 멤버도 가수 생활을 오래 하기 위해 다른 능력을 계속 계발해야 하잖아요. 하하. 적절한 예인가요?

 

쏙쏙 이해되네요.(웃음) 항상 20대의 고충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작가님이 신기하기도 했어요. 집안도 그리 나쁘지 않고, 거대 언론사에서 근무한 명문대 출신의 전형적인한국의 주류 남성이 이렇게 20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조명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잖아요.

사실 큰 관심이 있어서 글로 쓴 건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조명한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이런 질문을 받고서 제 책에 20대가 많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제 좀 알아보려고 하는데, 잘 몰라요. 그냥, 알고 보면 저한테도 비슷한 고민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20대에게 좀 더 압축적으로 일어났을 뿐, 그들만의 고충은 아니라는 거죠?

음… 20대의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되지?’의 차원인 것 같아요. 그 전 세대에는 대충 답이 있었습니다. 개미처럼 열심히 벌면 중산층이 될 수 있고, 함께 독재정부에 항거하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지금은 60대에도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잖아요. 30, 40대도 마찬가지죠. 어느새 대한민국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는 사회가 됐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죠?

 

요즘 청년들이 시니컬한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똑똑합니다.

요즘 청년들이 시니컬한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똑똑합니다.

 

저도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하거든요.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 앞으로 나아지긴 하는 걸까.

자기계발서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 답을 주는 책이죠. 그렇지만 대부분 그 말을 안 믿어요. 그냥 상처만이라도 안받으면서 살고 싶으니까 이런 자세라도 배워야 겠다, 라는 마음으로 읽어요. 제 책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형태의 답을 제시하는 대신 주인공들이 질문을 세게 던져요. ‘난 자살이 답인 것 같은데 넌 어때?’

 

그래서 한국을 떠나는 인물이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잖아요. 계나는 집안도 평범하고, 학벌과 외모 모두 고만고만한 20대 여성이에요. 왜 이런 보편적인 캐릭터로 만드신거예요?

아버지가 폭력 가장이었다면 계나가 한국을 떠나고 싶은 건 아버지 때문이지, 한국 사회 때문이 아닌 거잖아요. 최대한 극단적인 이유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 때문에 떠나가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어요.

 

주관이 뚜렷한 동시에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현실적이라는 점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요.

자신감을 가지고 성장하는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나의 바깥 상황은 바뀌는 게 없어요. 하는 일도 비슷하고, 남자친구도 계속 있고, 처음에도 나중에도 작은 집에서 살고. 외적인 조건들은 그대로인 채, 계나 혼자만의 변화로 시작할 때보다 끝에서 더 단단한 인간이 되어 세상을 돌파하는 모습을 극대화했어요.

 

하지만 계나는 동생 예나와 예나의 남자친구를 얕보고, “한국에서 이렇게 살 바엔 호주로 건너와라”며 일종의 계몽을 하려고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한국에서의 계나를 무시했던 태도와 비슷했어요.

계나는 스트릿 와이즈(streetwise)라고 할까요, 사회의 규칙은 잘 알지만 철학적 깊이는 없는 얄팍한 인물이에요. 자신의 자원을 총동원해서 행복을 찾지만, 거기서 나온 규칙은 주변 사람들에게 잘 통용되지 않습니다. 계나는 호주에서 스스로 성장을 했지만, 한국을 떠나는 것만이 답은 아니에요. 예나 남자친구에겐 한국에서 한국어로 노랫말을 쓰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죠. 한국을 떠나는 게 계나의 답이었고, 우리에겐 각자의 답이 있을 거예요.

 

계나뿐만 아니라 작가님이 만드는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시니컬해요.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소설에선 주인공이 고생하는 원인이 사회에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당해야 모멸감, 굴욕감, 좌절이 더 절절하고 타당해져요. 그런 부조리를 인식하려면 주인공이 똑똑해야 되고, 어찌할 수 없는 부조리 때문에 고생을 하면 자연스럽게 시니컬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청년들이 시니컬한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똑똑합니다. 이 부조리가 어디서 오는지 알고, 착취당하면 당하는 걸 알아요.

 

그들을 향해 “불이익은 못 참는데 불의는 참는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왜 알면서 가만히 있느냐는 거죠.

저는 그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아요. 어떤 면에서 억울함에 눈감고 잇속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거든요. 거대한 불의에 맞설 생각이라면 한국보다는 시리아에 가야죠. “너는 왜 불의에 분개하지 않니?”라는 말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신 “불평등은 참을 수 있지만, 부조리는 못 참겠다”라고 얘기하겠습니다.

 

불평등과 부조리의 차이는 뭐죠?

오늘날 청년들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일부인 불평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돈을 많이 내고 넓은 퍼스트클래스에 타고, 누군가는 비좁은 좌석을 탑니다. 평등하지 않지만 2015년의 대한민국은 여기에 항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코노미에 탄 사람은 술 먹고 행패 부리면 잡아가는데 퍼스트클래스는 안 잡아가는 것, 게다가 비행기까지 회항시킬 수 있는 것. 여기엔 모두가 다 울컥합니다.이건 불평등이 아니고 부조리거든요. 여기에 화를 내는 건 건강한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무조건 열심히가 아니라 영리하게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무조건 열심히가 아니라 영리하게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청년 세대의 빈곤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중장년층의 비판에 작가님은 “청년들이 한국에 염증을 느끼는 이유가 경제적 빈곤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반박하셨어요.

세계의 빈곤화와 별도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겪는 빈곤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미국은 최소한 겉으로는 남을 무시하지 않으려는 상호 존중이 있어요. 물론 그런 나라에서도 돈이 없으면 개인적인 좌절감은 크겠죠. 그런데 한국은 식당 직원에게 반말을 하고, 나보다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아래에 있는 사람한테는 엄청난 모멸감을 주잖아요. 단순한 경제적인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성공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렇게 대놓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사회가 어디 있을까요. 청년들이 당연히 발끈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SNS가 정치 참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던데, 어떤 점에서인가요? 현실과 SNS 사이의 온도차는 계속 논의되는 문제잖아요.

먼저 사회현상에는 굉장히 복잡한 이유가 얽혀 있어요. 근데 SNS는 특성상 긴 글을 실을 수 없어 사안과 구호가 단순해집니다. 정확히 알고 조사해봐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SNS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행동도 거의 없어요. 또 SNS는 영향력에 비해 큰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을 금방 줘버립니다. 리트윗 한 번 하고 사회에 기여했다는 느낌을 받는 거죠. 실제로 해야 할 일은 안 하게 되면서요.

 

미래의 독자층을 확보하기 위해서 포털에서 라이트 노벨을 연재하려고 하셨다고요. 아직 유효한 계획인 건가요?

지금은 출판만화의 자리를 웹툰이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런게 책에도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전 거기서 살아남고 싶어요. 다만 저는 새로운 책 시장이 만든 작가가 아니라, 살아남은 종이책 작가가 되고 싶어요. 윤태호 작가처럼 출판만화에서 주목을 받다가 웹툰에서 잘 적응을 한 것처럼요.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사명감 같은 건 없습니다. 최소한 잘 적응해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20대 대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든 생각인데요. 누군가가 조언을 하면 덥석 믿고 따라 하지 말고, 부딪혀보고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어요. 무조건 열심히가 아니라 영리하게 열심히 사는 거죠.

 

 

Intern 이예나 yen@univ.me
Photographer 박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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