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졸업 예정자’다. 이 신분을 얻기 위해, 졸업에 필요한 토익 성적표를 내지 않았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의 몸이니까, 돈만 있다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돈이 없는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피해서 시골 할머니 댁으로 피신하기로 결정했다. 도착했는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고모가 계셨다. 이런…! 걱정과 훈계가 시작되었다.

 

“현덕이는 좋은 데 취업했으니 아내랑 알콩달콩 살 일만 남았고, 훈이는 시험에 붙었으니 되었다. 그런데 너는….” 나는 문 옆에 앉아 공손한 표정으로 어른들을 바라봤다.“니는 우얄 낀데?”, “가스나는 직장 잡아가 시집가믄 된다”, “사느아가 문제지. 니는 올해 꼭 좋은 데 들어가서 괜찮은 남자 하나 잡아 온나.”“너만 가믄 된다!” “너만!”“너만!”

 

내가 썼던 이력서 사오 십 장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는지.

내가 썼던 이력서 사오십 장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는지.

 

할머니댁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별들로 총총했다. 도시에선 나보다 앞서간 바쁜 친구들과 선배들이 나를 압박했다. 심지어 몇몇 후배들은 나보다 먼저 취업했다. 이 시골 마을에선 내가 사랑하는 친지들이 내 목을 조여왔다. 밤에는 또 어떤가. 꿈속에선 낮에 읽었던 책의 유명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버나드 쇼라는 극작가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젊음은 젊은 것들한테는 주면 안 된다니까. 아침 해가 두 번 뜨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게을러서야.”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잘 정돈된 콧수염을 위아래로 꼬며 “젊음을 즐겨요. 우아하고 고상하게. 그렇게 울먹거리면 안 되지요. 매력, 그게 얼마나 중요한대요. 카멜레온같이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해봐요” 라고 웃으며 사라졌다.

 

내가 갖춰야 할 것은 이렇게나 많다. 예쁜 얼굴과 매력, 지적 능력, 부지런함, 건강함. 내가 썼던 이력서 사오십 장은 모두 어디로 날아갔는지. 무너진 자존감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존심만 부리는 내가 남았다.

 

할머니댁 작은방에 누워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전전반측 잠 못 이룰때면, 어둠 속에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남자가 나타난다.

 

대지와 심장이 연결된 그리스 사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속 주인공 조르바다. “왜 울상이야? 요즘 우리나라 그리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거든? 사실 우리나라 너희 나라가 어디 있겠어? 이 조르바는 언제 어디든 갈 데까지 가본다네. 브레이크? 그런 건 바보들이나 덜덜 떨며 의지하는 거야. 작은 기타와 튼튼한 발만 있다면 어디서든 춤출 수 있는데 뭘 그리 겁내나? 책들을 쌓아 놓고 몽땅 불 질러봐. 바보를 면하게 될 수도 있을 거야.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키스 중이라면 자네와 입 맞추는 그 상대방만 생각하라고. 넌 두려움이 너무 많아!” 그는 이빨 빠진 입속을 훤히 드러내며 나를 보고 웃었다.

 

찬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머리를 빗었다. 어른들은 날 보며 또 안쓰러운 듯 토닥거리지만 나는 내게 이렇게 말해준다. “오늘은 새날이다. 아직 쓰이지 않은 날들이 나를 기다린다.” 남미에서 최고의 등반가로 꼽히는 로드리고 요르단이란 사람은 300개 봉우리에 도전해 200개는 오르지도 못했다고 하더라. 그는 오르지 못할 산엔 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둠 속에서 그가 속삭인다. “괜찮아. 난 200번이나 포기했거든. 그거 그렇게 나쁜 거 아니야.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나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잘 살아 있으니까, 다른산에도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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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현은?

사랑 속에 파묻혀 살고 싶어요

 

 

Reporter 조아현 8810cha@hanmail.net

Illustrator 전하은

 

 

20대라면 누구나, 칼럼 기고나 문의는 ahrajo@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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