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에서 우리는 장그래를 통해 계약직 사원의 설움을 보았다. 회사의 내부인이 되지 못하고 언저리를 겉도는 모호한 존재의 서글픔. 하지만 현실 속 계약직 사원의 실태는 드라마 장면보다도 조금 더 우울해 보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장성주(29)씨. 차석으로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지금의 고단함은 예상하지 못했다. 장씨는 현재 한 공공기관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그녀의 4번째 직장. 그녀의 습관은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열어 공개채용 일정을 확인하는 것.

하지만 지난해부턴 대기업 공개채용시험에서 1차 관문조차 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상념이 떠돌았다. ‘나이가 많아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경력 때문에?’ ‘지금의 낮은 연봉이 내 가치를 의미하나?’ 늘 열심히 공부했고 성실했던 그녀에겐 이젠 화낼 기력이 없다. “오늘도 웃자”고 결심할 뿐.

 

 

전도유망했던 대학생 시절이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어가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아버지는 정년을 앞두고 있었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을 향한 열망이 컸다. 하지만 임용 시험을 포기했다. 4학년 1학기 때 교생실습을 나간 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흥미롭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잘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고, 시험 준비만 3~4년씩 하다가 대학원에 들어가는 선배들을 보면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집에서도 그녀의 시험 준비를 전폭적으로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 그때 교수님이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계약직 공고를 냈다. “행정직 자리가 있는데, 면접 보지 않겠어?”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졸업한 뒤의 백수생활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면접을 본 뒤 합격했다. 한 의과대학 병원의 행정직이었다. 교수님의 연구를 보조하는 일이었는데, 연봉은 3000만원을 웃돌아 꽤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했으며, 여직원이 임신하면 백이면 백 모두 그만뒀다는 사실이었다. 임신한 여직원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교수님의 연구를 돕는 ‘보조’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도 그녀의 자존감을 자꾸만 갉아먹었다. 전도유망했던 대학생 시절이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답답한 마음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닥치는대로 원서를 넣었지만 계속 떨어졌다. 공채를 준비할 시간은 부족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으며, 암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짜증이 늘어나니 연애도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연애도 정규직도 포기한 지 오래

 

그녀는 이곳에서 2년 간 일한 뒤에 동종업계의 다른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옮기는 직장에선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원할 때까지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무기계약직’ 형태의 근로 조건을 보장할 것이며, 연봉도 지난 직장과 비슷한 수준에서 책정하겠다고. 그녀는 이직을 결정했다.

 

첫 출근 날, 계약서를 확인하니 그때의 약속과는 달리 연봉이 깎여 있었다. 야근도 많았고, 새 직장 사람들과 적응하기까지는 몇 개 월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미 이전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항의할 곳이 마땅히 없었다. 옮긴 것을 후회했지만, 이전 회사에 있었더라도 고민은 계속됐을 터였다. 짜증이 늘어나니 연애도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남자친구와는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남자친구 역시 야근과 격무에 시달렸고, 2주일에 한 번 만나면 다행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누구도 선뜻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1년을 일했다. 그리고 재계약 대신 구직을 선택했다.

 

하지만 취업 준비에 오랜 시간을 쏟을 수는 없었다. 공백기가 늘어나면 “나이 먹고 뭐했느냐” “그 시간에 놀았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6개월 간의 취업 준비 기간을 끝낸 뒤, 한 공공기관의 계약직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기계약직’이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정규직이 누리는 혜택은 받지 못하더라도, 성과를 낸다면 원할 때까진 회사에 남을 수 있으니까.

 

 

오늘도 인턴과 비정규직의 불안을 먹고, 빌딩숲은 무탈하다.

 

 

그날이 오면은 더덩실 춤을 출 텐데

 

회사 3~5곳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을 갖고있는 ‘메뚜기 인턴’,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시작해서 정규직으로 이동하지 못해 ‘비정규직 개미지옥’에 갇힌 20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슬픈 얼굴로 출근길 버스에 오르는 중이다. 여러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면, 안정된 직장을 얻기가 쉬울까?

 

한국고용정보원의 2015년 5월 자료를 보면 사정은 약간 암울해 보인다. 통계에 따르면 대학 졸업 2년 후에 첫 직장이 중소기업인 대학 졸업자가 대기업 정규직으로 이동한 비율은 불과 7.5%.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대졸 하향취업의 고착화 현상과 노동시장효과(2012)’를 보면, 대학을 졸업한 뒤 눈을 낮춰 취업한 직장인은 세 번째 직장까지 이동해도 하향 취업을 벗어나지 못할 확률이 64.3%에 달했다. 눈을 낮춰서 첫 직장에 들어가도 처우가 더 좋은 회사로 옮기기 어렵단 얘기다.

 

정부는 기간제 근로자 고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기간제법 추진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인턴과 비정규직 신분이 ‘선택’ 아닌 ‘강요’이자 ‘덫’인 상황 속에서, 정부의 대책이 유효할지는 의문. 인턴이 되기 위해 인턴 경험이 필요한 상황과, 기간제 근로자가 사무실에서 정규직 직원의 눈치를 보는 현실부터 바꿀 순 없을까. 오늘도 인턴과 비정규직의 불안을 먹고, 빌딩숲은 무탈하다.

 

Editor 조아라 ahrajo@univ.me

Reporter 임기훈 권성한 김선화 윤소진

Iillustrator 위지영

 

관련 포스트(1탄): 비정규직 개미지옥, 뫼비우스의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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