얠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자신이 없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근데 난 그 긴장이 좋아요. 오빠처럼 편안하진 않지만 늘 기대가 돼요. 두근두근해요.

– 〈태릉선수촌〉 中

 

남친이 환승했어요. 잠수 이별 당했어요. 바람난 그 자식이 보고 싶어 죽겠어요…. 여느 때처럼 인터넷 연애 게시판을 훑어보다 깨달았다. 모두 피해자들뿐이다. 여기 저기서 주워 놨다가 친구들을 만나면 대개방하는 연애담 창고에도 ‘당한’ 이들의 사연만 그득하다. 모든 사랑의 후일담은 피해자의 시점에서 쓰인다. 그러니 연애 게시판의 댓글도, 지인의 현실감 없는 막장 사연에도 답은 하나다.

 

“쓰레기 같은 XX(혹은 X)…!”

 

그렇다면 이 커플의 이야기는 어떤가. 남자는 수영 선수. 예전엔 유망주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록은 안 나오고, 선수 생명이 끝에 다다랐음을 체감 중이다. 그가 힘겹게 은퇴를 결심하고 있을 때 여자는 다른 남자(앞으로 남자2로 명명하겠다)와 바람이 난다. 남자는 여자를 붙잡아 보지만 그녀는 꿈쩍 않는다. 그리고 모든 비극의 원흉 남자2는 둘이 헤어지는 자리에까지 따라 나와 남자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익숙한 피해자의 서사다. 연애 게시판에 이 사연이 올라온다면 재활용도 안 되는 핵폐기물급 쓰레기들이라며 분노를 살 게 뻔하다. 그런데, 정말 연인 관계의 가해자들은 그냥 쓰레기일까? 상종도 못 할 인격파탄자일까? 연인만큼 여러 감정이 엉켜 있는 관계는 없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속사정은 늘 ‘바람’, ‘환승’ 같은 단어들로 뭉뚱 그려진다. 둘만 아는 이야기와 맥락들은 결과 앞에서 지워지기 일쑤다.

 

바람을 피울이유가 있었다고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저 타인인 우리는, 연인이 있는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뺏기기까지 느꼈을 복잡다단한 심정을 다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굳건했던 마음에 구멍 하나가 뚫려버린 계기, 그 구멍을 메우려 무진 애를 썼던 날, 결국 허물어져버린 마음에 대한 당혹감 같은 것들. 잔잔했던 가슴에 커다란 해일이 이는 순간,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이가 어딨겠는가. 머리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남자는 흔들리는 여자에게 말한다. “너, 사랑에도 머리가 필요한 거야.” 하지만 여자는 결국 감당하기 힘든 남자2와의 ‘긴장’을 택한다. 세상 일만큼 사람 마음도 뜻대로 안 되는 거라서, 우린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누군가를 ‘쓰레기’라 단정 짓는 걸 줄여볼 생각이다. 마음만 따라가다 남을 상처 주는 연애도 나쁘지만, 마음 아닌 머리의 말만 듣는 연애는 더 나쁜 거라고 믿기에.

 

 

Editor 김슬 dew@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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