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앞두고 거울 앞에서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유미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재정 파탄의 책임을 지고 수감됐다 이제 막 가석방한 ‘패션 세포’는 옷장에서 가장 예쁜 옷을 찾아 입히려 하지만,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은근 신경 쓰이는 세포’의 말 “진짜 데이트도 아닌데 오버하는 거 아냐? 에이, 신경 쓰지마. 그냥 한 말이야”가 거슬려 갈등한다.

 

 

고민하던 유미의 눈에 다이어트 후 입으려고 사뒀던 쫙 달라붙는 바지가 들어온 순간, 불쑥 나타난 ‘자신감 세포’. 근거를 찾아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온 그는 역시나 근거 없는 말을 던진다. “유미는 빼빼 말랐으니까 쫙 달라붙는 걸 입혀!” 그의 바람과 달리 바지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연애든 취업이든 인간관계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만병통치약처럼 등장하는 게 자신감이다. 자신감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감만 있으면 섹시해 보이고, 자신감만 있으면 유능해 보이고, 자신감만 있으면 강철 멘탈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해놓고,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근거’를 내놓으란다. 이봐, 그런 말은 없었잖아! 근거가 있으면 우리가 왜 자신감 타령을 하고 있겠어요. 못생기고 키 작고 돈 없고 스펙 없고 심지어 싸가지마저 없어서 자신감이라도 갖겠다는데….

 

 

일순간에 무능함과 뻔뻔함을 동시에 입증한 우리에게는 ‘근자감’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의 앞 글자를 딴, 무성의한 조어법만큼이나 무책임한 규정이다. 대체 근거가 무엇이기에. “근거?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아무것도 못 찾고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자신감 세포는 오히려 더 당당하다. 근거가 바깥에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빼빼 마름’의 기준도, 소개팅 자리에 무슨 옷을 입고 나갈지도 내가 정한다. 모든 선택의 근거는 나에게 있다는 믿음, 그게 바로 자신감이다. 판단하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둘러싸여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 사실 우린 근거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 자신감 세포가 받았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잊어버렸던 근거들은 기억났어?” 그럼, 내가 누군데.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 네이버
2015. 4. 1 ~ 201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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