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연쇄살인마이자 정신과 의사 김요한은 후자에 배팅을 건다. 그는 폭설로 고립된 명문고에 들어가, 방학임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은 8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그들의 트라우마와 어둠을 자극하고 끊임없이 심리적 압박을 가해 숨어 있던 악마성을 깨우려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김요한 자신이 날때부터 괴물이었던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괴물로 변한 거라고 증명하기 위해서다.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놓여 있었던 거라고, 스스로에게 당위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8일간의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은 무사히 구조되지만, 자살한 줄 알았던 김요한이 살아 있단 걸 알고선 힘을 합쳐 옥상에서 그를 밀어버린다. 난간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김요한의 눈이 환희로 물든다.
“내가 이겼어.”
사회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으로서 하기 힘든 짓을 인간의 모양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이들. ‘◯◯ 살인사건’이란 자극적인 제목으로 그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우리는 범행 동기를 드라마처럼 추리하고 그의 인생 스토리를 범죄와 끼워 맞추기 바쁘다. 이 사람은 이래서, 저래서 괴물이 된 거야. 나와 다르다 안심하면서.
하지만 과연 괴물의 정의는 무엇일까. 직접 손에 피를 묻혀 누군가를 해한 사람만이 괴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매일 들어가는 인터넷에선 누군가를 덮어놓고 공격하고 ‘몰이’하는 일이 다반사다. 아무 죄책감 없이 누군가의 신상을 털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어떤가. 그 주체가 선명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오프라인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사건들은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우리는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괴물’이라고, 나와 다른 존재라고 규정하며 우리 안의 괴물을 부정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린 괴물이 되지 않았다고, 당신이 더러운 거라고 외치던 아이들은 김요한을 죽인 후 경찰 진술에서 입을 맞추며 그가 그토록 원하던 괴물에 한 발짝 다가간다. 하지만 단 한 명, 환영을 본 후 자기 안의 괴물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낀 윤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택한다.
어떤 선택이 더 옳은 거라고 도장을 찍을 순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알겠다. 내 안의 괴물이 더 자라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괴물이 살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뿐이라는 걸.
Editor 김슬 dew@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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