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계산을 마칠 때면 항상 직원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포인트 카드 있으십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카드를 내밀고 개미 눈물 만큼 쌓이는 포인트를 바라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가 “그거 너 다 기록되는거야” 한다. 그래서 뭐, 그게 어쨌다는건데?

 

마트신은 알고있다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던 포인트 제도엔 다른 목적이 있다. (물론 이탈방지 목적도 있고) 내 구매 목록과 패턴을 기록해 마케팅 자료로 사용한단다. 개인정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스칠 찰나에 길고 지루한 데다가 절대 읽고 싶지 않은 모양의 약관에 동의했던 게 떠올랐다. 나는 자발적으로 마트에 내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는데, 뭘 먹고 사는지, 샤워기는 언제 교체했는지, 콘돔은 몇 개 샀는지까지 꽤 많은 정보를 거짓하나 없이 제공해왔다.

 

요 작은 포인트 카드놈이…

 

2009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Target이라는 대형마트 체인은 고객 중 임산부를 구별해 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일반 가정은 출산 전후로 소비가 급격히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임산부를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매출 상승은 당연한 결과였다. 연구 끝에 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임산부를 구분하는 방법을 고안했고, 타겟 마케팅을 병행하자 매출이 급상승했다.

 

하지만 한 남자가 마트에 항의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는데, 10대 딸에게 임산부를 위한 광고가 자꾸 날아오는 게 발단이었다. 눈치챘겠지만 딸의 뱃속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진짜 몰랐을까?)

 

마트는 당사자보다 먼저 이런 중요한 정보를 알고 전단지를 뿌리고 있다. 단순히 구매 목록만으로 말이다. 자주 가는 마트가 있다면, 포인트 카드를 쓰고 있다면 아마 당신이 혼자 사는지, 음식 취향은 무엇인지, 소득 수준은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오늘은 무엇을 살건지 묻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기록의 덫

우리는 머지않아 생각지도 못한 많은 정보가 기록된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MIT에서는 2009년에 페이스북 좋아요만을 이용해 게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게이더를 만들었다.

 

검지는 누를 뿐

 

2012년 영국의 한 연구팀은 페이스북 좋아요만으로 더 민감한 개인 정보를 알아냈다. 백인인지 흑인인지 95%, 동성애자 남성인지 이성애자 남성인지 88%, 민주당 지지자인지 공화당 지지자인지 85% 확률로 구분해냈다. 무심코 눌렀던 좋아요마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정보가 된다.

 

한 스타트업에서는 생리주기 어플리케이션에 입력한 정보를 이용하면 사용자의 임신 여부, 과격한 운동 여부, 노화 정도는 물론 피임 없이 성관계를 맺었는지까지도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가계부 어플, 수면 주기 어플, 일기 어플, 모든 정보는 기록되고 있다. 오늘날 당신이 구매한 껌 한 통의 기록은 조선시대 왕이 보낸 밀서보다 더 안전하게 기록된다.

 

최대한 몰래 기록해야해

 

기록되지 않을 권리

언젠가 구글 글래스나 애플 워치 같은 기계와 24시간을 함께 보낼 날이 온다. 이 유용한 도구는 당신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혈당치, 심장박동, 체온, 혈압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언제 누구를 만났는지 왜 화를 냈는지, 나와 케미가 잘맞는 사람은 누군지, 운동 효과가 어느 부위에 어느 정도 강도로 지속됐는지까지 기록한다.

 

모든 게 기록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보다 안전해진다. 사방에 CCTV가 있는데도 범죄를 저지를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편리를 모른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항없이 기술을 수용하고 그 이면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는 건 문제가 된다. KAIST 정하웅 교수는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구글에 쌓이는 정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구글의 모토인 Don’t Be Evil(사악해지지 말자)이 갖는 말은 점점 무게를 더한다. 일상의 기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때, 프라이버시의 정의는 지금과 많이 달라질 거다. 우리는 기록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빅데이터 인간을 해석하다 – 크리스티안 루더 저

빅데이터 인문학 : 진격의 서막 – 에레즈 에이든 & 장바티스트 미셸 저

 

표지사진 출처

flickr.com/photos/owenw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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